한국인 절반 이상 ‘장기적 울분 상태’, ‘사회적 정신건강’ 치유 서둘러야

2025-05-14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한국인 절반 이상이 ‘장기적 울분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00명 중 47명이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답해 국민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2025년 6.038점 │ 147개국 중 58위)나 삶의 만족도(2023년 6.4점 │ 38개국 중 33위)가 OECD 최하위 수준이며 1인 가구(2023년 782만9035가구 │ 35.5%) 급증에 따라 고독사(2023년 3661명)도 증가하는 현실이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마저 장기적 울분 상태에 놓여 있다는 현실은 너무나 충격적일 뿐만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건강재난 통합대응을 위한 교육연구단이 설문 조사 업체인 ‘케이스탯리서치KSTAT Research’를 통해 지난달 15∼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정신건강 증진과 위기 대비를 위한 일반인 조사’ 결과를 지난 5월 7일 발표했는데 이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정신건강 수준을 묻는 문항에 대하여 48.1%가 ‘좋지 않음’이라 답했다. ‘보통’은 40.5%, ‘좋음’은 11.4%에 불과했다. 정신건강 수준이 좋지 않다고 답한 이유로는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37.0%)’, ‘타인이나 집단의 시선과 판단이 기준과 규범이 되는 사회 분위기(22.3%)’, ‘물질적 안락함이나 부가 성공과 행복의 기준으로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16.6%)’ 순으로 꼽혔다. 특히 연례 정신건강 조사 결과 대상자의 55%가 지속하는 울분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건강에 영향을 미칠 만큼 심각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비율도 50%에 육박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두 명 중 한 명은 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가시지 않는 ‘울화통’을 끌어안고 있다는 뜻이다.

왜 그런지에 대한 원인을 파고든 보다 구체적인 설문 항목을 살펴보면 개인의 문제를 넘어 함께 고민해야 할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라는 답변이 70%에 달했고, 불공정 인식이 강할수록 울분 수준도 높았다. 울분을 주는 정치·사회적 사안에는 ‘입법·사법·행정부의 비리나 잘못 은폐(85.5%)’, ‘정치·정당의 부도덕·부패(85.2%)’, ‘안전관리 부실로 초래된(의료, 환경, 사회) 참사(85.1%)’ 등이 압도적 비율로 꼽혔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 정신건강 수준을 낮게 평가한 이들은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구성원 절반이 고통스러울 만큼 화가 나 있는데, 심리치료 같은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들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것들을 보다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정부 국회 정당을 비롯해 국가를 운영하고 사회를 이끄는 이들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공정을 체감하지 못하고, 의사결정 기관은 부패해 보이고, 내 안전을 지켜줄 시스템은 미덥지 않은데,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는 상황이 ‘울분 사회’의 기저에 있다는 해석이다.

지속기간별로는 응답자의 54.9%가 울분 상태가 지속하는 ‘장기적 울분 상태(1.6점 이상)’를 겪고 있었다. 12.8%는 ‘높은 수준의 심각한 울분 상태’였다. 연구진은 2018년부터 올해까지 동일한 척도로 울분 정도를 측정·비교했는데, 높은 수준의 울분은 2018년(14.7%)보다 낮았지만, 2024년(9.3%)보다는 높았다. 한국 사회의 정신건강이 ‘좋지 않다’라고 답한 사람들은 그 원인으로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1·2순위 합산 49.9%)’, ‘타인·집단의 시선과 판단이 기준이 되는 사회 분위기(42.4%)’를 꼽았다. 연령대별로는 30대가 울분을 가장 많이 느꼈다. 60세 이상은 9.5%가 ‘심한 울분’을 느꼈지만 30대는 17.4%가 심한 울분을 느꼈다. 소득별로는 월 소득 200만원 미만 집단에서 21.1%였으나, 1000만원 이상 집단에서는 5.4%로 낮았다. 자신의 계층을 ‘하층’으로 인식하는 집단에서는 높은 수준의 울분 비율이 16.5%로 가장 높았고, ‘중간층’으로 인식하는 집단은 9.2%로 가장 낮았다.

한편 삶의 만족도와 관련해서는 ‘내 삶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전체 34.3%였다. ‘불만족한다’라는 응답은 그보다 낮은 25.6%였고, ‘보통’이라는 응답이 40.1%로 가장 높았다. 2018년부터 지속해서 울분 수준을 평가한 결과, 울분으로 인한 ‘이상 없음’ 상태가 전체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반대로 ‘울분 지속 상태’가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또한, 기존의 역할과 책임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정신건강 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는 응답자가 27.3%였는데 이들 중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경우가 60.6%에 달했다.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 인식과 문제에 취하는 태도 사이에 간극(間隙)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개선을 위한 소통과 실천적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정부는 근년에 들어서부터 국민 정신건강을 국가시책의 우선순위에 두고 예방·치료·재활의 단계별 정책을 발굴하고 이를 확대해 왔다. 이제는 의료 차원을 넘어 ‘사회적 정신건강’ 차원으로 시야를 넓히고 치유(治癒)를 확대할 때에 이르렀다. 한국 사회에 대한 구성원의 신뢰를 높여가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할 때다. 사회적 유대감을 키우는 일부터 서둘러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스트레스와 울분을 느낄 때 ‘혼자 참는다’라는 답변이 40%에 육박했다는 것은 ‘사회적 정신건강’의 국가적 책임을 당연시(當然視)하고 의무화(義務化)를 촉구하고 있음을 깊이 인식(認識)·통찰(洞察)하고 결단코 가볍게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