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기축국 평균보다 높은 국가부채, 경상수지 흑자와 건전재정 제고 시급
우리나라 국가부채 비율이 국내총생산(GDP │ Gross Domestic Product)의 54.5%로, 올해 말 처음으로 노르웨이·뉴질랜드 등 기축통화를 쓰지 않는 비(非)기축통화국의 평균을 넘어설 것이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했다. 2020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Pandemic) 대응을 위한 재정 지출과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5월 11일 IMF가 발간한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 │ 2025년 4월)’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은 올해 54.5%로 예상된다.
이는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비기축통화국은 덴마크, 이스라엘, 뉴질랜드, 노르웨이, 싱가포르 등 11국인데 올해 이 나라들의 국가부채 평균은 54.3%로 우리나라는 54.5%로 이보다 0.2%포인트나 높다. 비기축통화는 미국 달러, 유로, 일본 엔화처럼 국제 외환보유고의 구성 통화로 널리 쓰이는 통화가 아닌 나라의 통화를 말한다. 우리나라 국가부채는 2016년에 39.1%로 비기축통화국 평균(47.4%)보다 훨씬 낮았는데 2020년 이후 국가부채가 빠르게 늘어난 결과다. 일반정부 부채는 중앙·지방정부의 회계·기금 부채(D1) 외에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까지 포함하는 광의의 정부 채무로, IMF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가 간 부채 비교에 이 지표를 주로 사용한다.
IMF는 우리나라 국가부채 비율이 향후 5년간 4.7%포인트 높아져 2030년에는 59.2%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비기축통화국 중에서는 체코 6.1%포인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증가 폭이자 빠른 속도다. 2030년 예상치 역시 비기축통화국 평균 53.9%를 5%포인트 이상 웃돈다. IMF의 국가부채는 국가채무(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부채의 합)에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를 포함한다. 국내에서 주로 쓰는 국가채무도 지난해 말 GDP의 47%를 넘었다. 주요 7개국(G7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의 국가부채 비율과 비교하면 아직은 낮은 수준이다. 2030년 미국은 128.2%, 일본은 231.7%, 영국은 106.1%를 기록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기축통화(基軸通貨 │ Reserve Currency)국으로 자금 조달 환경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에서 단순 비교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비기축통화국은 외화 수요와 자본 유출 리스크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재정건전성 유지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재정이 건전한 덕분에 IMF 외환 위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신속하게 회복됐다. 이제는 세수보다 씀씀이가 훨씬 큰 재정 적자국이 됐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정부가 매년 100조원 안팎의 적자 살림을 하고 있다. 전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을 비판했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나랏빚은 200조원 넘게 늘었다. 주먹구구식 예측으로 2023년 56조4000억원에 이어 2024년에도 30조8000억원이 예산보다 덜 걷히는 대규모 ‘세수 펑크’가 2년째 이어지며 지난 2년간 무려 87조2000억원에 달하는 세수결손이 발생한 가운데 올해도 내수 부진에 대외 불확실성까지 더해져 경기 둔화가 예상되는 만큼 세입 여건 악화로 3년 연속 ‘세수 펑크’가 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기축통화국은 기축통화국과는 처지가 다르다. 경상수지 흑자와 재정 건전성이 국가 경제를 지키는 양대 보루인데 포퓰리즘 공약이 습관화되면서 재정 건전성을 지킬 의지도, 역량도 다 무너졌다.
정부가 지난 4월 8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2024 회계연도 국가결산’에 따르면, 2024년 국가채무는 1175조2000억원으로 전년도 1126조8000억원보다 1년 새 48조5000억원(0.043%↑)이나 늘어났다. 이를 중앙정부 채무와 지방정부 순채무와 나눠보면 지난해 중앙정부 채무는 1141조2000억원으로 전년도 결산(1092조5000억원) 대비 48조6000억원(0.044%↑)이나 증가했다. 지난해 지방정부 순채무는 34조1000억원으로 집계돼, 전년도 결산(34조3000억원) 대비 2000억원(0.006%↓) 줄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 비율은 4.1%에 해당한다. 문재인 정부 5년 차와 겹치는 2022년 적자 규모 117조원, 적자 비율 5% 이후 2년 만에 다시 100조원, 4%를 넘어선 것이다. IMF의 추정에 따르면, 2029년 말이 되면 한국의 국가 부채 비율은 58.4%로 불어난다. 뉴질랜드(57.1%)를 제치고 싱가포르(177.6%), 이스라엘(70%)에 이어 3위가 된다. 급속한 고령화로 복지 지출이 빠르게 불어나기 때문이다. 다음 달 새 정부 출범 이후 포퓰리즘 공약 이행과 경기 부양 등으로 씀씀이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불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경제가 순조롭게 성장한다면 정부가 지금 씀씀이를 유지해도 버틸 수 있는데 그럴 가능성도 없다.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가 오는 2040년에 잠재성장률이 0%로 추락하고 2040년대 후반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잔망하고 있다. KDI는 지난 5월 8일 밝힌 ‘잠재성장률 전망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잠재성장률(물가 자극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성장률)이 올해 1%대 후반으로 추정되며 2030년대 1% 초반, 2040년대 0% 내외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이라 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Potential Growth Rate)’이 앞으로 5년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평균 1.5%에 그치며, 15년 뒤에는 0% 안팎으로 추락한다는 암울한 전망과 함께 2047년쯤 마이너스(-)로 전환해 역(逆)성장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 것이다. 잠재성장률 0% 시점이 10년이나 앞당겨졌다. 과잉 규제와 고비용·저효율의 경제 구조는 개혁하지 않은 채 정부가 빚내서 재정 퍼주기 정책으로만 내달리는 나라에 어떤 미래도 없다는 방증(傍證)이다.
특히 한국은 대외 악재 못지않게 내수 침체와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는 대내 악재도 극복해야만 한다. 내수 부진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불확실성마저 커지면서 기업 투자와 정부 지출도 위축되고 있다. 예측 가능성을 높이지 못하면 소비와 투자 위축은 물론이고 금융 시장에도 불안감이 확산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IMF는 무역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더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IMF는 지난 4월 2일 발표된 미국의 상호관세를 거론하며 “이 자체만으로도 성장에 대한 중대한 ‘부정적인 충격(Major negative shock)’이며 이 조치가 예측 불가능하게 전개되는 점 역시 경제 활동과 전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라며 “무역 전쟁의 격화, 높은 불확실성은 장단기 성장률을 추가로 감소시킬 수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신시장 개척을 통한 수출 다변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병행되어야만 한다. “생산성을 높이는 혁신과 규제 개혁이 회복의 열쇠”라는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Kristalina Georgieva)’ IMF 총재의 조언도 귀담아들어야만 할 것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각각 145%, 125%라는 고율의 관세를 주고받으며 ‘치킨게임’을 벌이던 양국이 서로 100% 넘게 부과했던 관세율을 각각 30%와 10%로 낮추면서 미·중 관세전쟁이 휴전에 들어갔다. 미국과 중국이 오는 5월 14일부터 상대국에 대한 고율이 관세를 90일간 일시적으로 유예한다. 하지만 우리의 수출 전망은 여전히 암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무엇보다도 새 정부는 경상수지 흑자와 재정 건전성 제고에 국가역량을 총 집주(集注)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