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침해·교원 이탈로 침울한 교단, 희망 심어주고 사기 진작 서둘길

2025-05-15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우리나라 교사들의 사기 저하가 심각하다. 서울 서이초·대전 용산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두 번째 스승의 날을 맞았지만, 교사들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며 ‘교권 회복’을 호소하고 있다. 교사 사망을 계기로 교육부가 학생 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개정하고 국회에선 ‘교권 5법’이 통과됐지만, 실질적인 보호막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회의감과 무력감을 짊어진 교사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진 모양새다. 오히려 ‘3무 교실’만 더 공고화되고 있다. 복잡한 사안에 얽히지 않으려는 교사들과 제멋대로인 아이들이 만든 ‘무기력·무질서·무법’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 5월 12일 발표한 ‘제44회 스승의 날 기념 교원 인식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저(低) 연차 교사 이탈 현상에 대해 ‘매우 심각’하다고 응답한 교원이 51.6%, ‘다소 심각’ 응답이 38.4%에 달해 90%가 “저연차 교사의 이탈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교권 침해’가 첫손에 꼽혔다. 교직 사회의 사기 저하와 무력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조사다. 설문은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7일까지 전국 유·초·중·고 교원 559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실시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3년 3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퇴직한 10년 차 미만 초·중·고 교사는 576명으로 최근 5년 내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이번 조사에서 스스로 ‘정년까지 교직을 유지할 의사가 없다’라고 답한 교원도 무려 24%였다. 교원들은 저 연차 교사들의 교직 이탈 원인에 대해 ‘교권 침해(40.9%)’를 1순위로 꼽았다. ‘사회적 인식 저하(26.7%)’ ‘업무 강도 대비 낮은 보수(25.1%)’도 뒤를 이었다. 본인이 교직을 정년까지 유지하지 않을 생각이라는 교사 중 54.8%도 ‘악성 민원, 생활지도 어려움 등 교권 하락’을 이유로 꼽았다. 교육활동 침해 유형은 ‘정당한 생활지도에 불응해 의도적으로 교육활동 방해’(29.3%), ‘모욕·명예훼손’(24.6%), ‘상해·폭행’(12.2%), ‘성적 굴욕감·혐오감’(7.7%), ‘영상 무단 합성·배포’(2.9%) 순으로 많았다.

한편 교직 생활에 만족하는 교사가 10명 중 3명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이직과 사직을 고민하는 교사도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낮은 보수와 과도한 업무가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지난 5월 14일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제44회 스승의 날을 앞두고 지난 4월 23일부터 5월 7일까지 전국 유·초·중·고·특수학교 교사 825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교직 생활에 만족하는 교사는 32.7%에 불과했다. 교직 생활 만족도에 대한 점수도 5점 만점에 2.9점에 불과했다. 교사라는 직업이 사회에서 존중받고 있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라는 답변이 64.9%로 ‘그렇다’라는 답변 8.9%보다 현저히 높았다. 교사의 58%는 최근 1년간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했다고 답했고, 그 이유로 ‘교권 침해 및 과도한 민원(77.5%)’을 1순위로 꼽았다. ‘낮은 급여(57.6%)’, ‘과도한 업무(27.2%)’가 뒤를 이었다. 교사의 23.3%는 교권 침해로 정신과 상담이나 치료까지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들이 자긍심을 갖기보다 학생지도 과정에서 발생하는 학부모와의 갈등 등으로 고통을 겪고 이직을 고민하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은 2023년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순직 사건 직후 잠시 감소했다가 다시 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4234건의 지역교권보호위원회 개최 건수 중 3925건인 93%가 교육 활동 침해로 인정됐다. ‘교권보호 5법’의 국회 통과로 교사가 수업 방해 학생을 교실에서 분리할 권한을 갖게 됐고, 교육청·학교 등 기관 단위로 민원대응팀이 가동되는 등 교사를 위한 안전장치가 마련은 됐지만, 교사들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호소한다. 민원 제기와 경찰 신고는 쉽지만, 무고나 오인으로 판단되더라도 학부모들은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교육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악성 민원이지만 반복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교권 침해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당장 지난달에도 서울 양천구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3학년 남학생이 수업 중 휴대전화 게임을 하다 말리던 여교사를 휴대전화를 쥔 손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처럼 학생·학부모에게 물리적 폭행을 당하는 교사가 하루 평균 1.4명꼴에 달한다.

교권이 추락하고 학령인구 절벽으로 미래가 불투명해지면서 교대 진학을 희망하는 수험생은 줄고 있다. 올해 교대 입시 수시전형에선 내신 7등급 학생도 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과거 1등급 정도는 되어야 합격권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아닐 수 없다. 의사가 환자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치료가 불가능하듯 교사의 권위와 권한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육이 제대로 될 리는 만무(萬無)하다. 학부모와 학생이 교사를 믿지 못하고,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을 경계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겠는가 더 생각할 나위가 없다. 1년 차 새내기부터 교장·교감까지 중도 퇴직자도 늘고 있다. 교권 침해로 인한 사기 저하와 교원 이탈은 공교육의 질 저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고 결국에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다. 교사가 모욕당하고 교권이 무시되는 곳에선 어떤 아이도 바른 인격체로 자랄 수 없다. 다만 과거처럼 엄격한 훈육 수단을 도입하고 학생들을 통제해야 교권을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주장은 사안의 본질을 호도할 뿐이다. 교사의 교권과 학생 인권은 공존할 수 있고, 당연히 공존해야 마땅하다.

교직은 전문직이고, 교사는 미래의 동량을 기르는 교육자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지 못한다. 국가의 백년대계도 교사를 통해 구현된다.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교사가 희망을 품고 보람을 느낄 때 학교가 살아나고 대한민국의 장래가 밝아진다. 교단의 사기를 높이는 대책이 절실하다. 인공지능(AI) 등으로 교육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서 저연차 교사 이탈과 교사 지원자 감소는 교육의 질 저하로 직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더 이상의 교사 이탈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과도한 민원과 부당한 고소·고발에 시달리지 않도록 법적 안전망을 한층 강화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교사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확산하여 공감대가 형성되어야만 젊은 교사가 다시 사명감과 자긍심을 갖고 교단에 설 수 있음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학부모 사이에 여전히 도도하게 흐르는 ‘내 새끼 지상주의’와 ‘부당한 간섭과 폭력’에 맞서 교사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부재한 현실은 그대로인 데다 교권 침해 심화, 저연차 교사 이탈 가속화, 교사 지원자 감소, 교대 인기 추락 등의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게 되면 당연히 공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음은 불을 보듯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교사의 권위가 회복되고, 교육 활동을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다. 교대 커리큘럼부터 교사의 업무까지 전체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실효적 대안을 조속히 강구해야만 한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2, 2023년 진행한 이번 2주기 조사에는 1주기 조사(2013년 발표, 분석대상 23개국)에 이어 미국, 일본, 독일 등 31개국 성인 약 16만명이 참여했으며, 우리나라는 총 6198명이 조사에 참여했다. 2주기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서 국가별 교원 능력 자료를 별도로 분석한 결과 한국 교원의 언어능력, 수리력, 적응적 문제해결력은 16개국 가운데 각각 9위(249점), 10위(253점), 12위(238점)에 그쳤다. 교원 직업 만족도도 12위였다. PIAAC는 성인(16~65세)의 언어능력, 수리력, 적응적 문제해결력에 대한 핵심 정보처리 스킬(Skills) 수준을 국가 간 비교하고, 일상 및 직장생활에서의 역량 활용 수준 등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이며, 10년 주기로 실시된다. 이러한 OECD 평균보다 저조한 수준은 당연히 국가 경쟁력 저하를 우려스럽게 한다. 교육 당국은 보다 더욱 실효성 있는 교권보호 대책과 교원 사기진작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만 한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건강한 교육 생태계를 서둘러 만들어 가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첫 발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