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만 하는 중학생들, 수학·과학은 '톱'인데 교우 관계는 '꼴찌' 수준

2025-05-09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우리나라 중학생들의 수학(2위)·과학(2위) 등 학업 성취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이지만 교우 관계(36위)와 자주성(33위), 여가생활(36위) 등은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아이들에게 친구를 사귀는 법, 감정을 표현하는 법, 삶을 즐기는 법을 가르치지 않은 채 승자독식 사회에서 오직 성적만을 강요하고 있다는 방증(傍證)이자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정상적 교육 열풍의 반영(反影)이라 할 수 있다. 학업성취에서는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우수한 결과를 보였으나 관계 형성과 주체적 자아실현에서는 매우 낮은 수준이어서 공부만 시키는 한국 교육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결과여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지난 4월 24일 발간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 데이터를 기반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15세 청소년의 OECD 37개국 15세 청소년의 인문 교양 교육 수준을 분석한 ‘중등학교 인문 교양 수준의 국제 비교 결과’ 보고서('KEDI Brief' 제5호)에 따르면 한국 학생은 ‘학업성취도 영역’에선 수학 2위, 과학 2위, 국어(읽기) 3위로 매우 우수한 결과를 보였고, 인문교양 수준은 5위, 창의적 사고 9위, 사고표현은 11위로 준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관계 형성 영역’에서 부모와의 관계는 12위로 떨어졌고, 교우와의 관계는 36위로 거의 꼴찌 수준이었다. 다만 교사와의 관계는 1위를 기록하며 다소 대비를 이뤘다. ‘협업 영역’에서 신뢰는 2위, 공감 12위, 협력 26위로 세부 영역별 차이가 컸다. ‘감정조절 영역’에서 감정표현은 12위, 회복 탄력성은 19위로 다소 낮은 편이었다. 자아 정체성 중 독립성은 2위였으나 주체성은 20위, 자주성은 33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삶의 향유 영역’에서 일상생활은 27위, 여가생활은 36위, 진로 탐색은 29위로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이런 조사 결과는 책상에서 입시 공부를 하는 데 대부분이 시간을 쏟아붓는 우리나라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밤늦게까지 학원가를 전전하고, 특히, 영어유치원 입학을 위한 ‘4세 고시반’, 유명 영어·수학학원 입학에 대비하는 ‘7세 고시반’, ‘초등 의대반’ 등의 열풍으로 아이들은 유아기부터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과제와 시험공부에 매달려야만 하는 우리나라 교육의 자화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결과로 학업 성적은 뛰어나지만, 또래와 어울려 놀 시간도, 감정을 나눌 기회도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첨단기술 산업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책상에 앉아 필수과목에 매달린 사람을 인재로 여기지 않는다. 취업시장에서도 창의성과 협업 마인드가 신입사원을 뽑는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

특히, 중학생 시기는 자아 정체성과 사회성, 창의성 등이 형성되는 중요한 발달 단계다. 하지만 한국 교육은 여전히 성적 지상주의, 학벌주의, 대학 서열 중심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타인과 공감하고 협력하며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할 줄 아는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학업 성적은 우수할지 몰라도 정서적으로 고립되고 사회적 관계에 서툰 인재가 될 우려가 크다. 이미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Big-tech) 기업들은 협업과 창의성을 핵심인재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제아무리 공부를 잘해봐야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해 내지 못하고 팀원으로서 협력 마인드를 발휘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인식과 관념이 지배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으로는‘인문 교양 교육 강화’를 제시했다. 보고서는 “중학생이 속한 청소년기는 사회·정서·인지적 발달의 중요한 기반을 형성하는 시기로서 자아 정체성과 더불어 창의성과 인성 배양에도 결정적 역할을 하는 때”라며 “학교 교육과정과 자연스럽게 연계해 자신과 사회와 세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자율성과 존엄성을 체화할 기회가 폭넓게 제공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이 글로벌 핵심인재 양성에 경쟁적으로 국력을 쏟아붓고 있다. 양질의 고급 전문인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그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요즘 핵심인재는 단순히 지식 축적을 넘어 창의성과 협업 정신이 뛰어나야만 한다. 이런 역량을 두루 갖추려면 어릴 때부터 주체성을 키우는 전인적 교육환경이 조성돼야만 한다.

이제는 교육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한다. 대학 입시만을 위한 ‘학원식’ 주입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과감히 전환해야만 한다. 조기교육으로 학습 진도를 앞서나가면 성공한 사람이 될 것이란 착각이 학생들의 정신마저 병들게 만들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난 5월 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11월 우울증 등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질환으로 병원(의원급)을 찾은 18세 이하 아동·청소년 환자는 27만625명으로 집계됐다. 4년 전인 2020년 13만3235명과 비교했을 때 2배 이상으로 증가한 수치다.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질환 아동·청소년 환자는 2020년 이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2021년 17만2441명, 2022년 21만2451명, 2023년 24만4884명으로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 기간 연평균 증가율은 19.4%이다. 아이들의 불안증세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거세게 불고 있는 조기학습 열풍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최악의 인구절벽 위기에 서 있다. 통계청의 인구 동향 조사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은 1970년 4.53명에서 꾸준히 감소해 2023년엔 0.72명을 기록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출산율이 1.0명 미만인 유일한 국가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9년 만에 0.75명으로 소폭 반등한 데 이어 올해도 합계출산율 예상치 0.79명에 부합하는 추세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OECD 평균(1.5명)의 절반 수준이며,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다. 이에 저(低) 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고질적인 낡은 교육체계를 바꾸지 못한다면 출산율이 상승하고 인구가 다시 늘어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것이다.

인간은 인공지능(AI)처럼 무제한으로 데이터를 공급하고 학습시킬 수 있는 도구가 결코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창의성 및 인성을 갖춰가는 전인적 과정이 교육의 본질이다. 미래 핵심인재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나라 안 경쟁에 매몰된 낡은 구각(舊殼)에서 벗어나 교육 관념을 과감히 혁파해야만 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제시한 ‘인문 교양 교육 강화’는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창의력, 협업 능력, 관계 형성 능력 등 미래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질 역량을 키우는 교육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진짜 ‘미래형 인재’를 기르고 양성하는 첩경(捷徑)이자 지름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