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세 협상 재개에 아시아 통화 요동, 뼈아픈 경제 사령탑 공백
한국 경제의 위기가 갈수록 심화하는 와중에 대통령·총리·경제부총리 모두 공석인 상태에서 대통령 선거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지만, 세계 경제는 더욱 급박(急迫)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는 지난 5월 7일(현지 시각) 개최한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4.25~4.5%로 유지했다. 연준(Fed)은 지난해 9월 이후 3차례 연속 인하한 이후 올해 들어서는 3회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압박에도 신중한 행보를 고수한 것이다. 연준(Fed)은 성명에서 “관세 전쟁으로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라며 “고용과 물가 상승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제롬 파월(Jerome Powell)’ 연준(Fed) 의장이 “지금은 지켜보며 기다릴 때”라고 할 만큼 세계 경제는 짙은 안갯속이다.
그나마 ‘치킨게임’을 벌이던 미국과 중국의 무역 협상 개시는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미국 재무장관은 5월 10일부터 스위스에서 중국과 협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양국은 각각 145%, 125%라는 고율의 관세를 주고받으며 사실상 교역이 중단된 상태다. 당장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대화 자체가 의미 있는 진전이다. 미국 주식시장이 롤러코스터(Roller coaster)를 탄 듯 요동치고 있다. 운전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잡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관세 전쟁’은 미국의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내수시장이 위축되고,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등 미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관세는 미국의 제조업을 살리고, 세수를 늘리며 경제 성장의 동력이 돼야 한다. 주식시장 호황도 순리다. 하지만 고율 관세의 여파가 정작 미국 주식시장에 부메랑(Boomerang)이 돼 돌아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경제는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0.3%(연율 기준)로 감소해 3년 만에 처음으로 역(逆)성장에 빠지는 등 고관세가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고용 시장이 냉각되면서 소비 둔화를 동반하고 있다는 지표도 나왔다. 실제로 미국의 3월 상품수지 적자는 1620억 달러로 전달 대비 9.6% 급증했다. 3월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중국도 기준금리를 깜짝 인하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으나 관세 타격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의 1분기 대중 수입 비중은 7년 전 22%에서 11%로 반 토막 났다. 미국의 관세 집중 폭격에 중국의 제조업 경기도 꺾였다. 4월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수출 주문이 급감한 여파로 기준선(50)을 밑도는 49에 그쳐 16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미국과의 ‘관세 전쟁’ 돌입 이후에도 한동안 선방해온 중국 증시가 다시 움츠러들고 있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 4월 30일 전 거래일 대비 0.23% 떨어진 3279.03으로 거래를 마쳤다.
우선 미국 주식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별 상호 관세율을 공개한 지난 4월 2일(현지 시각) “오늘은 ‘해방의 날(Liberation Day)’, 미(美) 제조업이 다시 태어난 날”이라며 자축했지만, ‘해방의 날’ 이후 말 그대로 폭락했다. 지난 4월 3~4일 이틀간 S&P500 지수는 10.5%, 나스닥 지수는 11.4% 급락했다. 결과적으로 뉴욕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이틀 동안 약 6조6000억 달러(약 9223조원) 증발했다. 앞서 백악관은 “미국이 관세 정책으로 향후 10년 동안 약 6조 달러의 추가 세수를 거둘 수 있다”라고 주장했는데, 공교롭게도 관세로 인해 이틀 만에 비슷한 금액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셈이다. 최근에는 관세 유예 조치 등으로 주가가 일부 반등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전하는 모양새가 아닐 수 없다.
아시아 환율 시장도 ‘플라자 합의 시즌 2’를 연상케 할 정도로 요동치고 있다. 7일 연속 상승 중인 대만 달러가 37년 만에 5% 급등하고 덩달아 한국의 원화도 1300원대로 치솟으면서 미국이 대만에 통화가치 절상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타이완 달러 가치가 지난 5월 5일과 6일 이틀간 10%가량 오르면서 원화 가치도 급상승해 최근 원·달러 환율은 1370원까지 내려오기도 했다. 지난달 초 1387원까지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한 달 새 100원 이상 내린 것인데, 시장에선 미국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엔화 절상을 강요했던 ‘플라자 합의’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플라자 합의’는 미국이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엔화 절상을 강요했던 사건인데 최근의 아시아 통화 강세를 이와 연결 지으려는 것은 다소 무리하는 견해가 많다. ‘윌리엄 라이(William Lai)’ 대만 총통 역시 “일부 정치인의 대만 달러 상승 원인에 대한 지나친 추측이 대중을 오도하고 있다”라며 “대만과 미국의 관세 협상 1단계에는 환율 문제가 포함되지 않았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은 1396원으로 떨어져 작년 11월 이후 처음 1300원대에 진입했다. 미국이 대만과 통상 협상에서 환율 문제를 압박해 대만 뉴달러의 가치가 5월 들어 5% 이상 하락했고, 그 여파가 나비효과처럼 번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2주 안에 의약품 관세도 발표하겠다”라고 예고했다. 한국의 새 주력 수출품인 바이오시밀러는 물론 선크림까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7월 패키지’ 협상에서 환율 문제가 테이블에 오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격랑 속에 한국의 통상·환율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이다. 탄핵소추에 앞서 부득이 사퇴한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공백이 더 뼈아프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대통령부터 경제부총리까지 대행 체제의 한계를 정부 시스템으로 대응하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청문회를 거쳐 새 장관이 임명될 때까지 정책 리더십 실종 사태는 불가피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고 자명(自明)하다.
‘아세안+3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이탈리아 밀라노를 방문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5월 5일(현지 시각) 기자간담회에서 “바깥에서 볼 때는 선진국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나 해명해야 해서 곤혹스러운 한 주였다”라고 말했다. 회의에서 한국의 경제 사령탑 공백에 대한 질문이 많았는데 설명할 논리가 궁색했던 모양이다. 지난 4월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4월 3일부터 외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대해 25% 관세 부과)’이 터졌을 때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들어온 느낌”이라고 했던 이 총재는 “지금도 거의 똑같다”라고 했다. 이 총재는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이 기업 투자나 정부 지출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정치 불확실성이 위기로 몰아가지는 않지만, 경제가 가라앉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며 “이걸 빨리 끝내야 한다”라고 했다. 실제로 이 총재가 걱정한 정치 불확실성이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성장엔진 꺼진 한국 경제가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 –0.2%의 역(逆)성장 충격에 표류(漂流)하고 있다. 지난해 1분기 1.3% 깜짝 성장 이후 작년 2분기 -0.2%로 역성장을 기록한 뒤 3분기 0.1%, 4분기 0.1%에 이어 올해 들어 다시 –0.2%로 뒷걸음질 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세부 지표를 보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극심한 내수 부진이 성장률을 갉아먹었다. 비상계엄과 탄핵 등 정국 불안의 여파와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민간소비(-0.1%↓)가 줄고, 경기 부진 속 건설투자(-3.2%↓)와 설비투자(-2.1%↓)도 쪼그라들었다. 한국 경제의 엔진인 수출(-1.1%↓)도 감소했지만, 수입(-2%↓)이 더 큰 폭으로 줄며 ‘순(純)수출(수출 – 수입)’이 내수 부진에 따른 역성장 폭을 그나마 줄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 5월 8일 잠재성장률을 올해 1%대 후반으로 추정하며 2030년대 1% 초반, 2040년대 0% 내외까지 하락할 것이라 내다봤다. 대선 경쟁에 돌입한 정치권도 작금의 국정의 위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불안 불안한 ‘대외신인도’를 고려해 재정에 심각한 부담을 주는 무책임한 공약 발표를 자제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6·3 대선 이후 새 정부 출범 시까지는 현 체계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13조 8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서둘러 조기·신속 집행하여 서민과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이 추경의 효과를 체감하고 이것이 다시 내수 진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