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 중 하나가 '좀비기업', 신속한 기업 구조 조정으로 산업 살려야
최근 3년간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도 못 갚는 이른바 ‘좀비기업(Zombie Company │ 한계기업)’이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년간 영업이익 감소와 금리 상승 여파로 대기업이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갚는 능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도 못 내는 대기업도 4곳 중 1곳에 달했다. 좀비기업이란 자생 능력이 없어 지속 가능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정부나 은행의 도움을 받아 유지되는 한계기업을 말한다. 좀비기업이 늘어날수록 경제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정부나 은행 자금이 좀비기업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정상기업들이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좀비기업으로 인한 부실채권 증가로 금융기관 부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 금융당국이 퇴출 대상으로 삼는 좀비기업이라고 불리는 한계기업이란 ‘이자보상배율(Interest Coverage Ratio)’이 3년 연속 1을 하회(下廻)하는 기업을 말한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이 비율이 1 미만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지난 4월 29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밝힌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과거 4년 치(2021∼2024년) 실적 비교가 가능한 손익계산서가 있는 302개사(금융회사 제외)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연결 재무제표 기준 ‘이자보상배율(ICR)’이 1 이하인 기업 비중이 지난해 24.2%(73개)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채무상환능력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로 기업이 벌어들인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며, 채권자, 투자자, 신용평가 기관 등이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평가할 때 널리 활용되는 데 일반적으로 기업의 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값을 말하는 데 이 배율이 1을 밑돌면 연간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자보상배율 1 이하 기업 비율은 2021년 11.3%에 그쳤으나, 2022년 14.6%, 2023년 19.5%를 찍고 지난해에는 무려 20%를 넘어섰다.
‘리더스인덱스’에 의하면 이들 기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총 2964조6970억원으로 2021년 대비 25.5%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97조9420억원으로 1.2% 감소했다. 이 기간 이자 비용은 22조9820억원에서 54조2961억원으로 136.3%나 급증했는데 반해 재무건전성 지표인 이자보상배율은 8.72에서 3.65로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영업으로 번 돈으로 이자 비용을 갚는 능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의미다. 조사 대상 302개 기업의 70.9%인 214개사가 최근 3년 새 이자보상배율이 급락했는데 반해 개선된 기업은 88곳뿐이었다. 특히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 1 이하 기업은 2021년 34개 기업(11.3%)에서 지난해 73개 기업(24.2%)으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 중 20개 기업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이하여서 잠재적 부실기업을 뜻하는 ‘좀비기업’ 꼬리 띠를 달게 됐다. 조선, 보험, 공기업을 제외한 대부분 업종이 좋지 않았고 특히 업황이 악화한 석유화학은 지난해 평균 이자보상배율이 0.64에 불과했다.
500대 기업이 이 지경이다 보니 나머지 중견·중소기업의 경영 상황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중견기업 748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금융 애로 조사에서 중견기업 28%는 “올해 자금 사정은 작년보다 더 악화했다”라고 응답했다. 나아진 중견기업은 10%에 불과했다. 지난해보다 자금 사정이 나아진 중견기업은 10곳 중 1곳에 불과한 것이라는 의미다. 매출 부진, 이자 비용 증가, 인건비 상승 등이 발목을 잡은 가운데 정책금융의 높은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월 28일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가 중견기업 748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5년 중견기업 금융 애로 조사’에 따르면 전년 대비 자금 사정이 개선됐다고 답한 중견기업은 10.9%에 그쳤다. 60.4%는 대동소이하다고 응답했지만, 28.7%는 오히려 자금 사정이 악화했다고 답했다.
자금 사정 악화 요인으로는 ‘매출 부진(53.0%)’, ‘이자 비용 증가(14.0%)’, ‘인건비 증가(10.2%)’ 등의 순이었다. 특히 자금 사정이 나빠졌다고 답한 기업 중 33.0%는 현 상황이 지속할 경우 올해 하반기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견련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과 ‘내수 부진’의 지속으로 매출 감소를 호소하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닫는 자금 사정 속에서도 중견기업 16.7%는 올해 ‘인건비 상승(43.2%)’, ‘원·부자재 가격 상승(34.4%)’, ‘설비투자 확대(29.6%)’ 등의 이유로 추가적인 자금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자금 조달 경로를 살펴보면 중견기업들은 주로 시중은행(53.6%), 정책금융(11.6%), 직접금융(9.8%) 등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책금융 접근성에 대한 불만도 컸다. 중견기업들은 ‘엄격한 지원 요건(28.7%)’, ‘정책 자금 정보 부족(21.3%)’ 등의 순으로 주요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업종과 매출 규모에 따라 정책금융 활용률의 격차도 컸다. 시중은행을 이용하는 중견기업들은 ‘높은 금리(49.9%)’, ‘복잡한 심사(8.8%)’, ‘과도한 담보·보증 요구(8.0%)’ 등의 순으로 문제로 지적했다. 직접금융을 활용하는 비율은 9.8%에 그쳤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회사채 발행(63.0%)에 집중됐다. 중견련 관계자는 “중견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고려할 때, 정책금융의 문턱을 낮추고 시중은행의 경직된 운영 기준을 완화하는 등 자금 조달 애로를 시급히 해소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관세 전쟁’으로 글로벌 경기 하락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감량 경영’에 들어가고 있지만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내수는 부진해도 수출이 버팀목이었는데 이제는 수출 환경마저 악화돼 출구가 없다. 경제가 버티려면 강도 높은 산업 구조 조정과 기업 규제 개선, 노동시장 선진화 등 근본적인 수술을 지금이라도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 현 상황은 IMF 외환 위기를 전후해 국내 기업이 생존 위기에 내몰렸던 때에 못지않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내몰린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위기상황이다. 당시는 급성 쇼크였다면, 지금은 구조 조정을 미뤄 생긴 만성 질환이란 게 적확(的確)한 표현이다. 회생이 더 힘들다는 의미의 다른 표현이다.
한편 한국산업은행은 지난 4월 28일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형태로 한화오션 지분(전 대우조선해양) 일부(19.5%)를 매각하기 위한 수요예측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지난 2022년 한화에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고 남은 지분을 처분하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말 한화오션 지분 19.5%를 보유하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23.1%)에 이어 2대 주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업은행이 지분 매각에 나선 건 조선업 호황에 따른 주가 상승 영향으로 보인다. 한화오션 주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일인 지난해 11월 6일 주당 2만7800원에서 지난 4월 28일 종가 기준 8만9300원으로 3.2배 올랐다. K-조선업이 부활한 덕분에 한화오션 주가는 6개월 만에 3배 이상 올랐다. SK하이닉스나 한화오션의 부활을 보면 한때 경영이 악화하더라도 신속한 기업 구조 조정을 통해 산업을 살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본보기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가치가 있다. 기업의 자구 노력이나 시장 인수·합병 외에도 긴 안목에서 정부의 산업 구조 조정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구조 조정은 실업을 야기(惹起)하므로 고통스럽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이들을 연명시킬 다양한 지원을 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한국개발연구원(KDI, 2017) 연구는 중소기업이 정부의 금융지원을 받으면 생존율은 높아지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진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게다가 ‘좀비기업’은 정부 돈으로 연명하며 저가 입찰 등으로 건강한 기업의 성장까지 가로막는 부작용마저 낳는다. 이들에 대한 구조 조정이 시급한 이유다. 의당 회생 가능한 기업은 살리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경영권까지 보호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인수합병, 인수개발 등 다양한 방안이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급변하는 국제경제 질서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산성을 강화하는 일임은 틀림이 없다. 국가적 자원이 좀비기업에 낭비되지 않고 생태계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기업 구조 조정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때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기업 구조 조정은 언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기 논쟁은 늘 있어 온 터지만, ‘목욕탕 수리론’과 ‘외과 수술론’의 대립이 그 대표사례다. ‘손님 없는 여름철에 목욕탕을 수리하듯 침체기에 구조 조정을 해야 부실기업도 쉽게 포착되고 구조 조정에 대한 공감을 얻을 수 있다’라는 입장과 ‘환자가 건강해야 수술을 하듯 구조 조정은 호황기로 미뤄야 한다’라는 입장이 서로 맞선다. 현실적으로는 호황기에 구조 조정을 하면 경기 사이클 진폭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으나 문제는, 환자가 아픈 곳이 없으면 수술을 받으려 하지 않는 것처럼 호황기엔 구조 조정에 대한 공감을 얻기 어렵다. 결론은 기업 구조 조정의 가장 좋은 타이밍은 경기 침체기의 끝자락이란 게 설득력을 얻는다. 침체를 겪으면서 좀비(한계)기업이 모두 드러나 구조 조정에 대한 공감대를 쉽게 형성하면서도 실업 등 경제 전반의 고통을 곧 다가올 경기회복으로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금까지 누적된 기업 규제와 중소기업에 대한 과도한 정부 보조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동성을 모두 떨어뜨리고 있다. 신속한 기업 구조 조정으로 신성장동력 산업 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