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존중하고 경영을 이해하는 ‘제135주년 세계 노동절’ 되길

2025-05-02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5월 1일은 1886년 미국 시카고에서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파업 시위를 벌이던 노동자들이 희생된 날을 기념하는 ‘제135주년 세계 노동절’이다. 매년 5월 1일은 ‘메이데이(May Day)’라 불리는 국제적 노동절이다. 노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며 근무 의욕을 높이고 노동의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노동 약자들의 권리·보호를 되새기고 노동 현안을 되짚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국제 노동자의 날(International Workers' Day)’에 해당하는 기념일로,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8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거리 파업 집회를 연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을 시초로 한다.

1884년 5월 1일 미국의 방직 노동자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쟁의를 시작하고 각 노조가 이에 호응하여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어 1886년 5월 1일 시카고에서도 ‘노동조합연합회’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교육’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가 죽거나 다치고 체포되었다. 미국 노동자의 시위는 1889년 파리에서 열린 제2차 인터내셔널 대회에 보고되었다. 이 대회는 미국 노동자의 5월 1일 시위를 기념하여 이날을 국제적인 시위운동의 날로 결정했다고 한다.

한국이 노동절을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다. 1957년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대한노총)는 대의원대회에서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하기로 결의하였다가 1963년 4월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지정하고 유급휴일로 정했고 1973년 3월에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근로자의 날’이 포함되었다. 1994년 3월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국제적 노동절인 ‘메이데이’에 맞춰 날짜를 5월 1일로 변경하였다. 1980년대 이후 노동계급의 진출이 확대되고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대한노총이 주도하는 종전 근로자의 날(3월 10일) 행사와 의미가 형식화되고 5월 1일 ‘메이데이’가 복원되어 행사가 진행되는 이원화 양상을 보였다. 이에 따라 1994년 1월 정부는 ‘근로자의 날’을 5월 1일로 변경했으나 명칭은 그대로 두었다.

1980년대 후반에 취해진 민주화 조치와 경제 호황으로 인해 중산층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해 나가면서 노동자의 처우와 복지 개선에 투쟁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97년 들이닥친 외환위기로 인해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기도 하였다. 이후 현재까지 노동자들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비합리적인 노동문화와 노동집단의 양극화, 비정규직 양산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렇기에 ‘노동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노골적으로 반노동 행보를 보인 전직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된 후 첫 노동절을 맞는 감회는 더 남다르지 않을까 싶다. 윤석열 정부 3년간 노조 활동은 크게 위축됐고, 노동 현장은 더 열악해졌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올해 ‘대선 속 노동절’이 노동이 존중받고 경영이 이해되는 노사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새로운 한국으로 가는 변곡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의 배제와 탄압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듯하다. 2022년 6월 ‘안전운임제 3년 연장’ 약속 이행을 요구한 화물연대에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것을 신호탄으로 건설노동자를 ‘건폭(건설노조+조폭)’이라 멸칭(蔑稱)을 하며 대대적인 단속을 감행했다. ‘건폭몰이’에 양회동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2023년 5월 1일 노동절 분신을 해 하루 만에 숨졌다. 그해 2월 21일 당시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해 법치를 확고히 세울 것”을 주문했다. 이후 건설노동자를 상대로 법치를 내세운 탄압이 시작됐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22차례 압수수색을 당했고, 건설노동자 2250여 명이 조사를 받아 42명이 구속됐다. 양회동 지대장의 분신은 바로 이런 과정에서 일어났다. 양 지대장의 비극은 노조를 악마화하고 혐오를 조장한 결과라는 노동계의 중론이다. 윤석열표 노동 개혁이 결국 어느 것 하나 성과 없이 겉돈 것도 대화 없이 쌓인 노·사·정의 불신·갈등과 결단코 무관치 않아 보인다.

노동 약자들의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 29일 발표한 ‘2024년 6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은 지난해 6월 기준 2만7703원이고 비정규직은 1만8404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11.7%, 4.7% 증가해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66.43%에 그쳤다. 이는 정규직이 100만원을 벌 때 비정규직이 받는 돈은 66만4300원 정도로 무려 33만5700원이나 덜 받는다는 의미다. 정규직·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8년 전 수준으로 뒷걸음친 것이다. ‘건폭몰이’ 여파인지 노조 조직률은 2020∼2021년 연속 14.2%를 기록하다 2023년 13%로 떨어졌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끝내 무산시킨 것도 마찬가지다. 노란봉투법(정식 명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은 쟁의행위 범위 확대와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을 주된 내용으로 간접고용이 확산된 현장에서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노조 쟁의에 대해 과다한 배상 책임을 부과해온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이렇듯 윤석열의 되풀이된 입법 거부권 행사는 지난 대선 때 공약한 ‘노동 존중’ 약속을 휴지 쪽지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비등(沸騰)한 실정이다.

한국은 여전히 노조 조직률, 비정규직 비율, 노동시간, 산업재해 등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노조 조직률은 13.0%에 그쳤고, 20대 비정규직 비율이 2013년 31%에서 2024년 43%로 치솟았으며, 2024년 6월 기준 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의 전체근로자 1인당 근로시간은 146.8시간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노동 조건과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파업에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물려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나라가 결코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한 ‘노란봉투법’을 향해 근거도 없이 경제를 망친다는 주장 역시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닐 수 없다. 노동 없는 성장도 없고 연대 없는 권익도 없다. 노동자 개개인의 존엄을 지키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은 ‘건강한 노동조합’으로부터 시작된다.

한편, 4월 28일은 1993년 5월 태국의 한 인형공장에서 노동자 188명이 숨진 화재 사고를 계기로 지정된 ‘세계 산재노동자의 날’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년간 국가기념일 지정이 추진돼오다, 지난해 10월 '산재보상보험법'의 개정으로 올해 첫 법정기념일로 맞았다. 무엇보다도 위험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지난해 10월 25일 오후 3시 20분께 울산의 한 공장에서 이산화탄소가 누출돼 1명이 죽고 4명이 다쳤는데, 위험해서 작업할 수 없다는 노동자들의 주장은 묵살(默殺) 됐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5일 민주노동연구원에서 조사한 ‘노동자 작업중지권 사용 실태’에 따르면 위험 현장에서 일하는 하청, 비정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 사용은 거의 봉쇄돼 있다고 한다. 2024년 업무상 질병 산재 처리 기간은 평균 214.5일로, 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가 산재승인 여부 확인까지 7개월 이상 소요된다고 한다. 산재보험 제도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제135주년 근로자의 날을 맞이하여 진정 기념해야 할 가치는 바로 건강한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대원칙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며, 불합리한 구조와 부당한 처우에 당당히 맞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고 투쟁하는 공동체다. 건강하고 자율적인 노동조합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의 정의를 위한 든든한 기반이 된다는 평범하지만,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엄중한 가치임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사용자 측 역시 노동조합을 갈등과 투쟁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땀의 가치를 진정 소중히 여기고 상생의 파트너로 존중해야만 한다. ‘노동을 존중하는 경영, 경영을 이해하는 노동’이 되어야만 한다. 결국 ‘노동에 쏟은 정성이 경영의 가치가 된다’라는 명제 앞에 순응(順應)해야만 한다.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입법·제도 개선은 등한시하면서 노동 약자를 보호한다는 구호만 외쳐대는 것은 허망(虛妄)할 뿐 아무런 실익(實益)이 없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4.5일 근무제, 정년 연장 등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책무가 참으로 막중하다. ‘노란봉투법’ 입법이 노동 정책과 노동권을 바로 세우는 전기가 되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