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역성장’ 경고에 관세·내수 총체적 비상인데도 기준금리 동결

2025-04-18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한국은행이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2월 전망치(0.2%)를 밑돈 것으로 추정하며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밝혀 충격이 크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기존 전망치(1.5%)에서 다음 달 대폭 하향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가 애초 예상보다도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해 보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4월 17일 2분기 첫 ‘통화정책 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연 2.75%로 동결을 결정했다. 올해 1분기 역성장 가능성 경고로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가 절실하지만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발(發) 관세 충격과 환율 불안, 가계부채 증가 등을 감안해 통화정책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기 부양엔 무엇보다 기준금리 인하가 특효약(特效藥)이자 즉효약(卽效藥) 임에도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한 데는 극심한 경기 침체에도 금리 인하 카드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우리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봉착했다는 의미로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읽힌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전망의 기본 시나리오조차 설정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0%대 성장 위기에 놓인 한국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당연히 금리를 내려 경기 부양에 나서야만 하지만, 관세 충격과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환율 불안 탓에 금리 인하에 나설 수도 없는 딜레마에 직면한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가 절실하지만, 금리를 낮추면 당장 원·달러 환율 상승이 두렵다. 최근 미국의 관세정책에 따른 불확실성이 금융과 외환시장에서도 크게 나타나 한때 1500원을 위협할 정도로 치솟은 원·달러 환율과 지난해 4분기 가계부채가 역대 최대 규모인 1927조3000억원으로 불어나는 등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가계부채가 금리 인하에 걸림돌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인 미국(연 4.25~4.50%)보다 기준금리가 1.75%포인트나 낮은 상태다. 금융 및 물가 안정의 대가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귀의한다. 한국은행은 ‘경제 상황 평가’ 보고서에서 “1분기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했지만, 문제는 2분기 이후로 귀결된다.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 직전 반짝 증가했던 수출이 4월부터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국책 연구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은 미국의 관세 인상에 따른 영향이 생산 둔화로 먼저 나타나고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KDI는 지난 4월 7일 발표한 ‘경제동향 4월호’를 통해 “미국의 관세 부과로 인해 대내외 수요 증가세가 축소됨에 따라 생산이 둔화되고 있다”라며 “대외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며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은행도 올해 수출이 전년 대비 축소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관세 부과가 본격화된 4월 이후 우리나라 수출이 점진적으로 감소할 수 있지만 정부 대책 등의 영향을 고려할 때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렇듯 우리 경제의 성장률에 빨간불이 켜진 건 국내 정치 불확실성과 동시다발 대형 산불, 미국 관세정책 우려 등이 켜켜이 겹치면서 내수와 수출 모두 기대에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금리를 인하하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극심해진 환율 변동성이 한국은행의 발목을 잡았다. 상호관세 발효 직후 원·달러 환율은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입 물가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오락가락 토지거래허가제에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집값이 들썩인 것도 운신의 폭을 제약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와 성장 등을 봤을 때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지만, 정책 불확실성, 금융 안정, 자본 유출입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은 금리를 동결하고 지켜보자는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의 관세정책 변화로 갑자기 어두운 터널에 들어온 느낌이라 이렇게 갑자기 어두워진 상황에서는 속도를 조정하면서 좀 밝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있다”라고도 말했다. 이미 글로벌 투자은행(IB) 사이에서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1% 안팎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JP모건이 최근 1.2%에서 0.7%로 더 낮췄고, 리서치 전문기업 캐피털이코노믹스는 0.9%로 낮췄으며 씨티와 노무라도 1%대 턱걸이 수준인 1.2%를 제시하고 있다. 한은도 "4월 10일 현재 주요 40여 개 IB 등 시장 참가자들의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중윗값은 1.4%, 하위 25%는 1.1%"라고 소개했다.

문제는 관세전쟁 영향은 아직 반영조차도 안 됐다는 데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 90일간의 상호관세 유예를 줬지만, 협상 결과에 따른 불확실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로 맞불을 놓으며 글로벌 경기의 침체 가능성도 제기된다. 세계무역기구도 올해 상품 무역 성장률 전망을 3.0%에서 마이너스(-) 0.2%로 내려 잡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 ‘제롬 파월(Jerome Powell)’ 의장조차 “예상보다 높은 관세로 물가 인상과 성장 둔화가 예상된다”라며 “양대 목표(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선 당연히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격적인 재정 확대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마중물을 공급해야만 한다.

경기를 진작시키는 두 축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과 기획재정부의 재정정책이다. 일단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를 미루기로 한 만큼 재정정책의 시급성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오는 4월 18일 1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현재 경기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12조원으로는 절대 부족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최소 15조원 이상으로 증액할 필요가 있다. 타이밍이 너무 늦었고, 경기 마중물 역할을 하기엔 액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규모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속도다. 국회는 경제 주체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음을 고려해 최대한 심의에 속도를 내야만 한다. 기정예산의 신속한 집행으로 총지출 진도율을 끌어올리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다만 민생을 살리면서 생산적인 곳에 쓰여야 할 재정이 부동산 시장 등 엉뚱한 곳으로 흐르지 않도록 재정 흐름의 효율적인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향후 3개월 이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놓은 금융통화위원회도 추경예산과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기준금리 인하의 골든타임 만은 결단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