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맞는 열한 번째 봄, 세월호 참사 11주기 우리 사회는 얼마나 안전해졌나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제주행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지 벌써 열한 번째 맞는 봄이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이자 미증유(未曾有)의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세월호 참사로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 그리고 일반인 43명 등 총 304명이 사망했다. 세월호 운영사인 청해진해운은 승객을 더 태우기 위해 객실 구조를 변경하고 참사 당일에는 최대 화물 적재량 6825톤(t)짜리 배인데 이보다 무려 1228톤이나 더 많은 짐을 실었다. 평형수는 최소 기준치 1694.8톤(t)의 절반도 채 안 되게 넣었다.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이들이 조금씩 쌓아온 부조리가 한꺼번에 무너져 터진 재앙이었다. 그날의 세월호 선장 이준석은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기억조차 하기 싫은 뼈아픈 충격은 어느덧 11년이 훌쩍 지났다. 그러나 피해자 추모와 기억, 연대와 치유, 참사의 교훈엔 별도의 유효기간이 따로 없기에, 세월호 참사는 앞으로도 계속 소환될 것 같다.
다시 11주기를 맞아 전남 목포신항 세월호 거치소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추모 공간을 찾는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희생자와 참사의 교훈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우리 사회가 이윤이 먼저고 안전은 뒷전인 물질만능주의 구태(舊態)와 구각(舊殼)에서 하루속히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2017년 12월 21일 오후 3시 48분경에는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에 화재로 29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40명이 부상했고, 2018년 1월 26일 오전 7시 30분쯤 경남 밀양 가곡동 소재 세종병원에서 불이 나 46명이 숨지고 109명이 부상했으며,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숨졌으며, 2024년 6월 24일 오전 10시 30분경에는 경기 화성시 서신면 소재 아리셀 공장 폭발 참사로 이주노동자 등 23명이 희생됐다.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9시 3분경에는 제주항공 참사로 시민 179명이 또 목숨을 잃는 등 대형참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 달여간 지하 공간에서 잇따라 발생한 사고로 발밑 위험이 커진 가운데 신안산선 공사장 붕괴와 잇단 싱크홀(땅 꺼짐) 사고 빈발로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크다. 지난 4월 13일 새벽 5시 30분쯤 부산 사상구 학장동 ‘사상~하단 선’ 도시철도 공사 현장 인근 횡단보도 옆에서 또다시 가로 5m, 세로 3m, 깊이 5m 규모의 대형 싱크홀(땅 꺼짐)이 발생했다. ‘사상~하단 선’ 공사 현장에서는 지난해 9월에도 대형 싱크홀이 생겨 트럭 2대가 8m 아래로 추락했다. 같은 날 서울 마포구 애오개역 2번 출구 옆 차도에서 직경 약 40㎝, 깊이 약 130㎝ 규모의 땅 꺼짐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11일 오후 3시 13분께에도 경기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복선전철 5-2공구에서 지하터널 공사 현장과 상부 도로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작업자 2명이 매몰됐고, 이 가운데 20대 작업자 1명은 13시간 만에 구조됐지만, 50대 노동자 1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하나같이 안전보다 이윤을 앞세우다 발생한 참사로 물질만능(物質萬能)주의와 안전불감증(安全不感症)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지난 3월 하순 영남 일대를 강타한 대형 산불로 32명이 사망하고 재산피해액만도 무려 10조원이 넘게 추정되고 ‘인재’로 인해 피해가 더 커졌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이번 경북 지역 산불에 투입됐던 진화용 헬기 수가 2022년 울진·삼척 산불 때 동원된 헬기 수보다도 적었다고 한다. 경북 산불의 인명·산림 피해는 울진·삼척 때의 3배 수준이다. 앞서 발생한 산불에 잘 대비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산림청이 보유한 진화 헬기 50대 가운데 러시아산 헬기 등 10대는 부품 조달과 정비 문제로 이번 산불 현장에 출동하지 못했다. 그러함에도 올해 산림청 헬기 관련 예산은 지난해보다 삭감됐다. 안전을 우선시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산불은 봄철 농번기를 맞아 농사 준비에 한창인 농민들로부터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 피해는 1~2년 내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다. 주민들은 역대 최악의 산불로 삶의 기반을 모두 잃었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규모를 12조 원으로 늘려 재해·재난 대응 분야에 3조 원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돈을 쏟아붓는 것보다 중요한 건 시민들의 안전을 중시하는 자세가 급선무다.
지난 2023년 4월 17일 동아대학교 긴급대응기술정책연구센터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설문 조사결과를 보면 시민 10명 중 4명이 우리 사회가 대형 재난에 취약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재난·사고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44%로, “안전하다”(17.6%)라는 응답의 2배를 넘었다. 안전하다는 응답은 2021년 43.1%에서 올해 17.6%로 절반 이상이나 감소했다.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고 느끼는 여론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재난 대응 체제가 개선되었다’는 평가는 44.5%에 그쳤다.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을 느끼는 집단일수록 ‘우리나라 재난 대응 체제가 개선됐다(65.7%)’고 보았으며,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집단은 35.8%만이 개선됐다고 봤다. 이번 조사에서 ‘대형 사회재난으로부터 우리나라가 안전하지 않다’라는 답변은 64.6%에 달했다. 이러한 걱정은 2020년 48.8%, 2021년 51.6%, 2022년 55%에 이어 이태원 참사를 거치며 올해는 약 10%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세월호 참사가 11주기를 맞았지만, 국가는 여전히 부재 상태다. 중앙정부는 단 한 건의 공식적인 추모 행사조차 열지 않는다. 기억의 자리는 정부가 아닌 유가족 등 국민들이 다시 채우고, 진실과 책임의 자리는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은 단순한 추모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은 단지 과거를 돌아보는 회상(回想)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생명을 지키는 실천(實踐)이자 우리 사회가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윤리적 질문이며, 동시에 진실을 되찾기 위한 실천적 투쟁이다. 시민의 윤리와 연대에 상응하는 책임의 체계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다. 시민이 지켜낸 자리에 제도와 공적 책임의 탑을 쌓아야만 한다는 당위이자 책무임을 인식하고 명찰하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이제 국가가 응답할 차례임을 각별 유념하고 명심해야 한다. 그것만이 국가가 세월호 앞에 다시 설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일 뿐만 아니라 국민이 다시 국가를 믿을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임을 통찰해야 한다. 진실규명은 11년이 지난 현재도 미완(未完)이며, 책임자 단죄는 중단(中斷)된 지 오래다. 세월호는 인양한 지 오래지만, 진실은 아직도 인양되지 않아서다. 우리 사회에 가동 중인 재난 시스템 역시 세월호 침몰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혼자만의 것이 아닌, 사회와 집단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형성되고 다듬어진다고 주장한 프랑스 사회학자인 ‘모리스 알바흐스(Maurice Halbwachs)’의 집단기억(集團記憶)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동질감을 부여하는 힘을 갖고, 죽음을 막아야 한다는 책임으로 발전한다.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가 책임의식을 가져야만 하는 추동력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 안전한 사회는 기억과 실천으로 완성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