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만 뺀 90일 유예 조변석개 상호관세, 총력전 펼칠 컨트롤타워 가동을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8일(현지 시각) 대(對)중국 추가 상호관세를 기존 34%에서 84%로 높이는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미국 동부 시간 지난 4월 9일 0시(한국 시각 9일 오후 1시)부터 발효로 포문(砲門)을 연 글로벌 ‘경제 핵전쟁’에 아시아 금융시장이 초토화(焦土化)하고 있는 와중에 고율 관세정책과 관련해 트럼프는 지난 4월 9일(현지 시각) 중국만을 제외한 나머지 75개 국가에 부과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 전격 밝혔다. 그 기간에는 관세 10%만 적용된다. 미국에 ‘보복관세’를 물리며 맞선 중국에 대해서는 관세율을 104%에서 125%로 더 올려 관세전쟁의 주(主) 타깃(Target)이 중국임을 명확히 했다. 그러자 중국도 지난 4월 10일 즉각 84% 추가 ‘맞불 관세’를 발효시키며 난타전에 나섰다. 이렇듯 중국이 미국의 관세 폭격(爆擊)에 맞서 즉각 응사(應射)로 발끈하면서 ‘치킨게임(Chicken game │ 극한 경쟁)’ 양상은 갈수록 격화(激化)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교역상대국을 대상으로 높은 상호관세를 물리기 시작한 지 하루도 안 된 그저 13시간 만에 관세전쟁의 방향을 크게 틀어 90일간 유보로 선회한 것은 미국 내 여론 악화와 함께 미국 국채 가격 폭락 등 금융위기 우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유보했으며, 관세를 고리로 한 세계 각국에 대한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 예상된다. 무차별 관세 폭탄으로 국제 무역 질서를 뒤집은 것도 놀랍지만 발효 후 24시간도 안 돼 유예를 취한 것은 더더욱이 놀랍다. 그야말로 조변석개(朝變夕改)·조령모개(朝令暮改)의 전형(典型)인 예측 불허(豫測 不許)의 갈지(之)자(字) 행보를 보이며 ‘트럼프 표(標)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치킨게임이 격화되면서 무역 전쟁 발발에 미국 주식·채권 가격이 폭락하고 자국 내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경제 핵전쟁’ 관세 전선을 중국으로 좁혀 차제에 아예 고립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은 모든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84%로 올리고 위안화를 평가절하하는 등 맞불 전략으로 미국에 대해 전면적 보복 의지를 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 등 많은 나라가 미국을 ‘갈취(Ripping)’했지만 이제 우리가 갈취할 차례다”라고 목청을 높이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이웃국과의 협력을 통해 미국에 대응하겠다며 “주변국과의 ‘운명 공동체’ 구축에 집중하겠다”라고 맞대응하면서 미국과 중국 두 패권국의 관세전쟁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장은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고 보유 중인 미국 국채 매각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고 보고 있어 관세전쟁이 환율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두 나라의 ‘강(强) 대 강(强)’ 대치를 두고 “양국 모두 통상 전쟁에서 결코 물러설 의사가 없다는 명확한 신호”라며 일시적이지만 두 나라의 교역이 대부분 중단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한편 중국과의 관세전쟁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8일 “한국과 일본이 관세 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오고 있다”라며 “‘기성복’이 아닌 ‘맞춤복’처럼 철저히 맞춤화된(Highly tailored) 거래를 하겠다”라고 말해 세계 경제 및 안보 패권을 놓고 치킨게임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엔 ‘관세 융단폭격’을 퍼부으면서도,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와는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는 ‘갈라치기’ 전략을 강조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이번 중국을 제외한 교역국에 90일간 상호관세를 유예 조처에 모처럼 글로벌 금융시장이 반색하면서 지난 4월 9일(현지 시각) 뉴욕증시 3대 지수가 급반등했다. 나스닥(NASDAQ) 지수(12.16%)는 24년 만에, S&P500(9.52%)은 17년 만에 하루 최고 오름세를 기록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2962.86포인트(7.87%) 오른 4만608.45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전장보다 474.13포인트(9.52%) 급등한 5456.90에, 나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1857.06포인트(12.16%) 급등한 1만7124.97에 각각 마감했다. 나스닥지수는 2001년 1월 이후 24년 만에 가장 크게 올랐고, 역대 두 번째로 큰 일일 상승률을 기록했다. 다우지수는 2020년 3월 이후 하루 최대, S&P500 지수는 2008년 이후 하루 최대의 상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빅테크(Big-tech) 기업들 주가도 크게 올랐다. 앞선 지난 4일간 23% 폭락했던 애플(Apple) 주가는 전날보다 15.33% 폭등한 198.85달러에 마감, 시가총액 1위 자리도 하루 만에 되찾았다. AI 대장주 ‘엔비디아(NVIDIA)’ 주가는 18.72%, 전기차 업체 ‘테슬라(Tesla)’는 22.69%로 폭등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10.13%, ‘아마존(Amazon)’ 11.98%, ‘구글(Google)’ 모회사 ‘알파벳(Alphabet)’ 9.88%, ‘페이스북(Facebook)’ 모회사 ‘메타플랫폼(Metadata Platform) ’ 주가도 14.76% 급등했다.
국내 금융시장도 지난 4월 10일 또 한 번 크게 출렁였다. 코스피(KOSPI) 지수는 폭등했고, 관세전쟁 우려에 고공행진을 하던 원·달러 환율은 1450원대로 내려앉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151.36포인트(6.60%) 오른 2,445.06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관세전쟁 격화에 대한 우려로 1년 5개월 만에 2300선을 내줬던 코스피 지수가 반등한 것이다. 코스닥(KOSDAQ) 지수도 상호관세 발효 뒤 낙폭을 키우며 640선까지 후퇴했으나 전장보다 38.40포인트(5.97%) 오른 681.79에 마감했다. 장 초반 코스피200선물 지수가 6% 가까이 치솟으면서 유가증권시장에 상호관세 유예 발표 영향으로 이날(4월 10일) 오전 9시 6분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에서 매수 ‘사이드카(Sidecar │ 프로그램 매수호가 일시 효력 정지)’가 발동됐다. 매수 사이드카 발동은 코스피가 폭락했던 ‘블랙먼데이’ 다음날인 지난해 8월 6일 이후 8개월 만이다. 이날 오전 10시 46분 코스닥150선물가격과 코스닥150지수의 변동으로 5분간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한다고 밝혔다. 발동 시점의 코스닥150선물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6.08% 오른 1127.30이었고 현물인 코스닥150지수는 5.83% 오른 1057.33이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7.7원 내린 1456.4원에 주간거래를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 주간 종가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6년 만에 최고치인 1484.1원을 기록했다.
작금의 한국은 대통령 파면으로 국가 리더십이 부재한 가운데서 6·3 조기 대선 이후까지 협상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중 최고 상호관세율(25%)을 맞은 우리로선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렇다고 안심은 이르고 금물(禁物)이다. 오히려 불확실성은 더 커진 측면도 있다. “유예는 있을 수 없다”라고 호언장담(豪言壯談)해 놓고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뒤바꾼 트럼프 대통령이다. 언제 또 어떻게 뒤통수를 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부터 우선하라”라고 실무진에 지시해, 한국을 관세 협상 테이블에 먼저 앉힐 전망이다. 그는 이날 한국 등에 대해 방위비 분담금을 거론하며 “무역 협상에서 한 개의 패키지로 다 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관세, 조선·에너지 협력, 주한미군 주둔과 방위비 분담금 등 무역·안보 이슈를 포괄 협상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힌 것이다. 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통화하면서도 관세에 다른 의제를 더한 ‘원스톱 쇼핑(ONE STOP SHOPPING)’을 언급해 조선업, 액화천연가스(LNG), 방위비 분담 등이 패키지로 일괄 다뤄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리더십 부재의 한국이 미국에 휘둘릴 우려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1985년 플라자합의와 이듬해 미·일 반도체협정 등 심각한 통상 마찰을 경험한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트라우마로 인해 발 빠르게 초당적 통상 협상에 나서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가 “상호관세는 국난”이라고 선언하자 최대 야당인 입헌민주당의 ‘류 히로후미((笠浩史)’ 국회대책위원장이 “관세 문제에는 여야가 없고 협력할 부분은 협력하겠다”라고 화답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입헌민주당 대표도 “우선순위는 (정치자금 스캔들이 아닌) 관세 문제”라며 교통정리를 했다. 지난달 4일부터 25% 관세를 먼저 얻어맞은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라고 조롱당한 뒤 전설적 아이스하키 선수인 ‘고디 하우(Gordie Howe)’가 팔을 높이 들어 상대편을 막은 뒤 팔꿈치로 뒤통수를 내리찍어 제압한 후 ‘엘보우즈 업(Elbows Up)’ 구호가 전국을 휩쓸고, 애국 소비 열풍이 불고, 미국행 여행객은 23% 급감하며 관세 폭탄이 나라를 단합시켰다. 캐나다는 먼저 내부 무역 장벽 철폐에 나서서 10개 주와 3개 준주로 구성된 복잡한 연방국인 만큼 지역별 규제와 준조세가 평균 관세 21%에 해당한 데도 ‘마크 카니(Mark Carney)’ 캐나다 총리는 “각 지방정부로부터 내부 장벽을 7월 1일까지 없애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라고 밝혔다. 독일도 힘들 것이라 예상됐던 좌우 대연정이 10일 전격 성사됐다고 한다. 관세전쟁에서 국익을 지켜내기 위해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사회민주당이 다음 달 좌우 연립정부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
임기가 약 2개월 정도 남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는 어느 것 하나 독자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들이다.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등은 다른 나라의 협력이 동반돼야 해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된다. 문제는 미중 무역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대미 협상 타결이 늦어질수록 우리 경제의 피해가 더 커진다는 점이다. 이럴 때일수록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보다 여(與)·야(野)와 민(民)·관(官)을 아우르는 협의체를 구성해 범국가적으로 총력 대응하는 게 급선무이자 기본 중의 기본이다. 여(與)·야(野)와 정부는 민간 기업을 포함한 초정파적 총력전을 펼칠 ‘컨트롤타워(Control tower)’를 가동하고 협상의 커다란 대원칙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 여(與)·야(野) 정치권은 “국내 정쟁은 국경선에서 멈춰야 한다”라는 공통된 인식 아래 일본·캐나다·독일의 지혜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교훈 삼아 초당적 협력에 서둘러 나서길 바란다. 정부는 한국이 대미(對美) 최대 투자(投資) 국가이자 최다 일자리 창출(創出) 국가임을 내세워 피해를 최소화해야만 한다. 아울러 차기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패키지 딜(일괄거래)·원스톱 쇼핑’에 나설 때를 대비해 긴 호흡의 범정부적 대응책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조선·에너지·원자력·방산 등 한미 간 ‘윈-윈(Win-Win)’하는 산업 협력 방안을 면밀하게 구체화하고 의제별로 촘촘한 협상 카드를 마련해야 한다. 의당 대선 주자들은 초당적인 지지를 통해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정부가 적극적 대미(對美) 협상을 통해 우리의 국익을 굳건히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총력전을 펼쳐서 트럼프 발(發) 최악의 통상파고의 격랑(激浪)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