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탄에서 환율 조작으로 번진 무역전쟁, 경제 펀더멘털 강화로 풀어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포문(砲門)을 연 글로벌 ‘경제 핵전쟁’에 아시아 금융시장이 초토화(焦土化)하고 있다. 지난 4월 9일 코스피(KOSPI)는 1년 5개월 만에 2300선이 무너졌고, 코스닥(KOSDAQ)도 상호관세 발효 뒤 낙폭을 키우며 640선까지 후퇴했으며, 원·달러 환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하루 만에 10원 90전 급등해 1484원 10전으로 마감했지만, 장중 한때 1487원 6전까지 치솟아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13일 1483원 5전 이후 16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대만 증시도 폭락세를 보이면서 투자자들이 일제히 ‘패닉(Panic │ 공황)’ 상태에 빠졌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인상 표적이 됐던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 가치 역시 줄줄이 급락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위안화 절하를 두고 ‘환율 조작’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8일(현지 시각) 대(對)중국 추가 상호관세를 기존 34%에서 84%로 높이는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미국 동부 시간 지난 4월 9일 0시(한국 시각 9일 오후 1시)부터 발효됐다. 올 2월 마약 펜타닐 유통 등을 문제 삼아 미국이 중국에 부과한 20%의 관세를 포함하면 총 104%의 ‘관세 폭탄’을 투하(投下)한 것이다. 중국도 이에 맞서 지난 4월 9일 “10일부터 모든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율을 기존 34%에서 84%로 상향한다”라고 밝히고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도 했다. 이렇듯 중국이 미국의 관세 폭격(爆擊)에 맞서 즉각 응사(應射)에 나서면서 ‘치킨게임(Chicken game │ 극한 경쟁)’ 양상이 갈수록 격화(激化)하고 있다. 미국·중국 간 관세전쟁이 사실상 전면전으로 확대되고, 57개국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가 효력을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지난 4월 9일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금융시장에 충격을 안긴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 등 많은 나라가 미국을 ‘갈취(Ripping)’했지만 이제 우리가 갈취할 차례다”라고 목청을 높이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이웃국과의 협력을 통해 미국에 대응하겠다며 “주변국과의 ‘운명 공동체’ 구축에 집중하겠다”라고 맞대응하면서 미국과 중국 두 패권국의 관세전쟁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장은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고 보유 중인 미국 국채 매각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고 보고 있어 관세전쟁이 환율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두 나라의 ‘강 대 강’ 대치를 두고 “양국 모두 통상 전쟁에서 결코 물러설 의사가 없다는 명확한 신호”라며 일시적이지만 두 나라의 교역이 대부분 중단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한편 중국과의 관세전쟁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8일 “한국과 일본이 관세 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오고 있다”라며 “‘기성복’이 아닌 ‘맞춤복’처럼 철저히 맞춤화된(Highly tailored) 거래를 하겠다”라고 말해 세계 경제 및 안보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인 중국엔 ‘관세 융단폭격’을 퍼부으면서도,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와는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는 ‘갈라치기’ 전략을 강조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이렇게 첨예하게 대치 중인 미국과 중국은 한국의 1, 2위를 다투는 핵심 수출국으로 두고 있는 한국 경제가 더 큰 홍역을 앓는 모습이다. 게다가 한국 역시 미국과 관세 협상을 앞두고 있어 외환시장 변동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4·4 탄핵 인용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됐음에도 환율은 최근 한 달 새 50원 가까이 급등했다. 관세전쟁이 환율을 높이고, 원화 약세가 외국인 주식 매도를 부추겨 다시 환율을 밀어 올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유로, 엔 등 다른 통화보다 약세가 가파르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수출 중심 경제 한국이 무역전쟁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고율 관세 부과로 미국과 중국이 맞서는 상황에서 중국이 위안화 절하에 나선다면, 위안화 가치에 연동된 원화 약세는 심화할 수도 있다. 당초에 오는 11월로 예정됐던 한국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내년 4월로 5개월이나 미뤄진 것도 원화값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WGBI는 연기금을 비롯한 초우량 글로벌 투자자들이 벤치마크로 활용하는 지수다.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 역시 여전히 안개 속인 데다 중국이 달러당 위안화 환율을 심리적 지지선인 7.20위안 위로 상향한 점도 우려를 더 키운다. 최근 원화는 위안화와 커플링(Coupling │ 동조화) 하는 모습이 확연하게 뚜렷해서다. 원화 약세가 유리하다는 등식은 무너진 지 오래다. 환율은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위상과 신뢰도를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에서, 원화값 약세는 우리 경제가 직면한 복합적 위기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철강·석유화학 등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업종은 큰 타격이 예상된다. 정보기술(IT) 역시 원화 가치가 10% 하락할 때 이익률이 8%포인트 하락한다는 분석이 나와 있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고환율의 직격탄은 중소기업에 가장 먼저 닿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약 90%가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 후 판매하는 구조로, 환율 상승 시 원가 부담이 급증한다. 대통령 탄핵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다소 걷혔음에도 불구하고 원화 약세가 심화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이 근본적으로 약해졌음을 의미한다. 관세전쟁으로 인한 수출 둔화 우려에 더해 고착화(固着化)된 낮은 성장률과 고령화,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대한 대응 부족 등이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요인임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이렇듯 트럼프 발(發) ‘관세전쟁’이 ‘환율전쟁’으로 확전하면서 불똥이 한국 외환시장으로 옮겨붙은 형국이다. 올해 들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ollar Index │ DXY)’가 6.7% 떨어진 반면, 원화 가치는 이런 달러에 비해서도 15원가량 떨어졌다. 나 홀로 통화 약세는 외풍에 약한 한국 경제의 실상을 여지없이 송두리째 노정(露呈) 시켰다고 봐야 한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최근 9거래일 연속 10조 원가량 매도해 코스피(KOSPI)는 2300선, 코스닥(KOSDAQ)도 640선 밑으로 추락했다. 한국의 신용위험도를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redit Default Swap │ CDS)’ 프리미엄은 23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각종 지표를 보면 외환위기,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심각한 상황이 우리 경제 앞에 놓여 있음을 직시해야만 한다.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의 백척간두(百尺竿頭) 나락에서 우리 경제가 봉착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 상황임을 각별 유념하고 모든 정책 수단을 가동해 작금의 총체적 위기 상황에 총력 대응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경제의 총체적 난맥상을 단숨에 해결할 비급(祕笈)이나 묘안(妙案)은 당장은 없겠지만 우선은 미국과의 협상을 서둘러 관세 폭탄의 예봉(銳鋒)을 피하는 것부터 하나둘 실행으로 옮겨 나가야만 한다. 지난 4월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를 계기로 한·미 정상 협상이 늦게나마 시동이 걸린 건 다행이다. 다음 달 ‘마코 루비오(Marco Rubio)’ 미국 국무장관의 방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데 미국 경제에 대한 한국의 기여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작금의‘환율전쟁’은 글로벌 경제구조의 거대한 변화에서 오는 것인 만큼 상투적 시장 개입으로는 외환보유액만 낭비할 공산이 크다. 지금으로선 국민연금과의 스와프, 은행 외환유입 한도 확대를 병행하면서 경제 체질 강화를 도모하는 게 최선이다. 중국 의존성 완화로 ‘위안 커플링’을 탈피하는 것도 경제 주권 강화 차원에서 긴요하다.
특히 수출 다변화, 구조 개혁, 신성장동력 확보 등 한국 경제 도약을 위한 장기 과제를 넘으려면 여(與)·야(野)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벌써 조기 대선의 극한 대결 조짐이 보여 걱정이다. 국난 극복을 위해선 탄핵의 강을 건너 국민 통합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미증유(未曾有)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비전과 정책 제시가 요즘처럼 간절할 때가 없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세계 경제가 파국에 빠질 것이란 ‘R(Recession │ 경기 침체)’의 공포가 짙게 깔리고 있음이 목도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결코 안 된다. 정치권 역시 '반도체 특별법' 등 기업 현안에 전향적(轉向的)으로 임해 환율전쟁에 총력의 힘을 보태야만 한다. 당연히 6월 3일 대통령선거의 화두 역시 경제 살리기가 돼야 한다. 무엇보다 금융시장 불안부터 서둘러 가라앉히고 관세 공포가 실물경제로 전이되고 확산하는 것을 막는 데 총력전을 펼쳐서 트럼프 발(發) 최악의 통상파고의 격랑을 헤쳐나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