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쇼크’에 따른 블랙먼데이, 'R의 공포' 실물경제 전이 막아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투하(投下)한 ‘상호관세’ 폭탄에 중국·유럽연합(EU) 등이 ‘맞불 관세’로 응사(應射)하는 ‘치킨게임(Chicken game │ 극한 경쟁)’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패닉(Panic │ 공황)’ 상태에 빠졌다. 지난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57개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한 뒤 지난 4월 4일 중국은 미국에 34%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희토류 수출 통제에 들어갔고, 유럽연합(EU)도 보복관세를 검토하는 등 긴장은 극도로 고조된 탓이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본관세와 상호관세를 발표한 직후인 지난 4월 3~4일 이틀간 다우존스지수, S&P500지수, 나스닥지수 등 미국 3대 지수가 각각 9.26%, 10.59%, 11.44% 떨어졌다. 이틀간 사라진 시가총액은 6조 6,000억 달러(약 9,600조 원)에 이르며, 트럼프 취임 후 증발한 시총은 무려 11조 1,000억 달러(약 1경 6,200조 원)에 달한다. 월가(Wall street)에선 관세 충격이 9·11 테러 때보다 더 크다고 한다.
당연히 아시아와 유럽 증시도 동반 추락했다. 코스피지수(KOSPI)는 지난 3~4일 1% 미만의 하락세로 선방했지만, 지난 4월 7일엔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급락세를 보인 가운데 아시아 금융시장이 일제히 최악의 ‘블랙 먼데이(Black monday │ 검은 월요일)’을 맞았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5.57% 폭락해 2,328.20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가 2,400선이 무너진 것은 지난 1월 2일(2,398.94) 이후 처음으로 시장 급변을 막기 위해 8개월 만에 ‘사이드카(Sidecar │ 매매 호가 일시 제한)’가 발동되기도 했다. 코스닥(KOSDAQ)도 비슷한 폭으로 하락 마감했다. 겨우 안정세를 찾아가던 원·달러 환율은 5년 만에 최대 폭으로 뛰어 다시 1,470원 선을 넘나들다 이날 오후 3시 30분 기준으로 전 거래일보다 33.7원 오른 달러당 1,467.8원에 장을 마감했다. 일일 상승 폭은 코로나19 당시인 2020년 3월 19일(40원) 이후 약 5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을 보였다. 가상자산 역시 직격탄을 맞아 같은 날 오후 3시 30분 기준 가상자산 대장주인 비트코인(Bitcoin)은 전 거래일 대비 7.94% 하락한 7만 6,804달러에 거래됐다. 트럼프 발(發) ‘관세 폭풍’이 한국에 상륙한 셈이다. 미국 증시 급락의 여파에 따라 아시아 증시도 동반 폭락해 쑥대밭이 됐다. 같은 날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 │ 일시매매정지)’가 발동된 일본의 닛케이225 종합지수는 7.83% 폭락해 역대 3번째로 큰 낙폭을 기록했다. 호주 증시의 ASX200 지수는 장중 6% 이상 추락해 5년 만에 최대 낙폭을 보였으나 상승 마감, 전장보다 4.23% 내린 채 장을 마쳤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7.34% 추락했고, 대만의 자취안지수도 9.7% 폭락했으며, 홍콩의 항셍지수는 13.74% 하락 마감했다.
관세로 미국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글로벌 공급망을 마비시켜 경기 침체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6일에도 “무역적자 문제를 치료할 유일한 방법은 관세뿐”이라며 정책 변화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 공포심은 날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금융시장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실물경기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상호관세 부과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미국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라거나 “미(美) 제조업이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자축했지만, 미국 학계와 경제계에선 “경제적 핵전쟁”이라거나 “사상 최악의 자해”라고 비판이 비등한 가운데 역사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 가까이 유지돼 온 글로벌 자유무역체제가 폐기될 운명에 처한 날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무역 시스템을 날려 보내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트럼프가 광고하는 것처럼 새로운 황금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상대국이 같은 수준의 보복 조치를 감행하는 경우엔 미국은 수출이 66.2% 감소해 전 세계에서 수출 감소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전망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세계 경제가 파국에 빠질 것이란 ‘R(Recession │ 경기 침체)’의 공포가 짙게 깔리고 있음이 목도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올해 미국 경제가 역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4월 5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 마켓워치 등에 따르면 JP모건은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 포인트나 하향 조정했다. 기존 1.3% 성장에서 마이너스 0.3% 성장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올해 3분기와 4분기 경기 침체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세계 경제 침체 확률을 40%에서 60%로 높여 잡기도 했다. 마이크 페롤리 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활동 불황으로 실업률이 5.3%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그는 실업률이 이처럼 상승한다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 정책 입안자들에게 딜레마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러미 시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도 지난 4월 4일(현지 시각) “트럼프가 왜 스무트-홀리관세법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라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책은 95년 만에 최대 규모의 정책적 실수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4월 6일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가 유지되면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이 50%를 넘어설 것”이라며 “관세 리스크 여파로 당분간 시장에 폭풍우가 닥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렇듯 ‘R(경기 침체)의 공포’ 현실화 우려가 심각하게 커지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무역적자가 해결되지 않으면 중국과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며 “무역적자를 치료할 유일한 약은 관세”라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이대로 글로벌 통상 전쟁이 장기화하면 금융 불안이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고 실물경제 전반을 뒤흔들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엄중한 상황이다. 특히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는 치명적 악재로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은 1, 2위 교역국으로 전체 수출의 40%를 차지한다. 가뜩이나 지금 한국은 수출 둔화와 내수 침체로 성장률이 급전직하(急轉直下)하고 있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4월 7일 발표한 ‘4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대외 여건이 급격히 악화하며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다. 그 개방경제 체제에 무역전쟁과 금융시장 불안은 경제의 도약판과 안전핀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가계부채와 집값 불안까지 시한폭탄처럼 째깍거려 당장 해결해야 할 경제 문제가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상호관세가 실행되는 경우엔 한국의 대미(對美) 수출이 급감하고 국내 부가가치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하나은행은 미국의 관세 부과에 따른 대미 수출이 기존보다 13% 이상 감소하고 국내 부가가치 손실 규모가 10조 6,00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했고, IBK경제연구소도 관세 25% 부과에 따라 대미 수출 12.8%, 전체 수출 4.6% 등이 각각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면서 자동차(-18.6%)와 일반기계(-39.7%) 등 주력 산업 대부분이 대미 수출에 직격탄을 맞고 반도체는 수출 증가율이 1%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KB국민은행도 지난 4월 5일부터 적용된 보편관세 10%의 여파로 산업별로 평균 1~2%, 최대 4%의 영업이익률 하락을 예측했다. 앞서 산업연구원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각 10%, 중국에 60%, 한국 등 다른 국가에 20%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전제로 대미 수출이 13.1% 감소할 것으로 관측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에 적용한 관세는 25%로 산업연구원의 예측치보다 수출 악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이 부과한 25%의 상호관세는 당장 오는 4월 9일부터 시행된다. 한국의 대미 수출 1·2위 수출 품목도 관세 폭탄에 노출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대미(對美) 수출품 1위인 자동차에 이미 25%의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반도체에 대한 관세도 예고했다.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은 한국 경제를 더 옥죌 수 있어서 더욱 불안하다. 수익성 악화에 따른 기업 실적 훼손과 성장률 둔화는 피할 수 없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그동안 수출에 주력해온 한국 경제의 성장 공식은 이젠 빛이 바래고 더는 유효하지 않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 협상이나 가능한 상대인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관세·비관세 장벽 등을 두루 검토해 정했다던 상호관세율은 국가별 무역적자액을 수입액으로 나눈 값의 절반이라는 주먹구구식 계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창조론을 생물학에, 점성술을 천문학에 적용하는 격”이란 냉소까지 터져 나왔다.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것을 막고 관세전쟁의 충격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쳐야 하지만, 조기 대선 정국으로 접어든 국정 공백의 상황에서 맞대응은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은 상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최상목 부총리는 이런 누란지위(累卵之危)의 경제위기를 직시하고 국회와 함께 전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한 협력을 모색해야 할 책임이 막중하다. 지금은 글로벌 관세 쇼크의 격랑에 휩쓸리지 않도록 느슨해진 경제의 ‘안전벨트’를 단단히 조여야 할 시점이다. 미국의 고율 관세를 피해 저가 중국산이 밀려들어 국내 중소업체들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경제·금융위기가 증폭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응은 한가하게만 느껴지니 답답할 노릇이다. 트럼프 관세 폭격에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고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재정 대응도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어서다. 시급한 조치부터 하나둘 실행으로 옮겨 나가야만 한다.
여(與)·야(野) 정치권은 우선 영남권 동시다발 초대형 산불 피해 지원 등을 위해 정부가 제시한 10조 원 필수 추가경정예산부터 처리해야 한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내수 진작과 관세 피해 기업 지원을 위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대한 논의도 발등의 불이란 생각으로 풍전등화(風前燈火)의 백척간두(百尺竿頭) 나락에서 우리 경제가 봉착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 상황을 각별 유념하고 결코 늦춰서는 안 된다. 통상전문가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미국과의 외교 협상 전략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위기에 처한 나라 경제를 지키기 위해 모두 원팀이 되어 협력해야만 할 때다. 금융시장 불안부터 서둘러 가라앉히고 관세 공포가 실물경제로 전이되고 확산하는 것을 막는 데 총력전을 펼쳐서 트럼프 발(發) 최악의 통상파고의 격랑을 헤쳐 나가야만 한다. 수출주도성장에서 과감히 탈피하고 내수시장을 키우는 게 최우선 정책과제이자 급선무다. 중·장기적으로 수출 품목과 시장 다변화로 수출의 미국 의존도를 서둘러 줄여나가야만 한다.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경제심리 위축 등으로 경기 하방 압력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모든 정책 수단을 가동해 작금의 총체적 위기 상황에 총력 대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