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신촌 청년푸드스토어’를 가다
이대-신촌 상권은 80년 종로, 명동과 더불어 서울 3대 상권으로 꼽히는 지역이었다. 90년대에는 새로운 패션과 유행을 선도하는 곳이었고 2010년을 전후해서는 중국인 관광객이 대거 방문하며 청년과 외국인으로 북적였다.
그러나 홍대 등 인근 상권의 발달과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문화 확산 등으로 인해 과거의 활력을 잃은 상태다.
서대문구는 이대 앞 상권 부활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경의중앙선 신촌역 맞은편에 자리 잡은 ‘신촌 청년푸드스토어’가 그러한 노력 중 하나다.
컨테이너 박스 구조로 된 3층 건물인 청년푸드스토어 1층에는 과거 이화여대 정문 앞 대로변에 있었던 거리가게 상인들이 입점했다. 그리고 2층과 3층에는 서대문구의 공모를 통해 선정된 청년 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개성적이고도 저렴한 음식류를 판매함으로써 지역 유동인구를 늘리는 동시에 청년창업을 활성화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본래는 신촌 박스퀘어라는 이름이었지만 지난해 신촌 청년푸드스토어로 재단장하면서 보다 명확한 테마로 시민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많은 지자체가 청년상가를 조성하고 행정력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의도는 좋았지만 제대로 된 민관협력 구조를 만들지 못한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촌 청년푸드스토어는 민관협력의 모범사례가 될 만하다. 지자체에서 예산과 노력을 투입해 기반을 만들고, 꿈과 의지를 지닌 청년창업가들이 입점하며, 이화여대 교수진이 현장을 지원한다. 지자체와 대학과 청년이 함께 힘을 모으는 구조다. 신촌 청년푸드스토어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와 청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1) 이민 5세 청년 창업가
: ‘엘리자베스 주닐다 산체스 리베로 리’ 청년상인
엘리자베스 씨는 쿠바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국인이다. 일제강점기에 중남미로 간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2017년에 특별귀화했다.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자녀 둘을 키우고 있는 그녀는 본래 여행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했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올해 2월 신촌 푸드스토어 청년창업가 모집에 응시한 엘리자베스 씨는 서류심사와 대면 면접을 거친 끝에 합격의 기쁨을 안았다. 유럽식, 미국식, 쿠바식 3종류 아침 메뉴로 구성된 창업 아이템이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서대문구와 이화여대가 힘을 합쳐 만든 공유주방에서, 이화여대 교수진의 도움으로 식음료 창업에 필요한 실무 기술을 익히고 있다. 신촌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과 해외 음식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을 상대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2)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열정가
: 오지은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오지은 교수는 식품영양학과 교수였지만 지금은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 소속이다. 이 대학은 스포츠, 패션, 콘텐츠 등 현대사회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분야에 대한 융합적 지식을 익히는 과정이다. 오 교수는 푸드 큐레이션(Food Curation) 분야에서 외식산업과 식품, 디지털과 로봇 등 일견 어울리지 않는 주제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
외식산업이란 지역상권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기에 오 교수는 예전부터 지역사회와의 연계에 관심이 많았다.
서대문구와는 청년푸드스토어를 통해 인연을 맺었고 이후 농림축산식품부 청년키움식당 사업이나 서울시 캠퍼스타운 사업, 청년상인 육성, 이화여대 참여 지역행사 등 많은 일들을 함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창업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주변 사람들은 오 교수를 밤잠마저 아껴 가며 일하는 열정가로 평가하고 있다.
3) 해외유학으로 단련된 패기 넘치는 청년창업가
: 최환웅 청년상인
2023년 상반기에 신촌 청년푸드스토어에서 창업한 최환웅 대표는 미국 마이애미에서 타코를 배워 왔다고 한다. 미국 본토 최남단에 위치한 마이애미는 남미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지역이다. 이곳 호텔 레스토랑에서 2년간 일하며 보고 배운 것이 그의 창업 아이템에 큰 영향을 주었다. 확연하게 차별화된 그의 타코는 이화여대생을 비롯한 청년들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최 대표는 신촌 청년푸드스토어의 청년상인 가운데서도 최상위권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마이애미는 물론이고 싱가포르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나 호주 등 여러 나라를 돌면서 쌓은 탄탄한 기본기가 가장 큰 자산이다. 성실함과 끈기도 단연 손꼽힌다.
청년푸드스토어 관계자들은 최 대표가 운영하는 ‘파체리토’ 매장이 문을 닫은 모습을 좀처럼 보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계절적 요인 등으로 인해 가끔은 문을 열지 않는 가게도 있지만 최 대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경우가 많은 ‘청년 외식 창업 업계’에 최 대표의 이 같은 자세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4) 지역사회와 청년을 연계하는 공무원
: 이재석 서대문구청 청년키움팀장
서대문구청 청년정책과 청년키움팀 이재석 팀장은 신촌 청년푸드스토어를 책임지고 있다. 그가 이 업무를 맡은 건 2023년 7월로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1년가량이 지난 시점이었다. 길었던 코로나 시기 동안 신촌 청년푸드스토어는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고 한때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외국인 관광객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팀장은 그런 신촌청년푸드스토어를 되살려 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먼저 청년 상인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배달 분야로의 진출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또 텅 비어 있었던 푸드스토어 3층에 음악 분야 청년 벤처기업을 입점시킴으로서 활기를 불어넣었다.
아울러 이화여대와의 협업 강화로 대학생과 지역사회가 함께 교류하며 상호 발전할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비영리단체와 협력해 온기우편함을 설치하고 청년들의 마음건강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은 “이처럼 신촌 청년푸드스토어의 성공을 염원하며 열정을 다하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이곳의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한다”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