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상호관세’ 최악의 통상파고, 민·관·정 총력 체제로 격랑 헤쳐나가야

2025-04-06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예고했던 대로 지난 4월 2일(현지 시각) 국가별로 적용되는 상호관세율을 발표했다. 한국에는 26%의 상호관세를 매겨 베트남(46%), 중국(34%), 대만(32%)보다는 낮지만, 일본(24%), 유럽연합(20%) 등 경쟁국보다는 불리한 수출 여건을 안게 돼, 단순히 수치가 주는 유리·불리만을 따질 일은 아니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동맹국인 데다 대미(對美) 무역에서 대부분 품목이 무관세로 거래됐기에 고율 관세에 대한 체감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배터리·반도체 업종의 현지 투자를 늘리며 미국 경제에 크게 기여를 해왔는데도 FTA 체결국 중 최고세율의 ‘관세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유럽연합에 비해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로서는 최악의 통상파고의 직격탄이 될 것이 분명해 전례 없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한 연설에서 주요 무역 상대 57개국에 최대 50%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상호관세가 부과되지 않은 나머지 국가들에는 보편관세 10%가 부과된다. 생산국과 관계없이 자동차와 철강·알루미늄 제품에는 25%의 ‘품목관세’가 부과되며, 반도체 관세율은 추후 별도로 결정된다. 전후 세계 경제의 발전을 견인해 온 자유무역 시대의 종언을 고한 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됐다. 30년 이상 이어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이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포함해 미국산 수입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했다’라면서 그 절반 값인 26%를 상호관세로 부과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에서 미국산 수입품에 적용되는 평균 관세율은 실효세율 기준 0.79%에 불과해 ‘50% 관세율’ 주장은 터무니없기 짝이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양국 간 관세는 사실상 0%에 가깝기 때문이다.

추정컨대 한국의 대미(對美) 수출액(1,315억 달러) 대비 흑자액(660억 달러) 비율이 50%이고, 이를 반으로 나눈 상호관세 25%를 적용한 듯하다. 심지어는 발표 때 25%라고 해놓고 이후 공개된 행정명령 부속서에는 26%라고 적시돼 있을 정도로 엉망 그 자체였다. 이날 백악관이 ‘한국의 최혜국 대우 관세율이 미국의 4배(13%)’라는 잘못된 인식을 다시 드러낸 것도 석연치 않아 보인다. 한국은 미국과 FTA를 체결했기 때문에 최혜국 관세는 미국에 적용되지 않는데도 이런 언급을 되풀이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로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예상 범위를 넘어선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닥친 위기 상황이다. 최대 시장 미국이 닫히는 경우 각국의 반발과 보복 및 재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지며 자칫 전 세계 경제가 침체나 대공황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각국의 무역장벽이 갈수록 높아지며 신보호무역주의시대가 성큼 다가올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은 ‘해방의 날(Liberation Day)’, 미(美) 제조업이 다시 태어난 날”이라며 자축했지만, 역사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 가까이 유지돼 온 글로벌 자유무역체제가 폐기될 운명에 처한 날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일본과 다른 나라들이 설정한 비금전적 무역장벽이 어쩌면 최악”이라며 한국의 자동차·농산물 규제를 거론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도 지난 3월 31일(현지 시각)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NTE)보고서’ 한국 항목에서 “한국 정부는 국방 절충 교역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 방위 기술보다 국내 기술 및 제품을 우선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라고 밝히고 한국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월령 제한, 절충 교역 규정, 디지털 무역 제한 등을 문제 삼았다. 이어 “계약 가치가 1,000만 달러(약 147억 원)를 초과할 경우 외국 계약자에게 절충 교역 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절충 교역은 외국에서 1,000만 달러 이상의 무기나 군수품, 용역 등을 살 때 반대급부로 계약 상대방으로부터 기술 이전이나 부품 제작·수출, 군수지원 등을 받아내는 교역 방식을 의미한다. 하지만 대규모 무기 수입 시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절충 교역은 세계 방위산업계의 일반적인 관행일 뿐이어서 이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억지 논리다. 나머지 항목들도 대부분 미국 기업들의 민원에 가깝다. 미국이 오도(誤導)된 인식에 기반해 한국의 비관세 장벽을 허물라고 압박을 강화한다면 그 자체로서 강대국의 무도한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무역 시스템을 날려 보내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트럼프가 광고하는 것처럼 새로운 황금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외신도 트럼프 발(發) 무역전쟁이 미국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일제히 우려했다. 대내적으로 관세는 미국 물가를 끌어올리고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관세 장벽에 안주하는 미국 산업은 내수시장에서 경쟁 압력이 사라지고 결국에는 경쟁력을 잃을 공산이 크다. 당연히 관세는 미국 내 소득 불균형을 심화할 우려도 있다. 저소득층은 소득에서 필수재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관세 피해가 더 크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리더십이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관세’는 교역 상대국뿐 아니라 미국 경제에도 상당한 타격을 가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미국 경제ㆍ산업계에서 나오고 있어서다. 철강ㆍ알루미늄 관세 등 부과로 인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0.4% 감소, 일자리 30만 9,000개 감소 등이 예상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상대국이 같은 수준의 보복 조치를 감행하는 경우에는 미국은 수출이 66.2% 감소해 전 세계에서 수출 감소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전망했다. 같은 조건일 때 한국은 수출 감소율이 7.5%로 예상돼 미국(66.2%)ㆍ멕시코(35%)ㆍ캐나다(32.6%)ㆍ일본(7.6%)에 이어 5번째로 높았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도 1.6% 감소할 것으로 예상이 돼 주요국 가운데 5번째로 감소율이 높았다. 특히 한국은 미국이 지정한 ‘더티(Dirty) 15’ 국가 중 하나로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왔다. 더티15는 미국을 상대로 상당한 무역 흑자를 내는 국가들을 말한다. 스콧 베센트(Scott Kenneth Homer Bessent)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 캐나다, 멕시코, 일본, 인도, 브라질, 유럽연합(EU), 호주, 러시아, 베트남, 그리고 한국 등을 더티(Dirty) 15개 국가로 지목했다.

이렇듯 트럼프 행정부의 터무니 없는 조치는 자연스럽게 자유무역 시대가 막을 내리고 전 세계 무역이 심각하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한국에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전방위적 상호관세가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은 당장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수 비중이 높은 일본·유럽연합과는 차원이 다른 위기다. 미국은 글로벌 최대 시장이자 한국에 두 번째로 큰 수출 대상국이다. 그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되던 한국 상품 대부분에 이제 새롭게 26%의 관세가 붙게 됨으로써, 미국 내 생산 제품 대비 한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은 크게 낮아지게 됐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대미(對美) 수출이 줄게 되면 국내 생산과 고용이 축소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관세 압박을 못 이긴 국내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옮기게 되면 이 또한 국내 제조업 공동화(空洞化)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따라서 글로벌 통상 무역 질서의 틀이 완전히 바뀌는 상황에 봉착했음을 인식·통찰하고 선제 대비해야만 한다. 그동안 수출에 주력해온 한국 경제의 성장 공식은 이젠 빛이 바래고 더는 유효하지 않아지기 때문이다. 대미(對美)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직·간접적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가 상대국의 보복관세 부과로 이어지면 글로벌 무역이 직격탄을 맞게 되고 수출 한국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미국의 대통령이 막무가내로 힘을 휘두르는데 막을 사람이 없다. 국정 공백으로 정상외교가 올 스톱된 정치 상황과 무관치 않다. 우리 정부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유감을 표명하면서 대미(對美) 협상과 피해 기업 지원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안의 엄중함과 심각성을 감안한다면, 유감을 표명을 넘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직접 나서서 강력히 항의하고 재검토를 촉구하는 것만이 당연한 순리일 것이다. 미국 정부가 ‘선 과세, 후 협상’을 할 것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미국과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적극적인 대미 협상과 설득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함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20개 나라 중에서는 한국은 26%의 상호관세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부당성을 역설하는 한편 한국의 최대 해외직접투자국이 미국이고 이를 통해 미국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성과도 강조해야 한다. 당연히 미국이 아쉬운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와 조선업 협력, 미국산 액화천연가스 수입 확대 등도 협상 지렛대가 될 수 있음도 전략 중의 하나다. 아울러 자유무역체제의 근본적 위기에 대응하는 경제·통상 전략의 새판 짜기를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임을 각별 유념하여 변화의 흐름을 간파하고 중·장기 대책을 서둘러 강구해야만 할 것이다.

지금은 한국 경제가 다시 대전환의 갈림길에 서 있다. 국가의 생명선과도 같은 무역에 빨간불이 선명하게 켜졌기 때문이다.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냉정한 자국 이기주의(利己主義)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다. 정부와 여(與)·야(野) 정치권, 민간이 ‘3인 4각’의 레이스를 철저히 준비해 총력 대응해도 고비를 넘을지 말지를 모를 절체절명(絶體絶命)·누란지위(累卵之危)의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음을 각별 명심해야 한다. 우선 한국에 불리하게 짜인 무역 판도를 뒤집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국가역량을 총 집주(集注)해 트럼프 발(發) 최악의 통상파고의 격랑을 헤쳐나가야만 한다. 수출주도성장에서 과감히 탈피하고 내수시장을 키우는 게 최우선 정책과제이자 급선무다. 제조업을 뛰어넘어 소프트웨어와 K콘텐츠 등 관세 장벽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부가가치도 상대적으로 높은 산업으로의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첨단산업 기술 개발에 재정을 공격적으로 투입하는 강력한 산업정책을 통해 압도적인 경쟁 우위를 유지해야만 한다. 중·장기적으로 수출 품목과 시장 다변화로 수출의 미국 의존도를 서둘러 줄여나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