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분열로 얼룩진 대한민국···통합과 연대로 ‘피크 코리아’ 극복해야
정치적 양극화가 빚은 극단적 대립과 대중 선동에 민주주의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정서적 양극화가 일군 정의와 공동체적 연대의 가치가 원천적으로 위협받는 ‘초불확실성의 시대’를 맞닥뜨리며 살아가는 작금의 대한민국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예상보다 선고가 늦어지면서 길어진 숙고, 격해진 분열, 두려운 후유증에 탄핵 찬·반 양측의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고 극명하게 둘로 쪼개진 서울 도심에서는 주말 내내 대규모 탄핵 찬성과 반대 집회가 열렸다.
통계청이 지난 3월 25일 발표한 ‘2024 한국의 사회지표’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위험수위를 넘어 임계점에 이르렀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보수와 진보(77.5%), 빈곤층과 중상층(74.8%), 근로자와 고용주(66.4%), 수도권과 지방(58.6%), 노인층과 젊은 층(58.3%), 종교 간(51.8%), 남자와 여자(51.7%) 등 여덟 가지 사회갈등 항목 모두 “심각하다”는 답변이 조사 대상 국민의 절반을 넘었다. 전년까지 40%대였던 종교 간(42.3%), 남자와 여자(42.2%), 갈등마저 심각성 인식률이 급증해 50%를 웃돌았다. 정치, 소득, 지역, 세대, 성별 등 경계선이 그어질 만한 모든 영역에 갈등의 골이 깊게 파였다는 해석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같은 사회적 합의 기구가 공전을 거듭하고, 연금 노동 의료 등 대타협이 필요한 개혁 이슈마다 진통을 반복하는 배경에 이런 갈등과 분열이 뿌리 깊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3월 3일 발표한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 제하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4년 6∼9월 19∼75세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4 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 정도가 4점 만점에 3.04점으로 나타났다. 국민이 느끼는 사회갈등 정도를 살펴보는 항목 조사가 시작된 지난 2018년 이후 여섯 차례의 조사에서 가장 높은 수치로 나타났다. 사회갈등 정도는 2018년과 2019년, 2021년엔 각각 2.88점, 2.90점, 2.89점으로 소폭 등락하다가 2022년엔 2.85점으로 다소 낮아졌다. 이후 2023년 2.93점에 이어 지난해 3.04점으로 2년 연속 상승했다. 사회갈등의 유형 중에서 응답자들이 가장 심각하게 여긴 갈등은 ‘진보와 보수’ 갈등이었다. 2018년엔 3.35점이었다가 2023년 3.42점, 지난해엔 3.52점으로 상승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 3월 6일 공개한 ‘2024년 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서도 우리 국민이 가장 심각한 사회갈등으로 ‘이념’이 꼽혔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8∼9월 전국 19세 이상 8251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 결과 ‘진보와 보수 간 이념 갈등’은 4점 만점에 3.1점으로 가장 높았다. 보수·진보 간 갈등이 두드러졌지만, 자신의 이념 성향은 ‘중도적’이라고 평가한 이가 전체의 45.2%에 달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 한국의 사회지표’응답자들이 가장 심각하다고 여긴 보수와 진보 갈등의 인식률 77.5%는 지난해 8~9월 조사한 수치였음을 감안할 때 현시점에서 다시 조사한다면 이제껏 이 지표에서 본 적 없는 높은 충격적인 수치를 목격하게 될 듯하다. 비상계엄과 탄핵소추 이후 진영 대결은 더욱 격렬해졌고, 여론은 더 첨예하게 갈라졌다. 둘로 쪼개진 광장에선 상대를 악마화하는 혐오의 언어가 일상이 됐다. 탄핵 찬성·반대 세력 간 극언이 난무하고 물리적 충돌 우려마저 제기된다. 정치권뿐 아니라 시민사회, 종교·문화계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헌재가 조속하게 결론을 내려 혼란스러운 상황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가 거리에 머무는 사이 사회 혼란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정치권은 진영 논리에 갇혀 통합은커녕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비등하다. 갈등의 최후 조정 역할을 수행 중인 헌법재판소를 향해 두 진영은 압박을 넘어 협박을 일삼고 있다. 재판관 개개인을 겨눈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그들의 판결을 양측이 과연 승복할지 걱정해야 할 만큼 지독한 갈등에 우리는 함께 일궈온 사회를 잠식당했다.
이렇게 갈라져 싸우는 사회, 분열과 대립에 국력을 소모하는 나라에선 국민의 삶이 결코 나아질 수 없다. 세계의 무수한 사례가 그것을 웅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라는 이스라엘 강경보수의 상징으로 ‘선거의 불사조’라 불리지만 총리를 둘러싸고 극심한 정치적 분열을 겪다 하마스의 공격을 받아 국민을 전쟁에 내몬 반면, 아일랜드가 작년 1인당 국민소득 10만 달러를 넘어선 배경에는 오랜 정쟁을 멈춘 여야 대타협과 노·사·정 사회연대협약이 있었음을 간과해선 안 될 일이다. 1930년대 아일랜드가 대영제국과 독립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서로 내전(內戰)까지 벌였던 앙숙으로 60년간 정권을 뺏고 빼앗기며 원수처럼 서로를 물고 뜯으며 치열한 정쟁을 벌여왔던 아일랜드의 ‘피어나 포일당(Fiana Fail)’과 ‘피네 게일당(Fine Gale)’은 어느 날 갑자기 투쟁을 멈췄다. 1987년 포일당의 ‘찰스 호이(Charles James Haughey)’ 총리가 집권하자 제1야당인 게일당 대표 ‘앨런 듀크스(Alan Dukes)’는 탈(脫)러상공회의소 연설에서 “정부가 옳은 방향으로 간다면 핵심사안에 반대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이어 노·사·정 합의로 사회연대협약을 체결하고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탈(脫)러시아 선언으로 게일당은 2년 후 선거에서 4석을 잃었지만 포일당 정책을 지지했으며, 이에 힘입어 아일랜드 정부는 친기업 정책 등 개혁을 힘차게 추진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사회연대협약을 통해 일관성을 유지했다. 그 결과 1980년대까지 유럽의 가난한 농촌 국가였던 아일랜드가 30여 년 만에 1인당 국민소득 10만 달러를 넘는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탈바꿈을 견인한 비결인 셈이다.
아일랜드와 같이 성공한 사례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교과서적인 모범사례로는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WA │ Wassenaar Arrangement)’이나 독일의 ‘어젠다 2010(Agenda 2010)’ 등 국가 위기를 극복하고 한 단계 도약한 나라의 선례에는 갈등 조정과 국론 통합에 성공한 사회적 합의가 어김없이 등장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우선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은 1982년 네덜란드에서 이뤄진 노·사·정 합의를 의미한다. ‘바세나르 협약’은 1960년대 천연가스 수출이 잘돼서 통화가치가 급상승했고, 제조업 경쟁력이 잃어버리면서 경제가 침체했었던 고질적인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을 고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활동인구 중 14%인 80만 명이 실업자였고,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상당했다. 무엇보다 1981년부터 1983년까지 경기침체가 심각해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25개 제조업체 중 1개꼴로 파산상태에 이르렀고, 30만개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가 됐고 노동운동을 하며. 네덜란드 노조 지도자로 활동을 했던 ‘빌럼 콕(Willem Kok)’은 1982년 11월 24일 임금 인상은 자제하되 고용은 보장하고, 일자리 분배를 통해 고용을 창출하자는 노·사·정 대타협인 ‘바세나르 협약’을 ‘노동조합연맹’의 ‘빌럼 콕’과 ‘경영자단체연합’의 ‘크리스 판 베인(Chris van Veen)’ 사이에서 이뤄낸 개가로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결국은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실업률을 낮춰 노·사 양쪽 다 괜찮은 결과를 얻었다. 한때 네덜란드는 정적을 죽이고 신체 일부와 내장을 뜯어 기념품으로 가져오던, 정쟁이 극심하던 사회였지만 ‘빌럼 콕’은 네덜란드 사회를 크게 바꿨다. 오늘날 어지간한 갈등은 모두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한다. 그는 훗날 정치인이 되어 노동당을 이끌었고, 1994년 네덜란드 총리가 되었으며, 2002년까지 두 차례나 연정을 이끈 성공한 정치인으로 정계 은퇴 뒤에는 세계 각국 전직 국가원수 및 행정 수반 모임인 ‘마드리드클럽(Madrid club)’ 의장을 맡기도 했다.
한편, 독일의 ‘2010 어젠다(Agenda 2010)’는 노동시장 자유화, 복지개혁, 기업 규제완화 등이 포함된 개혁안으로 독일 경제를 다시 성장 궤도에 올려놓는 전환점이 됐다. 유럽 경제의 엔진이었던 독일이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로 전락하면서 독일은 세계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역사를 되돌려 1990년대 후반 독일 경제는 끝없는 침체에 빠졌다. 실업률이 치솟고 주식시장은 침체했으며 국가 재정은 악화일로였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됐다. “독일이 제2의 일본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2003년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ode)는 ‘2010 어젠다(Agenda 2010)’라는 개혁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이 개혁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은 후임자인 앙겔라 메르켈이었다. 메르켈 집권기 독일 경제는 유럽 최강으로 복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회복한 국가가 됐다. 한국에 독일 붐이 분 것도 이 무렵이었다. 당시 독일을 롤모델(Role model │ 역할모델)로 세미나를 연 경제단체는 “우리보다 앞서 ‘라인강의 기적(Wirtschaftswunder)’을 이뤄냈고 2008 글로벌 대침체와 그 여파로 세계 경제가 아직도 어려운 와중에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독일 경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독일은 다시 유럽의 병자로 추락했다. IMF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경제 성장률이 3.2%를 기록했지만, 독일은 0.2%로 선진국 중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유로존 평균(0.9%)에도 한참 못 미쳤다. 유럽연합(EU) GDP에서 24.3%로 1위를 차지하는 독일이 오히려 유로존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주범이 된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2010 어젠다(Agenda 2010)’는 새겨볼 필요가 있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 발(發)‘관세 폭탄’이 ‘R(Recession │ 경기 침체)’의 공포로 파란을 일으키며 미국의 경기침체를 포함한 ‘트럼프 스톰(Trump Storm)’으로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는 내수 위축으로 빈사(瀕死) 상태에 이르고 1%대 성장률 쇼크는 이미 기정사실이 됐다. 지난 1월 제조업 생산지수(원지수 │ 2020년=100)는 103.7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2% 감소했고,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실물경제의 3대 축인 생산(전산업 0.3%↓)·소비(소매판매 0.4%↓)·투자(설비투자 5.8%↓)가 동시에 ‘트리플(Triple) 감소’하는 삼중고(三重苦)를 겪으며 내수 침체가 고착화(固着化)하면서 한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들어섰다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등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나락(奈落)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 총체적 복합위기)’이라는 누란지위(累卵之危)의 경제 위기(危機)에 봉착하고 있다. 선진국에 올라선 지 몇 년 되지 않아 내리막길에 들어설까 걱정하는 살얼음판 위에 간신히 서 있는 정도다. 잘하던 분야는 죄다 추월당했고, 첨단 분야는 멀찍이 뒤처졌다. 몇몇 기업의 힘만으론 다시 추격하고 앞서갈 여력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같은 위기상황에 직면했었던 많은 나라가 그랬듯이 국민 통합과 사회적 연대를 통해 재도약의 길을 열어야만 한다. 통계청의 지표는 이것이 매우 절박하고 시급한 과제임을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여(與)·야(野) 정치권은 자신들의 지지층에 얽매인 나머지 진영 논리에서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시대와 역사의 지적과 책망을 조용히 반추하면서 국론 통합에 박차를 가해야만 한다. 이념 갈등이 좁혀지지 않는 한 소모적인 사회적 대립 현상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 3월 15일 미국이 원자력과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 협력을 제한할 수 있는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 리스트’에 한국을 포함한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여(與)·야(野)·정(政)은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힘과 지혜를 모아 높고 튼튼한 방파제를 쌓아 확고한 안전망을 구축하는데 국가 역량을 총 집주(集注)해야만 한다. 선량한 국민을 더는 분열과 갈등의 수렁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극단적 분열과 대립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각별 유념하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세력도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인식하고 명찰하고 정치인들 스스로 자제와 솔선수범이 요구된다. 정부 수립 이후 민중의 피로써 이룩된 민주주의의 공든 탑이 허물어져 내리게 하거나 공동체 전체를 파멸로 내몰 수는 없다. 헌법재판소의 권위와 결정을 결단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헌법재판소는 스스로 자기권위를 지키고 헌법 수호 기관으로서 위상과 존엄을 무너뜨리지 않고 국가권력의 마지막 보루의 책무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의 도도한 조류를 깊이 인식·통찰하고 서둘러 대통령 탄핵 심판을 선고하여 국가적 대혼란을 종식(終熄)시켜야만 할 것이다. 이 망국적 분열에 서둘러 ‘마침표’를 찍어야 할 모든 책임은 오롯이 헌법재판소에 있음을 각별 유념·명찰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