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한국 성장률 1.5%로 대폭 하향, 신성장 동력 육성과 초격차 기술 개발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3월 17일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2.1%에서 1.5%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2기 행정부의 ‘관세 압박’ 등 글로벌 통상 여건 변화를 반영한 결과로 불과 석 달 전인 지난해 12월 전망보다 무려 0.6%포인트나 낮아진 전망치로, 미국발(發) ‘관세 전쟁’의 직격탄을 받는 멕시코의 2.5%포인트 하향조정과 캐나다의 1.3%포인트 하향조정을 제외하면 주요국 중 하락 폭이 가장 크다. 공교롭게도 한국은행이 지난 2월 25일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4%포인트 낮은 1.5%로 제시한 것과 같은 전망치다.
한국 경제가 대외 불확실성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의미이자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장벽 확대 정책에 그만큼 더 취약할 것이라는 뜻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 불안 등 내부 요인 압박도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OECD의 이날 수정 전망치에는 극심한 내수 부진에 계엄·탄핵 사태 여파로 빚어진 정치·경제 불확실성이 반영된 데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이 ‘관세 태풍’의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위기(危機)에 봉착했음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OECD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도 3.3%에서 3.1%로 0.2%포인트 낮춘 것을 비롯해 주요국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경기가 전반적으로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촉발한 미국에 대해서도 2.4%에서 2.2%로 0.2%포인트 낮춰 잡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전쟁’에 따른 경기 침체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는데, 중국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로 큰 수출 시장인 미국이 휘청거리면 우리 경제는 당연히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3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대(對)미국 수출액으로 전년 대비 10.5% 증가한 1278억 달러를 기록했고 대(對)중국 수출액은 6.6% 늘어난 1330억 달러를 올렸다. 지난해 한국의 대(對)미국 무역흑자액은 557억 달러(약 81조원)를 기록했다. 미국 입장에서의 한국은 8번째로 무역적자액이 많은 교역국이다.
더욱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건 미국이 예고한 관세 폭탄이 한국을 정조준할 경우 1%대 중반의 성장률마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2일 무역 상대국의 비관세 장벽까지 고려한 무차별 상호관세를 예고했고, 특히 한국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와 반도체를 콕 집어 25% 이상의 관세를 언급했다. 관세 폭탄을 맞기도 전에 지난달 하루 평균 수출액은 6% 가까이 감소하며 수출 전선에 진한 먹구름이 꼈다. 전체 한국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도 16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반도체에 이어 2위 수출 품목인 자동차마저 미국발(發) 관세 전쟁의 영향권 안에 들어간 만큼 한국 경제를 이끌어왔던 수출에 비상등이 켜졌단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우리 경제는 적색 경고등이 켜진 가운데 위기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한국 수출은 2023년 10월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이 플러스(+)로 전환된 뒤 작년 12월까지 15개월 연속 호조를 보이던 수출 증가율은 지난 1월에 플러스(+) 기조가 끊어졌고, 올해 1∼2월 누적 수출액은 1017억3000만 달러로, 지난해 1068억300만 달러보다 4.75% 감소했다. 우리나라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 수출은 지난 2월 96억 달러로 전년 대비 3% 감소하며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 1월까지 9개월 연속 100억 달러를 넘기면서 15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했지만, 2월 들어 그 흐름이 깨졌다. 범용 메모리 반도체인 DDR4, 낸드 등의 고정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반도체 사업 부진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의 이재용 회장은 최근 임원 세미나에서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라며 “경영진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사즉생의 각오로 위기에 과감하게 대처해야 한다”라고 강조해 최근 삼성이 안팎에서 처한 절박한 상황을 드러냈다. 이어 “전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라면서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혁신과 초격차 기술 개발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삼성은 지난달 말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 계열사의 부사장 이하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을 하고 있다. 삼성이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은 2016년 이후 9년 만이다.
OECD는 관세 전쟁 여파로 한국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1.8%에서 1.9%로 상향 조정했다. OECD는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많은 국가에서 물가가 올랐다”라면서 “한국과 일본, 스페인에서 먹거리 물가가 오르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지난 2월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였으나 생활필수품 가격 변동을 나타내는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2.6%를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내수 부진에서 비롯된 경기 침체에 더해 환율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까지 덮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국면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경기 침체(Stagnation)와 물가 상승(Inflation)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제 현상을 말한다. 밥상 물가가 들썩이니 민생이 편할 리는 만무(萬無)하다. 민생 회복을 위해서 보다 치밀한 물가 관리에 집중해야만 한다.
게다가 내수 침체 장기화와 원재료가격 급등으로 최근 두 달간 폐업한 자영업자가 20만명에 달한다. 지난 1월 제조업 생산지수(원지수 │ 2020년=100)는 103.7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2% 감소했고,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실물경제의 3대 축인 생산(전산업 0.3%↓)·소비(소매판매 0.4%↓)·투자(설비투자 5.8%↓)가 동시에 ‘트리플(Triple) 감소’하는 삼중고(三重苦)를 겪으며 코로나 19급 충격을 받았다. 고용 시장에도 내수 한파가 몰아쳐 지난달 실업급여 지급액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 3월 10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행정통계로 본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 구직급여(실업급여) 지급액은 1조72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1.5% 증가했다. 1997년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2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막연한 우려에서 눈앞의 현실이 된 ‘관세 전쟁’ 속에서 더 하락하는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불확실성을 없애고 외교통상 라인을 조속히 복원해 우리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면 무엇보다 기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기업들이 초격차 기술 개발에 전념할 수 있게 정부와 정치권은 규제 혁파와 세제·예산 등의 전방위 지원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나 여야는 말로만 ‘성장’을 외칠 뿐 경제 살리기 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여(與)·야(野)는 망국적·소모적 당리당략(黨利黨略)에서 서둘러 냉큼 벗어나 국가의 미래를 걱정해야만 한다. 내수와 수출에 동반 비상등이 켜졌는데도 경기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할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OECD는 저성장 위기를 타개하려면 각국 중앙은행이 불확실성을 줄이고 무역비용 상승이 임금과 물가 압력을 가중하지 않도록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음을 새겨들어야 한다.
설상가상(雪上加霜) 가계부채가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세계 2위라는 국제기관의 조사 결과가 나와 충격파가 크다. 국제금융협회(IFF)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1.7%로 38개국 중 캐나다(100.6%)에 이어 2위를 기록해서다. 세계 평균(60.3%)을 훌쩍 웃도는 수치다. 집값 상승이 대출 증가로 이어지고, 대출 증가가 다시 집값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경우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안정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계엄과 탄핵사태로 리더십 부재 상태인 한국은 미국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선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했는데도 정부가 두 달 동안이나 몰랐다.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 전략을 정비하고, 세부 사안별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민(民)·관(官)·정(政)이 신성장 동력 육성과 초격차 기술 개발을 위해 총력전을 펼쳐야만 저성장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각별 유념하고 서둘러 행동으로 옮겨야만 한다. 조속히 정치 불안을 해소하고 경제 법안들을 처리하는 한편 노동·연금 등의 구조 개혁과 규제 혁파, 초격차 기술 개발, 고급 인재 양성에 속도를 내야 한다. 경기 회복의 불씨를 그나마 살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도 각성·통감해야만 한다. 경제는 심리지만 정책은 타이밍이라는 단순한 금언을 새겨들어야만 한다. 여(與)·야(野)가 정략적 행보와 정치 셈법에 빠져 여(與)·야(野)·정(政) 국정협의회의 공전을 거듭하는 사이 ‘골든타임(Golden-time)’만 속절없이 흘러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