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국민소득 3만 달러 제자리걸음, 경제 체질부터 개선해야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실물경제의 3대 축인 생산(전산업 0.3%↓)·소비(소매판매 0.4%↓)·투자(설비투자 5.8%↓)가 동시에 ‘트리플(Triple) 감소’하는 삼중고(三重苦)를 겪으며 내수 침체가 고착화(固着化)하면서 한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들어섰다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월 수출마저 전년 동월 대비 10.2% 감소한 491억 달러에 기록하며, 16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서 우리 경제는 그야말로 ‘쿼드러플(Quadruple) 추락’ 위기의 깊은 수렁에 빠졌다. 게다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2기 행정부 발(發) 본격적인 관세전쟁 포성(砲聲)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의 풍전등화(風前燈火)에 누란지위(累卵之危)의 경제 위기(危機)에 봉착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나락(奈落)에 내몰리며 나라 안팎의 경제 환경이 총체적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격동의 역사 언저리에서도 2024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년 전보다 1.2% 증가한 3만6624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5일 발표한 ‘2024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6624달러로 전년보다 1.2% 늘었다. 원화로는 4995만5000원으로 전년도 4724만8000원)보다 5.7%(270만7000원)나 늘었는데, 원·달러 환율상승으로 달러화 기준 오름폭이 원화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다. 한국의 3만6624달러는 일본과 대만을 앞섰고,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 중에서 미국·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에 이어 6위를 차지했다. 이웃 일본을 넘어선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원화 가치 하락 등의 영향으로 11년째 ‘3만 달러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3년 2.7% 성장에 이어 2년 연속 증가했으나 2014년(3만798달러) 처음으로 3만 달러대에 진입한 뒤 꾸준히 증가해 2021년 3만7898달러까지 늘어났지만, 2022년 3만5000달러로 주저앉은 후 2023년부터 3만6000달러대에 머물고 있어 4만 달러 벽을 깨지 못하고 무려 11년째 박스권에 갇힌 신세다.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진입하는 데 평균 6년 정도 걸린 미국, 독일 등과 비교하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쇠현상이 본격화된 것 아니냐는 진단마저 나온다. 한국 경제가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극명한 신호가 아닐 수 없다.
작년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의 4만 달러 달성 시기를 2027년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지난 3월 5일 “환율 변동성이 커진 사실 등을 고려하면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2023년 대비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중후반대를 기록할 정도로 무섭게 치솟으면서 달러로 환산되는 GNI가 증가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작용했다. 원화 가치 하락이 없었다면 실질적 소득증가 폭이 훨씬 적었을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국민소득 증가를 마냥 긍정적 소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올해와 내년 모두 1%대 저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으로 미뤄 보면 이런 관측이 실현될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특히 한국의 성장 둔화와 녹록지 않은 경제 여건을 고려하면 선진국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1인당 GNI 4만 달러 달성은 더 멀어질 수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였지만 4분기 성장률은 0.1%에 불과했다는 것도 우려를 키우게 한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낮췄고, 내년 성장률도 1.8%로 예측했다. 저출생·고령화와 생산성 감소로 2030~2034년 평균 잠재성장률은 1.3%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 수출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은 경제에 짙은 먹구름을 무겁게 드리우고 있다.
작금의 우리 경제는 수출과 정부 소비는 성장했지만, 건설과 설비투자의 감소가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건설투자의 대폭 하락은 부동산시장 위축과 정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감소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다 우리 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성장률이 0.2%에 그친 것도 걱정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트럼프 신정부가 예고한 관세 정책을 시행한다면, 우리의 대미(對美)수출이 9~13%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미국 통상정책의 경제적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미국발(發) ‘글로벌 관세전쟁’이 본격화할 경우 한국의 수출 규모가 최대 448억 달러(약 65조 원)까지 줄어들 것으로 우려를 했다. 지난해 한국의 총수출액(6838억 달러)을 감안하면, 전체 수출액의 약 6.6%가 증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혁신과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부터 개선해야만 4만 달러 시대로 진입할 수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는 지난 십 수년간 새로운 성장동력은 키우지 못한 채 기존 산업에만 매달려 왔다. 그 결과 10대 수출 품목 중 8개가 20년째 그대로다. 반도체는 2013년 1위에 올라선 뒤 작년까지 12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동차는 12년간 8번이나 2위 품목에 자리했다.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을 수 없다. 미래 산업이 활발하게 일어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정치권이 규제 남발로 이를 막아온 탓이 크다. 그 결과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사업 모델 중 57개가 한국에서는 아예 창업이 불가능한 심각한 규제 환경을 갖고 있다. 반도체·자동차에 의존해 성장하다 보니 이들 산업이 휘청이면 국가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혁신산업은 기득권을 옹호하는 규제정책에 가로막혀 번번이 좌절됐다. 세계 100여 국이 하는 승차 공유 서비스 ‘우버’ 영업이 한국에선 금지됐다. 이를 우회하는 사업 모델로 개발된 승차 공유 플랫폼인 ‘타다’는 회원 170만명을 넘어설 만큼 호평을 받았지만, 택시업계 눈치를 본 당시 정부·여당의 2020년 사실상 ‘서비스 금지’ 입법에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선진국 대부분이 도입한 비대면 진료는 현 정부 들어 의사단체 등쌀에 2023년 6월 시범사업 후 법제화 진척이 없는 실정이다. 지난 십 수년간 연금·의료·노동·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속 가능한 연금, 지역·필수의료 강화, 노동시장·근로시간 규제 유연화, 혁신 인재 양성을 위한 입시제도 개선 등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도 내세울 것도 없다. 지난 2월 25일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1.5%로 기존보다 0.4%포인트나 낮춰 잡고는 “1%대 성장이 우리의 실력”이라고 평하며 구조조정도 하지 않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우지 않은 경제 현실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산업을 도입하려면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고 누군가는 고통받아야 하는데 사회적 갈등을 감내하기 어려워 피하다 보니 지난 10년간 하나도 도입되지 않았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세계은행(WB)은 2024년 8월 대한민국을 ‘중진국 함정’을 극복한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성장 슈퍼스타’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세계은행은 한국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게 된 이유로 투자, 기술 도입, 혁신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94년 1만 달러를 돌파했다. 9년 후 2005년에는 2만 달러를 넘었다. 다시 9년 만인 2014년 3만 달러를 달성하며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한국의 ‘성장 스토리’는 거기까지였다. 10년이 지난 2024년에도 3만 달러대에 머물렀다. 한국이 선진국 함정에 빠진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저성장이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3%대였던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이제 1%대에 고착화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 한국의 성장률이 2030년대부터 0%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실질성장률 하락은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은행은 현재 2%인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0년대에 1.1%로 떨어지고, 2040년대 중반에 0.6%까지 추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장기 고착화된 저성장은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이루지 못한 채 있는 기존 것만 까먹고 있는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병폐(病弊) 때문이란 게 확실하다. 중국의 공세에 밀려 경쟁력을 잃었는데도 구조조정을 미루는 바람에 조선, 해운업이 위기를 겪은 데 이어 최근엔 철강·석유화학이 곤경에 처해 있다. 뼈를 깎는 내핍(耐乏)과 고통 분담의 구조조정 대신 각종 금융 지원으로 연명(延命)시켜준 정책 탓에 상장 기업의 3분의 1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좀비(한계) 기업’ 상태다.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PF)에 대한 정리 작업을 계속 미루면서 건설 산업도 기약 없는 늪에 빠져 있다. 선진국들의 성장 역사를 보면 작금의 한국처럼 극심한 국론 분열은 없었다. 정치적 양극화가 일군 극단적 대립과 대중 선동에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정서적 양극화가 키운 정의와 공동체적 연대의 가치가 위협받는 ‘초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이 체감하는 진보·보수 이념 갈등은 심각한 수준에 이른다. 사회 갈등의 유형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여긴 갈등은 ‘진보와 보수’ 갈등이다. 대내외 불확실성은 날이 갈수록 커져 기업들이 장기 투자 계획을 세우고 대응하기도 어려운 형국만 가속화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는 4만 달러를 넘기기는커녕 외려 3만 달러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각별 명심해야만 한다.
갈수록 떨어지는 생산성도 심각한 문제다. 한국의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이스라엘 등에 이어 6위지만 노동생산성은 최하위권이다. 2023년 기준 미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77.9달러에 달하지만, 한국은 시간당 44.4달러에 그치고 있다. 성장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총요소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하는 것도 목전의 임박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매몰되어 소모적 정쟁만 벌이지 말고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고, 국민 삶의 만족도를 높일 정책 경쟁에 집중해야만 할 것이다. 표와 인기에만 눈먼 정치권과 정부는 새겨들어야만 한다. 기업 투자와 생산성 향상의 발목을 잡는 규제부터 과감히 혁파하여 경제·산업 전반의 구조개혁을 통해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아서 서둘러 시동을 거는 것이 최선(最先)의 급선무란 현실을 말이다. 지금은 환율효과에 기반한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국민소득 증가에 자족하고 있기보다는 갈수록 불확실성만 증대하고 있는 대내외 경제 환경에 대한 효과적인 위기대응전략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한 지난해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한국인이 외국에 보유한 자산-외국인이 국내에 보유한 자산)은 1조1023억 달러에 이르러 세계 7위 규모이다. 외환 위기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외환보유액(外換保有額) 역시 4156억 달러에 이른다. 이러한 객관적 지표로 볼 때 한국은 분명히 선진국 일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밋빛 통계에 현혹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전통적인 산업구조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기업을 무겁게 짓누르는 시대착오적 족쇄 규제도 서둘러 과감히 걷어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