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악화일로 치닫는 우리 사회 이념 갈등, 통합의 길은 요원한가
정치적 양극화가 일군 극단적 대립과 대중 선동에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정서적 양극화가 키운 정의와 공동체적 연대의 가치가 위협받는 ‘초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이 체감하는 진보·보수 이념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3월 3일 발표한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 제하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4년 6∼9월 19∼75세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4 사회통합 실태 조사’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 정도가 4점 만점에 3.04점으로 나타났다. 국민이 느끼는 사회 갈등 정도를 살펴보는 항목 조사가 시작된 지난 2018년 이후 여섯 차례의 조사에서 가장 높은 수치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 갈등 정도는 2018년과 2019년, 2021년엔 각각 2.88점, 2.90점, 2.89점으로 소폭 등락하다가 2022년엔 2.85점으로 다소 낮아졌다. 이후 2023년 2.93점에 이어 지난해 3.04점으로 2년 연속 상승했다. 농어촌 거주자와 자신의 소득수준이 하층이라고 생각하는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사회 갈등 정도가 높았다. 사회 갈등의 유형 중에서 응답자들이 가장 심각하게 여긴 갈등은 ‘진보와 보수’ 갈등이었다. 2018년엔 3.35점이었다가 2023년 3.42점, 지난해엔 3.52점으로 상승했다. 이어 지역(수도권과 지방) 간 갈등 3.06점, 정규직과 비정규직 3.01점, 노사 갈등 2.97점, 빈부 갈등 2.96점 등의 순으로 뒤를 이었다. 갈수록 깊어지는 이념 갈등은 ‘절제와 타협’이 요구되는 민주주의가 궤도를 이탈할 징후였던 셈이다. 세대별로는 중장년층이 높았고, 지역의 경우는 농어촌 거주자가 이념 갈등의 심각성을 더 많이 호소했다. 지난해 조사에서 사회통합에 대한 인식은 10점 만점에 4.32점이었다.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였던 2021년 4.59점으로 가장 높았다가 2년 연속 후퇴해 2023년에는 4.20점으로 낮아졌으나 지난해 소폭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작년 한 해 동안 한국 사회에서 국민들이 경험한 우울감과 걱정 등 부정적인 정서가 전년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회적 갈등, 그리고 불안감이 커지면서 국민들의 사회통합에 대한 인식이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 3월 6일 공개한 ‘2024년 사회통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가장 심각한 사회 갈등으로 ‘이념’이 꼽혔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8∼9월 전국 19세 이상 8,251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 결과 ‘진보와 보수 간 이념 갈등’은 4점 만점에 3.1점으로 가장 높았다. 보수ㆍ진보 간 갈등이 두드러졌지만, 자신의 이념 성향은 ‘중도적’이라고 평가한 이가 전체의 45.2%에 달했다. 전년 대비 1.5%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보수적이라고 답한 이는 30.2%(다소 보수 25.1%ㆍ매우 보수적 5.1%), 진보적이라고 답한 이는 24.6%(다소 진보 21.4%ㆍ매우 진보 3.2%)였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가구소득이 낮을수록 보수적이란 응답이 많았다. 빈곤층과 중ㆍ상층 간 계층 갈등은 2.9점, 근로자와 고용주 간 노사 갈등은 2.8점이었다. 사회 갈등의 가장 중요 원인으론 ‘이해 당사자들의 각자 이익 추구’(25.9%)가 꼽혔다. 이어 상호이해 부족(24.6%), 개인ㆍ집단 간 가치관 차이(17.9%), 빈부격차(16.8%) 등의 순이었다.
이와 같은 국론 분열이 임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소통은 실종되고 이념 갈등의 거대한 쓰나미가 대한민국을 덮치고 있다. 이러다가 나라가 정말 두 동강 나는 것 아닌가 할 정도로 우려가 심각성을 더한다. 이념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여(與)·야(野) 정치권은 극한 대치를 이어갔고, 갈등을 조정하며 국정을 이끌 책임이 있는 대통령은 ‘반국가세력’ 운운하며 계엄을 선포했다. 이후 석 달가량 이어진 탄핵 정국에서도 우리 사회는 극심한 국론 분열을 겪고 있다. 특히 지난 제106주년 3·1절에 서울 도심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찬성 집회와 탄핵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광화문에서 안국역에 이르는 구간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에선 윤 대통령 파면과 국민의힘 심판을 외쳤고, 이로부터 1㎞ 떨어진 광화문에서 시청에 이르는 구간과 여의도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선 윤 대통령 즉각 복귀와 좌파 카르텔 척결을 주장했다. 그야말로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국론 분열에 올라타 내 편을 집결시키고 세를 불리는 데만 온통 혈안일 뿐이다. 여(與)·야(野) 의원들은 “좌파 강점기”라거나 “수구조차 못 되는 반동” 같은 진영 간 이념 대결을 자극하는 발언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헌법재판소를 때려 부수자”라며 탄핵심판 불복을 선동하고 민주주의의 제도적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이념·지역·계급·종교 등을 초월해 민족이 하나가 돼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기념일에 대한민국이 마주한 안타까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념 갈등이 일상 곳곳에 스며들면 상식적인 중도층은 침묵하고 사회 갈등은 증폭된다는 점이다. 이런 극단적인 분열상이 계속된다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이후에도 계엄으로 인한 내상을 치유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낼 수 있을지 심각하게 우려된다. 망국적 국론 분열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결과에 따라 더 심해질 공산이 크다. 인용 결정이 나더라도 분열상이 고조될 것이라 보이고, 탄핵이 기각되어도 수그러들기는커녕 더 고조될 위험이 크다. 이들 두 조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전에 이뤄졌다. 같은 조사를 작금에 실시하게 된다면 이념 갈등 수치는 더 가파르게 올라갈 것이다. 이념 갈등이 진정되기는커녕 갈수록 확대되고 있어 착잡할 따름이다. 문제는 진보·보수 진영의 이념 갈등이 탄핵 정국과 맞물려 더욱 극렬하게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말마다 광장이 뜨거워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3월은 더더욱 그러하다.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여부에 대한 마지막 결정이 목전에 임박하면서 두 진영의 세 대결은 전쟁에 가까울 정도다. 연령대별, 남녀별로 갈라진 채 보수와 진보로 온통 광장이 찢기고 갈라지고 있다. 한동안 지역감정으로 나뉘더니 이제는 이념 전쟁으로 혼란스럽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지만 이념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은 결단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렇게까지 우리 사회가 분열상의 심각성을 더하고 이런 지경에 까지 이른 데는 여(與)·야(野) 정치인들의 책임이 작지 않다.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자신들의 득표에 유리하도록 지지자들을 끌어들여 이념 갈등을 조장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상황에서 여(與)·야(野) 정치권은 갈등을 완화하고 조정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증폭시키고 있어 볼썽사납다. 국민 통합을 외쳐도 시원찮을 판에 이념 갈등에 되레 올라탄 양상이기 때문이다.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부추겨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정치권의 대오각성(大悟覺醒)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역대 대통령은 당선 직후나 취임식에서 소통과 통합을 외쳤다. 박근혜 대통령은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라고,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과 대한민국을 위해 하나가 돼야 한다.”라고 나름 정치철학의 기본으로 표명하고 천명했지만 이런 말은 듣기 좋은 미사여구에 그치고 말았다. 통합과 포용은 온데간데없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고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가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들이 자신의 지지층에 얽매인 나머지 진영 논리에서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조용히 반추하면서 국론 통합에 박차를 가해야만 한다. 이념 갈등이 좁혀지지 않는 한 소모적인 사회적 대립 현상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선량한 국민을 더는 분열과 갈등의 수렁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극단적 분열과 대립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각별 유념하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세력도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인식하고 명찰하고 정치인들 스스로 자제와 솔선수범이 요구된다. 정부 수립 이후 민중의 피로써 이룩된 민주주의의 공든 탑이 허물어져 내리게 하거나 공동체 전체를 파멸로 내몰 수는 없다. 헌법재판소의 권위와 결정을 결단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극심한 내수 침체와 고령화, 세계적인 저출생, 비상계엄과 탄핵, 산업 구조조정 실종, 과도한 기업 규제 등으로 우리 경제의 장기침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2기 행정부 발(發) 본격적인 관세전쟁 포성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의 풍전등화(風前燈火)에 누란지위(累卵之危)의 경제 위기(危機)에 봉착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나락(奈落)에 선 현시점에서 통합의 메시지를 내고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야만 진정한 정치인이고 존경받는 지도자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