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과실 의료사고 ‘기소 자제’ 권고…’합의 시 면책’
복지부,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정부안 발표 의료사고 형사 체계, 중대과실 위주로 전환 필수의료 사망도 긴급성 등 고려해 형 감면
정부가 필수의료 분야 사법 리스크 완화를 위해 필수의료, 중대과실 유형을 법제화하고 중과실 위주로 형사 체계를 개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환자들이 빠르고 충분한 배·보상을 받을 수 있게 책임보험 의무화와 보상액을 현실화하는 안도 담겼다. 단 환자단체 등에서는 "굉장히 불합리한 제도"라며 반발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과 보건복지부는 6일 오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의료사고는 환자·의료진 모두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현실이다. 의료사고 1심 평균 소요 기간은 26개월인데 사망 등 중상해 분쟁 조정률은 55.7%에 그친다.
특히 의료사고로 인한 사법 리스크는 필수의료 분야에 의료진이 유입되는데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날 강준 복지부 의료개혁총괄과장은 의료사고 안전망과 관련한 정부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환자와 의료진의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실질적 회복 지원을 정책 목표로 삼았다.
핵심 중 하나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신설이다. 정부안을 보면 수사당국에서 의료사고 사건을 접수하면 30일 내에 의료사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한다. 심의위에서는 150일 내에 필수의료 및 중대한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데 중대한 과실이 아닌 의료사고로 기소 자제를 권고하면 수사당국이 이를 '존중'하도록 법제화하겠다는 것이다.
심의를 할 땐 피해가 얼마나 큰 지를 보는 상해 정도가 아니라 중대 과실인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복지부에 따르면 영국과 일본도 상해 정도가 아닌 중대 과실 중심으로 기소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환자와 의료진이 합의하면 형사 처벌을 면책하는 '반의사불벌'을 폭넓게 인정한다. 현재는 피해자의 형사 처벌 의사가 없는 단순 과실 사건도 중상해는 기소를 하고 있다. 단 사망사고는 중대성을 고려해 필수의료에 한정해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사고 당시 긴급성, 구명 활동 등을 고려해 형을 면제하거나 감경하는 방안이 담겼다. 필수의료와 중대과실 유형·기준은 법령으로 규정한다.
또 사고 발생 경위 및 상황 등 의료사고에 대한 설명과 소통 방식을 법제화하고 지침 등을 제공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이 유감 또는 사과를 할 때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불리한 증거로 채택되지 않도록 법제화 하는 방안도 담겼다.
또 의료분쟁에서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환자를 위한 대변인 제도, 세부 전공별 감정 위원 확충 및 전문 감정 교육 인증제 등을 신설하고 감정·조정 결과는 국민에게 공개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의료진 개인의 배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공적 배상 체계도 강화한다. 현재 대한의사협회(의협)에서 운영하는 의료배상공제조합 가입률은 병원과 종합병원급에서 35.6%에 그친다.
정부는 의료기관 개설자를 대상으로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신속·충분한 배상이 가능하도록 보험·공제를 혁신하기로 했다.
고위험 필수 진료 부담 완화를 위해 필수의료 분야에서는 보험료 국고 지원을 확대하고 불가항력 사고는 현재 분만에서 중증 응급, 중증 소아 등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강 과장은 "형사 책임 면제보다는 환자와 의료진 모두 안전한 환경에서 진료를 받고 불가피한 결과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보듬으면서 해결할 합리적 방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우리 사회가 의료사고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방점을 뒀다"고 말했다.
단 환자단체에서는 반발이 나왔다.
이은영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근거가 불확실한 사법리스크를 이유로 특례를 추진하겠다는 건 굉장히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이 이사는 "의료정책연구소라는 곳에서 연평균 754.8건의 의사 기소가 있었다고 발표해 이슈가 됐지만 실제 연평균 의사 기소는 30~40건에 불과하다는 의견들도 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 이달까지 연도별 의사 업무치사 과실 고소 건수와 기소 건수 연구를 의뢰했고 아마 이번 달 발표가 될 것 같은데 이 자료가 공개되면 과도한 사법리스크가 있는지 여부가 객관적으로 확인될 것"이라며 "의료계에서 주장한 연평균 754.8건과 정부 용역 연구 결과가 큰 차이가 난다면 특례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설득력을 잃게 된다"고 했다.
유현정 나을 법률사무소 대표도 "의료 소송이 증가하고 있다고 하는데 2013년 1101건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4년부터 900건으로 감소했고 2023년에는 768건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라며 "체감적으로 의료정책연구소 통계는 과장돼있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반면 이성순 인제대 일산백병원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유일하게 의료 소송 관련 뽑을 수 있는 통계는 검찰청의 업무상 과실 치사상 기소된 직업이 의사인 사람인데 그게 1년에 한 780건 정도"라며 "30~40건 얘기는 기소 이후에 조정, 합의 이런 거 다 빼고 나중에 판결문이 나온 횟수"라고 했다.
이 교수는 "영국과 미국, 프랑스, 일본을 보면 1년에 형사 기소되는 의사 건수가 3,4건인데 우리나라가 적게 잡아 500건이라고 해도 큰 차이가 난다"며 "우리나라 의사들이 해외 의사보다 더 게으르거나 실수를 많이하는 게 아니라면, 우리나라 기소가 과도한 게 아닌가 합리적으로 추론해 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교도소 담장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응급의학과가 더 줄어들면 환자들이 치료를 못 받는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며 "의사도 국민도 피해인데 이런 부분이 합리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권민정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심의위가 생겨 필수의료와 중과실 여부를 심의하게 되면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게 돼 보다 전문성 있고 신속하게 기소 여부를 판단하도록 도와드릴 수 있다. 한 쪽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라며 "심의위에 어떤 분이 들어오는지 등 구체적인 모양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정교화되고 구체화돼 합리적 모습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