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 민주주의 성숙도 32위로 10단계 하락

2025-03-01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갑작스러운 날벼락‘비상계엄’충격파에 휘말린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가 역대 최악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한국의 민주주의 성숙도가 전년보다 10계단 하락하면서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범주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 범주로 추락해서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부설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 │ Economist Intelligence Unit)’이 지난 2월 27일(현지 시각)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Democracy Index 2024)’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7.75점을 받아 전년의 8.09점보다 0.34점이나 크게 떨어졌다. 7.75점은 2006년 EIU가 지수 산출을 시작한 이래 한국이 받은 가장 낮은 점수다. 세계 순위도 167개국 중 22위에서 32위로 10단계 추락했다. 한국의 0.34점 하락은 167개국 중 9번째로 큰 낙폭으로 점수가 가장 많이 감소한 국가 상위 10위에도 포함됐다. EIU는 “한국은 비상계엄 선포로 위기를 겪으면서 정치적 교착상태로 정부 기능과 정치 문화 점수가 하향 조정되어 ‘완전한 민주주의’ 기준(8점) 아래로 떨어졌다”라고 밝혔다.

EIU는 2006년부터 167개 국가를 대상으로 5개 영역을 평가해 민주주의 발전 수준 점수를 산출한다. 한국은 항목별로 ▲ 선거 과정과 다원주의 9.58점 ▲ 정부 기능 7.50점 ▲ 정치 참여 7.22점 ▲ 정치 문화 5.63점 ▲ 시민 자유 8.82점을 얻은 데 그쳤다. 정부 기능(전년 8.57점), 정치 문화(6.25점) 점수가 전년보다 하락했고 나머지 항목은 같았다. 8점이 넘는 국가는 ▲ ‘완전한 민주주의’ ▲ 6점 초과∼8점 이하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 ▲ 4점 초과∼6점 이하는 ‘민주·권위주의 혼합형 체제’ ▲ 4점 미만은 ‘권위주의 체제’ 등 4단계로 구분한다. 총점 7.75점은 2006년 이 지수 산출이 시작된 이후 한국이 받은 가장 낮은 점수다.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탈락한 것도 2020년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다. 전 세계 평균 점수는 5.17점으로 지난해에 이어 2006년 이후 사상 최저점을 경신했다. 최고치는 2015년의 5.55점이었다. 노르웨이가 총점 9.81점으로 16년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뉴질랜드(9.61점)와 스웨덴(9.39점), 아이슬란드(9.38점)가 뒤를 이었다. 미국은 전년보다 1계단 오른 28위(7.85점)로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남게 됐고, 대만(8.78점)은 12위로 전년보다 2계단 내려갔고, 일본은 8.48점으로 16위를 유지했다. 중국(2.11점)은 145위로 3계단 올랐으나 권위주의 국가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탄핵 정국의 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 매겨진 역대 최악의 민주주의 성적표는 예사롭지 않다. 12·3 비상계엄 이후 국정 리더십 부재에 따른 국내적 혼란과 갈등 격화, 국제 신인도 하락은 이미 전 국민이 깊이 체감하고 있는 터지만 느닷없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날벼락 ‘비상계엄’ 선포로 우리 민주주의가 입은 피해가 공신력 있는 기관의 평가를 통해 점수·순위의 하락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번 떨어진 국제적 평판을 만회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당장 그 추락이 다른 분야의 평가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허투루 넘겨버릴 수는 없다.

한편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도 같은 날 ‘2025 세계자유지수(Freedom in the World 2025)’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한국은 이 순위에서는 표현의 자유 등을 매기는 ‘시민적 자유’ 부문에서 60점 만점에 49점, 선거제도와 정치 참여도 등을 평가하는 ‘정치적 권리’ 부문에서 40점 만점에 32점 등 한국의 ‘자유 지수’는 100점 만점에 81점으로 ‘자유로운 국가’로 분류됐다. 다만, 1년 전보다 2점이 하락했으며 지수 순으로는 66위를 기록했다. 프리덤하우스 역시 한국이 비상계엄 사태로 신뢰가 일정 부분 훼손됐음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12·3 비상계엄을 언급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을 드라마틱한 헌법적 위기에 빠트렸다”라고 했다. 한국을 예로 들며 “전 세계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협 중 하나는 선출된 지도자가 민주주의 제도를 공격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프리덤하우스는 208개 국가 및 영토의 ‘정치적 권리(Political rights)’와 ‘시민적 자유(Civil liberties)’를 통해 자유 지수를 측정하고 있다. 자유 지수 총점에 따라 ▲ ‘자유 국가(Free)’ ▲ ‘부분적 자유 국가(Partly Free)’ ▲ ‘비자유 국가(Not Free)’로 분류된다.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의 자유 지수를 측정하며 “한국은 정기적인 권력의 교체와 강력한 정치적 다원주의로 시민의 자유가 존중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부인과 내각에 대한 조사를 억압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한국을 헌법적 위기에 빠트렸다”라고 밝혔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계엄 후폭풍과 여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둘러싼 관저 공방전과 법원 폭력 난동 등 새해 들어 벌어진 정치적 혼란과 불미스러운 사태들은 이번 EIU 평가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조만간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이 나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그야말로 예측 불허로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EIU도 보고서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 시도에 따른 여파는 국회에서, 그리고 국민 사이에서 양극화와 긴장을 고조시켰고 2025년에도 지속할 것 같다”라고도 전망했다. 탄핵 심판 결정이 다가오면서 국론 분열이 극에 달하고 있다.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공동체를 지탱해 온 사법적 가치는 심각하게 훼손됐다. 법치의 최후 보루이자 최고의 유권해석 기관인 헌재도 전례 없는 불신의 상처를 입었다. 망국적 국론 분열을 방조(幫助)하고 방치(放置)하고 방관(傍觀)하고 방기(放棄)해서는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정국 안정은 기대할 수 없다.

헌재의 판결에 전적으로 승복하는 것만이 사회 혼란과 국정 혼돈을 수습할 첩경이자 방책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정치권은 어떤 결과가 나오든 깨끗이 승복하겠다는 약속을 지금 국민 앞에 다짐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다짐은 지켜져야만 한다. 그동안 한국의 정치적 격동은 매번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해외 토픽감이었음도 기억해야만 한다. 얼마 뒤 헌재 주변에서 벌어질 군중 간 대결도 전 세계는 비상한 관심 속에 유심히 지켜볼 것이 너무도 자명하다. 비상계엄은 선포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국민 가슴에 깊은 내상을 남겼고 국격 추락이란 결과도 낳았다. 그 실책을 바로잡기 위한 더딘 과정과 불확실성의 심화 가운데에서 우리 사회의 내부 갈등은 커질 대로 커졌지만, 그것이 민주주의 정상화를 위한 일시적 진통이나 민주주의 발전의 성장통이 될지언정 더 큰 분열과 혼란으로 ‘복구 불가’ 내지 ‘비가역적(非可逆的)’ 치둔(癡鈍)의 우(愚)를 낳는 최악의 결과만은 없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