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도 팍팍한 서민의 삶, 졸라맬 허리조차 없는 민생 살펴야
작금의 한국 경제는 안팎으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의 풍전등화(風前燈火)에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위기(危機)에 봉착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나락(奈落)에 서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이은 12·14 탄핵소추 접수, 1·26 대통령 구속기소 정국으로 정치적 혼란과 불확실성에 따른 국정 마비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내수 부진에 이어 경제 버팀목인 수출마저 흔들리면서 대한민국 경제지표 대부분이 적색경고등이 켜지고,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투자 증가세의 둔화, 생산성의 저하 등으로 성장잠재력이 약해지고,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는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계층이동의 기회를 제약할 뿐만 아니라 내수기반을 침식하여 민생경제를 나락으로 밀어내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행정부가 촉발한 관세전쟁 쇼크가 겹치면서 경기 하방압력이 더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19일 공개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향후 전망’이란 제하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약 5%에 달했던 잠재성장률이 2024~2026년에 2%, 2040년대 후반에는 0.6%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잠재 국내총생산(GDP)은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동원하면서도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 경제 규모를 말한다. 잠재성장률은 이 잠재 GDP의 증가율인 것이다. 영국 경제연구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CE │ Capital Economics)는 지난 2월 1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1%에서 1.0%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기획재정부가 지난 1월 2일 ‘2025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발표한 전망치 1.8%는 물론 한국은행이 지난 1월 20일 블로그에서 밝힌 전망치 1.6∼1.7%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2월 11일 ‘2025년 경제전망 수정’을 통해 올해 한국 경제성장 전망치 1.6%에 한참 못 미칠 뿐 아니라 가장 낮게 내다본 JP모건의 전망치 1.2%보다도 밑도는 참담한 수치다.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향후 전망’ 보고서에서 잠재성장률 하락 원인을 두고 “우리 경제의 혁신 부족, 자원 배분 비효율성 등으로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가 낮아지는 가운데,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 성숙기 진입에 따른 투자 둔화 등으로 노동·자본 투입 기여도까지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현재 추세가 개선 없이 이어지는 경우엔 잠재성장률은 ▷ 2025∼2029년 연평균 1.8%, ▷ 2030∼2034년 1.3%, ▷ 2035∼2039년 1.1%, ▷ 2040∼2044년 0.7%, ▷ 2045∼2049년 0.6%까지 계속 낮아질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앞으로 구조 개혁 등이 제대로 이뤄지면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게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최근 한국 경제의 성장률 하락은 구조적 요인과 대내외 경제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부적절한 정책 대응의 탓이기도 하다. 수출의존도와 민간부채비율이 높은 한국 경제는 재정정책의 역할이 중요한데도 부자 감세와 건전재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으면서 경기의 하방압력이 거세지는 시기에도 재정을 긴축적으로 운용하였고, 그 결과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더욱이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부자 감세와 긴축재정으로 내수기반이 위축되고, 그 피해는 서민 중산층,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고스란히 집중되었다. 주기적으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시장경제에서 경제주체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경기 대응적으로 재정을 운용해야만 한다.
이렇듯 우리 경제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가운데 고물가의 파고는 저소득층에 더 크게 덮쳐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졌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사업소득이 크게 줄면서 지갑이 얇아진 가운데 빚을 못 갚는 자영업자도 많이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2월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기준)은 0.44%로 전월 말 0.52% 대비 0.08%포인트나 하락했다. 연체채권 정리 규모는 4조 3,000억 원으로 전월 2조 원보다 2조 3,000억 원이나 늘어났다. 신규 연체 발생액도 2조 5,000억 원으로 전월 2조 8,000억 원보다 3,000억 원이나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가계대출 연체율도 0.38%로 전월 말 0.41% 대비 0.03%포인트나 하락했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전월 말 0.27% 대비 0.01%포인트나 내린 0.26%,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신용대출 등) 연체율은 전월 말 0.82% 대비 0.08%포인트나 하락한 0.74%로 집계됐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소득 하위 20% 계층의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와 주거비,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9%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통계 작성한 2017년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2017∼2018년 약 65%였던 이 비중은 2020년에 67.5%로 증가한 뒤 계속 상승하고 있다. 1차 원인은 물가 상승이다. 특히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가 지난해 3.9% 올라 소비자물가 상승률(2.3%)을 웃돈 것이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소득 하위 20%는 연 소비지출(1,311만 원)에서 식료품비로 35.6%인 467만 원을 썼다. 지난해 병원 진료비 등을 포함한 의료비 상승률도 2009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의료비 비중은 2020년 이후 꾸준히 내려가다가 지난해 12.3%인 161만 원으로 급등했다. 하위 20% 주거비도 276만 원으로 전체 소비의 21.1%를 차지했고, 이 비중 역시 2017년 이후 가장 컸다. 여기에 교통비·통신비까지 더한 지출 비중은 80%가 넘는다는 게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분석한 결과다. 이 정도면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자녀 교육 등 미래를 위한 투자나 문화생활 향유는 꿈도 못 꾼다는 게 경향신문(박상영·김세훈 기자)의 해석이다. 실제로 하위 20%의 교육비 지출 비중은 1.2%로 상위 20% 계층(14.0%)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는 올해도 꺾일 기미라곤 아예 보이지조차 않다. 고환율에 본격화된 관세전쟁 여파에 신선식품과 가공식품 가격이 인상되는 조짐을 보이며 민생 물가를 위협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후 급등한 원·달러 환율이 국제유가 상승과 맞물리면서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 연초부터 가공식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어서다. 당장 대형마트에서는 농‧축‧수산물 가격이 10% 이상 올랐고 최근 환율이 반영되는 2분기 이후 수입 물가 역시 치솟을 것이라 예상된다. 오르는 물가에 소비자는 대형마트 마감 할인과 중고 거래 플랫폼을 활용하는 등 소비를 줄이고 있으며, 정부도 식품업체와 물가 안정 대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우고 커피 한 잔만 마셔도 1만 원이 쉬 넘는다. 현재 190개 전국 4년제 대학의 69%가 등록금 인상을 발표했고 절반 가까이가 5%대 인상을 결정했다. 대학가 월세도 급등하고 있다. 지난 1월 서울 주요 대학 인근 보증금 1,000만 원 기준 원룸(전용면적 33㎡ 이하)의 평균 월세는 60만 9,000원, 평균 관리비는 7만 8,000원으로 조사됐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1월 생산자물가지수가 지난해 12월(119.52)보다 0.6% 오른 120.18(2020년 수준 100)로 뛰었다. 1~2개월 뒤면 소비자물가에 고스란히 반영될 것이 분명하다.
식품업체들의 가격 인상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가공식품 물가가 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원재료 가격이 오르고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며 물가 상승 압력이 더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13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와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 1월 가공식품 물가지수는 122.03(2020년=100)으로 작년 동월보다 2.7%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 1월(3.2%)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로, 전체 소비자물가상승률(2.2%)을 상회했다. 실제로 오징어채가 22.9% 올랐으며 맛김 22.1%, 김치 17.5%, 시리얼도 14.7% 올랐다. 요리할 때 쓰는 조미료와 참기름, 간장, 식용유 등도 7∼8% 올랐으며 밀가루를 원료로 하는 비스킷, 케이크 빵도 일제히 올랐다. 마요네즈와 후추 드레싱 등 소스류 가격도 19.1% 올랐다. 파리바게뜨도 빵 96종과 케이크 25종 가격을 평균 5.9% 인상했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서민들은 도대체 무얼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물가 기여도가 큰 빵, 커피, 김치, 비스킷 등의 출고가 인상 영향으로 전체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이 높아졌다는 게 중론이다.
이렇듯 다시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서민들의 한숨 소리가 깊어지고 있다. 고환율·고유가 상황이 계속되고 본격화된 미국의 관세 정책 등 악화한 대외 여건이 근인(根因)이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지고 일상의 부담과 어려움은 가중될 뿐만 아니라 소비 심리 위축이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어 경제에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고물가는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등 통화 정책 전환에도 걸림돌이어서 내수 부진의 골은 더 깊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내수 부진에서 비롯된 경기침체에 더해 환율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까지 덮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국면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경기 침체(Stagnation)와 물가 상승(Inflation)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제 현상을 말한다. 밥상 물가가 들썩이니 민생이 편할 리는 만무하다. 민생 회복을 위해서 보다 치밀한 물가 관리에 집중해야만 한다.
특히 서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단 대책이 화급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에 희망이란 있을 수 없다. 날이 갈수록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생활물가는 가히 살인적이다. 서민들에게는 이제 졸라맬 허리조차 없다. 물가를 잡아야 할 정부는 오히려 서민들을 잡고 있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가계 지출 가운데 생필품 비중이 작아져야 내수 경기도 살아난다는 단순 논리를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여(與)·야(野)와 정부는 민생의 기본인 물가부터 잡고,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의료와 주거 복지 등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짜야 한다. 그런데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만 하는데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여(與)·야(野)가 정략적 행보와 정치 셈법에 빠져 여(與)·야(野)·정(政) 국정협의회의 공전을 거듭하는 사이 ‘골든타임(Golden-time)’만 속절없이 흘러갈 뿐이다. 추락하는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고 출구가 안 보이는 길고 긴 저성장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추가경정예산안, 국민연금 개혁, 반도체특별법 등 핵심 쟁점들의 합의를 서둘러 도출(導出)하고 도탄(塗炭)에 빠진 민생을 최우선으로 물가 앙등을 잡고 빈부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지지 않도록 공교육 강화는 물론 미래세대의 교육환경 투자에도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