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속 물가는 치솟고 소비는 쪼그라드는데 손 놓은 정치권 뭐하나

2025-02-08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12·3 비상계엄 사태와 이어진 탄핵정국의 와중(渦中)에서 우리 경제에 드리운 정치적 불확실성이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급등한 환율이 국제유가 상승과 맞물리면서 지난달부터 물가 상승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게다가 고물가는 불안한 정국과 맞물려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며 내수 부진 장기화를 고착한 데다 탄핵 정국이 길어지고 관세 폭탄으로 ‘트럼프 리스크’가 촉발하면서 고환율·고유가·고물가의 삼중고(三重苦)가 다시 한국 경제와 서민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여(與)·야(野)와 정부는 민생의 기본인 물가 오름세와 외환보유액 고갈 위기 그리고 쪼그라드는 소비 지속을 언제까지 방관(傍觀)만 하고 방치(放置)하며 방기(放棄)할 셈인지 한심스럽고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통계청이 지난 2월 5일 발표한 ‘2025년 1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2025년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5.71(2020=100)로 전월 대비 0.7%, 전년 동월 대비 2.2% 각각 상승했다. 전월 대비는 서비스, 농축수산물, 공업제품 및 전기·가스·수도가 모두 상승하여 전체 0.7% 상승했고, 전년 동월 대비는 서비스, 공업제품, 농·축·수산물 및 전기·가스·수도가 모두 상승하여 전체 2.2% 상승했다. 작년 9월부터 전년 동월 대비 1%대 초중반에 머무르던 소비자물가는 비상계엄 사태가 있던 지난해 12월에 1.9%로 반등하더니 지난 1월엔 2.2%를 기록하며 지난해 8월(2.0%) 이후 다섯 달 만에 2%대에 진입했다. 환율과 국제유가가 동시에 올라 석유류가 7.3% 급등했고, 작황이 나쁜 채소도 4.4%나 올랐다. 모처럼 안정세를 찾아가던 소비자 물가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하며 서민들의 한숨은 커지고 민생경제는 도탄(塗炭)으로 참담(慘憺)하다.

지난해 1300원대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이 12·3 비상계엄 사태 후 1500원에 육박했고, 2월 7일에도 1달러당 1447.0원으로 고공 행진한 영향이 컸다. 배럴당 67달러까지 내렸던 두바이유가 전달 대비 9.8% 상승한 배럴당 80.4 달러까지 치솟은 타격이 무엇보다 컸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취약점이 여실히 노정(露呈)된 셈이다. 1400원대 중후반에서 요동치는 환율을 붙들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면서 경제의 방파제인 외환보유액은 4년 반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지난 2월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110억 1000만 달러로 전월 말(4156억 달러) 대비 45억9000만 달러 줄었다. 월간 감소 폭은 지난해 4월(59억9000만 달러) 이후 가장 컸다. 외환보유액이 4110억1000만 달러까지 주저앉은 건 2020년 6월 4107억 달러를 기록한 이후 4년 7개월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이다. 다행히 심리적 마지노선인 4000억 달러는 지켜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전달과 같은 세계 9위였다. 1위는 중국으로 3조2024억 달러를 보유했다. 일본이 1조2307억 달러로 2위, 스위스가 9094억 달러로 3위였다. 4위 인도(6357억 달러), 5위 러시아(6091억 달러), 6위 대만(5767억 달러), 7위 사우디아라비아(4366억 달러), 8위 홍콩(4215억 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작금의 고물가는 불안한 정국과 맞물려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고공행진 중인 원·달러 환율이 유가 등 물가 전반을 끌어올린 결과다. 내수 부진에서 비롯된 경기침체에 더해 환율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까지 덮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국면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경기 침체(Stagnation)와 물가 상승(Inflation)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제 현상을 말한다. 재화 소비를 가늠할 수 있는 소매판매액지수(불변)가 지난해 4분기까지 11개 분기 연속으로 감소하는 등 내수상황이 갈수록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 2월 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소매판매액지수(103.8)는 전년 동기보다 2.1% 줄어들었다. 소매판매액지수는 지난 2022년 2분기(-0.2%)부터 꺾이기 시작했는데, 지난해 4분기까지 11개 분기 내리 마이너스를 이어가며 지난 199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장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간으로 놓고 봐도 지난해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년보다 2.2% 빠지면서 2003년 ‘카드대란’(-3.2%) 이후 2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뒷걸음쳤다. 특히,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 직격탄을 맞은 영세 자영업자가 늘면서 직원 없이 혼자 일하는 ‘나 홀로 사장’ 수는 2018년 이후 6년 만에 감소했다. 내수 한파 영향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월 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422만5000명으로 1년 새 4만4000명(1%)이나 감소했다. 일반적으로 호황일 때는 1인 자영업자 수는 줄더라도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오히려 증가한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의 증가 폭도 꺾였다. 지난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43만2000명으로 전년 대비 1만2000명(0.83%)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22년(5만8000명), 2023년(5만4000명)보다 줄어들었다. 1인 자영업자가 내수 부진으로 사업을 정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더구나 임금근로자 상황도 악화했다. 지난해 상용근로자는 1635만3000명으로 전년 대비 18만3000명(1.11%) 증가에 머물러. 2002년 16만2000명 이후 최소 증가다.

문제는 위기를 탈출할 기회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으로 인플레이션(Inflation) 재발 우려가 커지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는 기준금리 인하를 멈췄다. 한국은행(연 3.0%))도 미국(연 4.25~4.50%)과의 금리 격차가 상단을 기준 1.50%포인트로 더 커져 외국 자본이 빠져나갈까 봐 금리 인하를 주저하고 있다. 금리를 내리자니 수입물가는 오르고 환율 마지노선 1500원이 위태로워질까 걱정이고, 금리를 유지하자니 내수 침체를 외면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런 와중에 환율 방어 비용은 날로 커지고 있다. 경제를 지탱하던 수출이 새해 들어 꺾여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2%까지 낮춘 글로벌 투자은행(IB)도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 2일 발표한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급격한 수출 둔화 등을 이유로 성장률 전망치를 6개월 만에 0.4%포인트 낮춘 1.8%로 제시했다. 한국은행도 지난 1월 20일 블로그에서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두 달 전인 작년 11월 전망한 1.9%에서 1.6∼1.7%로 내려 잡았다.

지난 2월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은 ‘2024년 한국 연례 협의 보고서’를 발표하고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1월 7일 전망과 같은 2%로 내다봤다. 지난 2월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인 피치(Fitch)도 이날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고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7%로 낮춰 잡았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가운데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는 지난 1월 23일 발표한 ‘최소한의 성장(Growing at Bare Minimum)’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로 제시했다. 모건스탠리가 전망한 성장률 1.5%는 앞서 국제금융센터가 글로벌 IB 8곳의 성장 전망치를 취합한 1.7% 전망을 밑돈다. 한편 씨티(Citi Group)는 1.5%에서 1.4%로, JP모건(JPMorgan)은 1.3%에서 1.2%로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모건스탠리보다 더 낮게 하향 조정한 바 있다.

격화하는 관세전쟁으로 인해 올해 수출과 무역수지가 악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감소한 외환보유액을 채워 넣는 일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 된다. 경제가 이 모양이니 민생이 제대로 풀릴 리는 만무(萬無)하다. 일자리는 줄고 청년들은 구직 활동을 포기했다. 지난 2월 2일 통계청 고용동향 마이크로데이터(MD)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비자발적 퇴직자는 137만2954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10만명이나 늘어난 수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직장 폐업·정리해고·사업 부진 등으로 원치 않게 일자리를 떠난 것으로 나타난 셈이다. 이른바 ‘비자발적 실업자’는 ‘코로나 19 엔데믹(풍토병화)’ 고용 훈풍 속에 감소하다가 내수 위축에 따른 고용 부진 등으로 인해 4년 만에 다시 증가했다. 일주일에 근무시간이 18시간을 밑도는 초단시간 근무자도 처음으로 250만명을 넘어섰다. 소비 위축으로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으로 ‘트럼플레이션(고관세+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커진다.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의 급박(急迫)한 위기상황이다. 이렇게 대외 경제 변수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선 재정의 역할에 기댈 수밖에 없음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이렇듯 국가 경제가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나락(奈落)에서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위기(危機)를 맞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비상계엄과 탄핵 반대 궤변을 쏟아내며 위기를 더욱 키우고 조장하고 있다. 저성장과 고물가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재정·금융 등 모든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해결책을 모색해야만 한다. 팽팽한 긴장감과 냉철한 가슴으로 국가적 위기상황을 직시하고 여(與)·야(野)는 망국적·소모적 당리당략에서 서둘러 냉큼 벗어나야만 한다. 여(與)·야(野) 정치권은 추가경정예산 조기 편성에 동의한다면서도 상대편 책임만 따지고, 갖가지 조건을 내걸어 시간만 끌고 있다. 무능한 정치에 모든 게 막혀 내수 활성화를 위한 추경 편성이나 국내외 기업 투자를 끌어들여 환율을 안정시킬 규제 완화의 ‘골든타임(Golden-time)’만 속절없이 흘러갈 뿐이다. 내수 침체 장기화는 중·장기 성장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고, 경제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 약화는 원화값 추가 하락을 부를 수 있다. 물가를 핑계로 내수진작책을 미루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의미다. 주저하거나 망설임 없이 즉각 여(與)·야(野)·정(政) 국정협의회부터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추가경정예산 조기 편성을 국정협의회 핵심 안건으로 상정하여 지체함 없이 서둘러 실행에 옮겨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