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문 연 트럼프발 관세 전쟁, 밀려들 보호무역 충격 총력 대비해야
모두가 우려했던 ‘악몽’이 실제 현실로 들이닥치고 있다. 설마설마했는데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진짜 ‘관세맨(Tariff Man)’의 본색을 드러내며 예고해온 글로벌 관세 전쟁의 방아쇠를 당기며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1일(현지 시각) 미국 동부 시간 기준 4일 0시부터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중국에 추가로 1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예고됐던 미국발 ‘관세 전쟁’이 시작됐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즉각 미국산 제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천명했고, 중국은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나섰다.
미국은 불법 이민자 유입과 마약 유통 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큰 흑자를 보는 나라를 겨냥해 무역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대(對)미국 무역 흑자 1위인 중국 등에 이어 8위인 한국과 6위인 대만이 다음 표적(Target)이 될 가능성이 커 전선이 한국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키울 뿐만 아니라 ‘관세 전쟁’에 따른 글로벌 교역 위축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더는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만반의 선제 대비가 더욱 절실해졌다. 미국 주요 언론들도 명분 없는 경제적 공격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 │ WSJ)’은 사설에서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전쟁”이라고 평가했고,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 NYT)’는 이번 관세 조치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에 관세는 수단이 아닌 목적”이라고 비판했으며, ‘NBC(National Broadcasting Company) 뉴스’도 “새 관세 부과로 자동차, 전자제품, 목재 등의 가격이 상승할 수 있어 경제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라고 전했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전략적 경쟁국인 중국은 물론이고 캐나다와 멕시코 같은 이웃 동맹국에 대해서도 관세 폭탄을 투하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충격이 크다. 미국은 유럽연합(EU)에 대해서도 관세 부과를 예고하는 등 전선이 확대될 전망이다. 안보·경제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이자 우방인 한국도 사정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미 미국은 한국의 가전제품, 반도체 등을 콕 찍어 관세를 압박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덕에 대부분 수출품이 무관세 혜택을 누리고 있다. 관세 폭탄이 현실화하면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대(對)미국 수출은 당연히 타격받을 수밖에 없다. 직접적인 대(對)미국 수출은 물론 중간재 중심의 대(對)중국 수출 감소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무역 장벽을 우회하기 위해 전 세계에 생산 기지를 구축한 만큼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 당장 멕시코에 지은 자동차·가전·철강 생산 공장은 25% 관세 폭탄을 얻어맞게 됐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최근 몇 년간 대미국 수출을 공격적으로 늘려왔다. 그 결과 지난해 한국의 대(對)미국 수출은 1,278억 달러로 2023년 대비 10.5%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으로는 우리나라는 보편 관세의 명분으로 제시한 ‘저가 제품 공세로 시장을 교란’하는 나라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지난해 10월 발간한 ‘미국 통상정책의 경제적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같은 ‘글로벌 관세 전쟁’이 벌어져 도널드 트럼프가 공언한 대로 10~20%의 보편 관세가 현실화할 때 한국의 미국 수출액이 최대 304억 달러(약 44조원) 감소하고,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은 최대 448억 달러(약 65조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참고로 지난해 한국의 총수출액은 6322억 달러 규모였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대미 수출이 감소하고 제3국으로의 수출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선 한국의 실질 GDP가 최대 0.67% 감소할 것이라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예측했다.
지난 도널드 트럼프 1기 정부는 중국·멕시코 등 최대 무역 흑자국을 대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한 다음, 개별 협상을 통해 공존 방안을 모색했다. 미국, 멕시코, 캐나다 3국이 1992년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보완해 새로 맺은 자유무역협정. 무관세 혜택을 받기 위해 3국 내에서 생산한 부품과 재료를 더 많이 쓰도록 원산지 규정을 NAFTA 대비 강화해 2018년 타결됐으며, 2020년 7월부터 발효된 것은 그 본보기라 할 수 있다. 한국 등 여타 흑자국에 대해선 미국에 불리한 무역협정 내용을 수정해가는 방식의 협상이 진행됐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도 보편 관세를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국가 간 개별 협상을 통해 이익을 최대한 챙길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과거에도 통상전쟁은 교역 감소, 주요국 생산 급감 등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음을 이미 학습한 바 있다. 역사적으로 무역전쟁의 결과는 승자 없는 공멸이었음을 방증(傍證)한다.
무엇보다 사실 관세 장벽을 높이는 보호무역주의는 낡은 구시대 유물로 취급되어 온 게 사실이다. 특히 미국이 1930년 관세 부과 수입품의 관세율을 공화당 하원 스무트(Smoot) 의원, 상원 홀리(Hawley) 의원이 주도해 평균 60%까지 올린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통해 주요 교역국과 관세 전쟁을 벌인 것은 1930년대 대공황을 악화시킨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당시 미국 제31대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행정부는 미국의 풍요를 더 풍요롭게 지켜줄 것 같았다. 하지만 세계 교역이 3분의 1로 줄었고 세계 경제 규모가 15% 쪼그라들었다. 1960년대 미국과 유럽의 닭고기 관세 전쟁, 1980년대 미일 무역 갈등, 트럼프 1기의 미국·중국 무역전쟁 모두 물가 상승, 공급망 훼손, 일자리 감소 등 세계 경제에 심각한 상처만 남겼다. 최대 피해자는 전 세계 소비자였다. 사실 큰 틀에서 지난 거의 100년 동안 관세는 꾸준히 하락추세를 이어 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흐름을 거스르는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그대로 실행된다면 정작 평범한 미국인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트럼프가 공언한 ‘보편 관세’ 20%(중국에는 60%)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소득 분포 중간에 있는 가구(전체 가구를 소득 크기에 따라 5등분으로 나눌 때 3분위)는 해마다 세후 소득이 4.1%(2,600달러, 약 374만 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이 낮은 계층일수록 소득 대비 감소 폭이 컸다. 보편 관세를 10%로 낮춰 잡더라도 중간 소득 가구(3분위)의 세후 소득이 2.7%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제적 수단을 동원한 도널드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은 전 세계에 적잖은 충격과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 불을 보듯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물가를 자극하고 인플레이션과 소비자 부담을 키울 수도 있다. 기존 국제 통상 질서가 무너지고 다극 체제로 재편되면 최대 피해자는 한국과 같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 주도 수출 지원 정책으로 급성장한 한국의 성공 공식도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될 소지가 크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진단처럼 “세계 경제질서가 바뀐다는 것은 마치 씨름에서 수영으로 경기 종목과 룰이 바뀌는 것과 같다”라며 “지금까지 씨름을 잘해왔던 선수라도 (씨름 방식으로) 수영(에서) 경쟁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국제질서의 변화를 씨름에서 수영으로 경기 종목이 바뀌는 것에 비유하며 기존 수출주도형 모델로는 한계가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따라서 한국 경제도 환골탈태할 준비를 해야 할 때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특히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당장 이번 관세 조치로 멕시코에 북미 생산거점을 두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의 직접적 피해가 예상된다. 향후 관세가 한국산 제품으로 확대되면 현재 무관세가 적용되는 반도체, 자동차 등 주요 수출품이 미국 시장에서 직격탄을 맞게 된다. 무엇보다 수출 중심 한국 경제에서 또 다른 변수는 멕시코 ‘니어쇼어링(Nearshoring)’의 위기다. ‘니어쇼어링’은 기업이 최종 소비 시장과 가까운 곳으로 생산거점을 옮기는 전략이다. 특히 멕시코는 트럼프 1기였던 2017~2018년 대중 무역 제재가 본격화면서 2020년 이후 니어쇼어링 최대 수혜국으로 떠올랐다. 북미, 중남미 중앙에 자리 잡은 지리적 장점과 더불어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에 따라 멕시코 제품은 대(對)미국 수출 때 관세 혜택까지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삼성, LG, 현대차그룹, 포스코, CJ 등 대기업이 기존 멕시코 공장을 증설하거나 신규 공장을 추가하면서 투자를 확대했다. 문제는 무(無)관세를 전제로 멕시코 투자를 확대한 기업들이 우선 비상이 걸렸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작년 멕시코 기아 공장이 생산한 25만2,000대 중 60%가 넘는 약 15만 5,000대가 미국으로 수출됐다. 기아는 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에서 연간 생산능력 40만 대 규모 공장을 가동하고 있고, 부품 기업도 따라 진출했다. 이렇듯 특히 대(對)미국 수출 거점으로 멕시코 투자를 확대한 자동차 업계가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게다가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북미·중남미 생산거점을 멕시코에 두고 미국 수출 기지로 삼고 있다.
한편 관세로 중국의 대(對)미국 수출이 둔화하면 한국의 대(對)중국 중간재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관세 충격이 아직 닥치지 않았는데도 이미 지난달 한국 수출은 1년 전보다 10.3% 줄어 1년 4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한국의 경제 체력이 취약한 상태에서 맞닥뜨리는 무역전쟁의 충격은 한국 경제에 치명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정쟁에만 매몰돼 방관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국을 집어삼킬 수도 있는 거대한 태풍이 불어오고 있다. 관세를 한 번에 높이지 않고 1~4차에 나눠 부과하고 중간 협상을 통해 계속 조정한 트럼프 1기 사례를 감안해 전략을 짜야할 것이다, 국내 산업계가 더 적극적으로 방어 전략을 짜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1월 7일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1기 사례를 감안하면 2기 행정부는 관세 부과 전후 협상 여지를 남기면서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납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다른 국가에 비해 돋보이는 수준의 대(對)미국 투자 실적을 레버리지(Leverage)로 삼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태도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라고 했다.
문제는 안타깝게도 이 시점에서 한국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빠져들게 됐다. 현실은 통상외교가 절실하지만, 정치 불확실성에 따른 리더십 부재가 선제 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 다만 미국이 한국의 도움을 바라는 조선 분야 등은 통상 협력의 강력한 레버리지가 될 수 있음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이 막대한 혜택을 누려왔던 자유무역 체제가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다. 일본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조만간 미국으로 날아가 도널드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지만, 한국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도널드 트럼프와 통화를 하겠다는 얘기만 한 달째 반복하고 있다. 최 권한대행은 조속히 대(對)미국 무역협상외교사절단을 파견해 향후 밀려들 보호무역 충격에 선제 대응해야만 한다. 정부와 국회 및 여야 대표가 중지를 모으는 여(與)·야(野)·정(政) 협의회부터 정상 가동돼야만 한다. 오는 2월 국회에서 '반도체 특별법'과 같은 국가 먹거리 지원 법안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첨단산업 에너지 3법('전력망 확충 특별법', '고준위 방폐장법', '해상풍력 특별법') 입법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입법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도 경제 체질을 강화하고 외풍을 막아낼 필수적 선제 대응책이다. 지금은 치밀한 통상·산업 전략과 대대적인 내수 진작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정부와 여야가 ‘트럼프 리스크’를 최소화할 지혜를 모으는 일이 무엇보다 화급한 급선무임을 각별 유념하고 총력 대응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