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장기화와 부동산 시장 침체에 다시 불어닥치는 ‘영끌’ 후폭풍
고금리 장기화와 부동산 시장 침체 여파로 4~5년 전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족(族)’의 고통이 가시화되고 있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을 때 담보로 잡아둔 물건을 경매로 넘기는 이른바 임의경매 신청 건수가 지난해 13만9874건으로 2013년 이후 11년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고 한다. 저금리 시기였던 2019~2021년 성행했던 ‘영끌’ 투자 후폭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대출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영끌족’이 아파트를 경매로 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가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했다.
지난 1월 17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임의경매 개시 신청 부동산(건물·토지·집합건물)은 13만9874건이었다. 한 해 전인 2023년 임의경매 건수인 10만5614건보다 무려 32.4%인 3만4260건이나 늘어났다. 2013년 14만8701건 이후 11년 만에 최대 규모이기도 하다. 임의경매는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을 때 채권자가 담보로 잡아둔 물건을 경매로 넘기는 것이다. 전국 시·군·구별로 살펴보면 부산 수영구에서 지난해 임의경매 건수가 전년 대비 227.7% 늘어나 부산의 부동산 경기 침체 상황을 여실히 보여줬다. 부산 중구에서도 임의경매 건수가 전년보다 203.7% 증가했다. 서울에서 전년 대비 임의경매 건수가 급증한 지역은 구로구, 중랑구, 관악구 등으로 당시 2030 세대의 ‘영끌’투자가 몰렸던 곳이다. 지금은 시세 하락에 거래절벽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영끌’ 광풍(狂風)은 지난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가 낳은 괴이(怪異)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집값이 득달같이 오르자 “지금 안 사면 영영 못 산다”라는 공포와 조급증이 퍼지면서 청년세대들이 빚을 끌어다 집을 매수했다. 하지만 계속된 고금리로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데다 거래 위축으로 퇴로가 막히면서 ‘영끌족’들의 집이 경매에 내몰리고 있다. 2019~2021년 주택 매수자들 상당수가 5년간 고정금리 적용 후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혼합형 대출 상품’으로 대출을 받았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2020년 ‘5년 고정 후 + 변동금리’라는 금리혼합형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이자 부담이 더 커졌다. 변동금리가 적용되면 대출 금리는 5년 전과 비교해 2%포인트 이상 높아지기 때문이다. 올해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50조원에 달해 이자 부담 증가로 인한 ‘영끌족’의 한숨과 비명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영끌’은 5년 전에만 벌어진 게 아니다. 2021년 집값이 꺾이면서 잠잠해지는가 싶었지만 3년 만인 지난해에도 꿈틀거렸다. 정부가 특례보금자리론, 연 1%대 신생아 대출 등 저금리 대출을 풀어주자 ‘영끌’의 망령(妄靈)이 되살아났다. 이는 정부의 양대 주택 정책 대출 중 디딤돌은 확대되고 보금자리론은 축소되는 정반대 운영 방향 때문이다. 이렇듯 정부가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도 저금리 정책대출을 확대 시행한 엇박자가 ‘영끌’을 부추긴 결과란 지탄(指彈)과 비판(批判)이 뒤따르고 비등(沸騰)하는 대목이다. 물론 ‘영끌족’들의 개인 책임이 크지만 ‘영끌’ 불씨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 탓도 크다는데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수도권 아파트에 대한 디딤돌 대출 규제를 강화한 지 한 달 만에 대출 신청 규모가 반 토막이 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15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지난해 디딤돌·버팀목·신생아 특례대출 신청·실행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의 디딤돌대출 신청 금액은 6353억원으로, 이는 전월 대비 45.69% 감소한 수준이다. 신청 건수도 전월보다 41.89% 줄어든 2541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디딤돌대출 월별 평균 신청 금액과 평균 신청 건수가 각각 9246억원, 3697건이었던 것을 감안할 때 눈에 띄게 줄어든 수치다. 무엇보다 고금리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여느 때보다 높아지는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면 개인뿐 아니라 경제 전체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작금의 ‘영끌’ 후폭풍은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 우리 경제에 잠재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철칙을 여실히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거침없이 올랐던 수도권 아파트값이 한 달 전부터 속속 보합·하락세로 전환하는 등 변곡점을 맞는 추세다. 서울 아파트 매맷값도 최근 41주 만에 오름세가 멈춘 뒤 3주 연속 보합세다. 부동산 업계에선 수출 및 내수 경기 부진 우려, 신동아건설 법정관리 등 건설경기 침체와 매수심리 위축, 대통령 탄핵정국 여파 등이 겹치면서 금년 상반기에는 주택시장의 하강 압력이 높아질 것이라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시점에서 대한민국 주거용 부동산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코 ‘양극화’라 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 구조를 반영하듯 기존의 단순 지역별 양극화를 넘어 이제는 이중 양극화, 삼중 양극화와 같은 이른바 ‘다중 양극화’로 확장돼가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대출 규제 완화 여부가 주거용 부동산 시장의 향방을 가를 최고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 크다. 일반적으로 집값이 오르기 위해서는 거래량의 증가가 수반돼야만 한다. 지난 1~2년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와 거래량을 들었다 놨다 했던 것도 정부의 대출지원책인 대출 규제 완화(특례보금자리론, 신생아 특례대출) 또는 대출규제책인 대출 규제 강화(스트레스 DSR 제도)와 관련 깊다.
지난 1월 20일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한 해(1~12월) 서울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3267건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23년 1956건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무려 67%나 증가한 수치다. 2022년 798건과 비교하면 무려 4배가 넘게 늘었다. 서울 아파트 경매 건수 대비 낙찰 비율인 낙찰률도 떨어졌다. 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을 뜻하는 낙찰가율도 3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지난해 10월 97%, 11월 94.9%, 12월 91.8%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부동산 업계는 이처럼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에는 집 장만을 준비 중인 무주택 수요자들도 긴장의 끈을 놓치 말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하고, 기존과는 완전히 달라지는 정책과 제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청약, 대출, 주택 공급 등 분야에서 무주택 가구에 유리한 방향으로 새해부터 확 바뀌는 것들을 체크 해 보는 것도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난해 디딤돌·버팀목 대출의 실행 총 규모는 53조807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신생아 특례 디딤돌·버팀목 대출의 실행 규모는 9조4221억원이다. 일각에서는 디딤돌대출의 한도가 줄어들면서 무주택자가 수도권 지역에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디딤돌대출의 방 공제 면제 및 후취담보 조건 미등기 아파트 담보대출 신규 취급 제한의 효과로 디딤돌대출 규모가 올해 3조원, 내년 5조원 줄어들 것이라 전망을 했다. 디딤돌대출은 무주택 서민을 위해 저리로 제공하는 국토교통부의 정책성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상품이다. 이 상품은 연 소득 6000만원(신혼부부 8500만원) 이하 무주택자가 5억원(신혼부부 6억원) 이하의 주택을 매수할 때 최대 4억 원까지 연 2~3%대 금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다.
무엇보다도 올해 세금과 대출 등 부동산 분야에 많은 변화가 있어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먼저, 지난 1월 13일부터 은행 대출 중도상환수수료가 지금의 최대 절반 수준으로 내린다. 현재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중도상환수수료는 최대 1.4%로, 원금 5000만원을 미리 갚으려면 최대 70만원의 수수료로 내야 한다. 앞으로는 주택담보대출 중도상환수수료가 0.6~0.7%, 신용대출은 0.4% 수준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다만, 1월 13일부터 취급하는 대출상품에 적용된다. 신생아 특례대출 조건도 완화한다. 9억원 이하 주택을 살 때 연 1.6에서 3.3%의 저금리로 최대 5억원 한도까지 대출해준다. 이달부터 연 소득 7000만원 이하 무주택 세대주들만 받을 수 있었던 주택청약종합저축 소득공제 혜택을 배우자도 받을 수 있도록 완화한다. 연간 납입액의 40%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데, 최대 공제 인정 금액은 300만원이다. 청년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의 경우에는 이자소득 비과세 대상도 세대주와 배우자까지 확대한다. 총 급여액 3600만원 또는 종합소득금액 2600만원 이하인 무주택 세대주를 대상으로 하는데, 이자소득 비과세 한도는 500만원이다. 청년들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해 청약 분양가의 최대 80%를 지원하는 청년주택드림대출도 새롭게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