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한국 불확실성 외국인 투자에 부정적” 경고 새겨야

2025-01-12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 Standard and Poors), 무디스(Moody's), 피치((Fitch) 등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가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길어지면 국가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 3개 신용평가회사 고위 관계자들은 지난 1월 9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화상 면담에서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 외국인 투자 또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언중유골(言中有骨)’의 뼈있는 경고를 남겼다.

이는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 이들 3대 신용평가사들이 내린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 12월 12일 최 대행이 부총리 신분으로 이들과 면담했을 땐 “최근의 정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여전히 안정적이다”라거나 “한국의 제도적 강인함과 회복력을 체감했다”라는 등 긍정적 평가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둘러싼 갈등 등 한국의 정치 혼란과 국정 불안정이 계속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의구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발언이어서 걱정이 앞설 뿐만 아니라 향후 내려질 평가에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최상목 대행은 11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 마리 디론(Marie Diron)’ 무디스 국가신용등급 글로벌 총괄, ‘제임스 롱스돈(James Longsdon)’ 피치 국가신용등급 글로벌 총괄, ‘킴엥 탄(Kim Eng Tan) ’ S&P 국가신용등급 아시아·태평양 총괄과 연달아 화상 면담을 갖고 “한국의 헌법과 법률 시스템이 정상 작동함에 따라 정치적 불확실성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라며“경제 분야와 비경제 분야를 아울러 한국의 모든 국가 시스템은 관계부처 협의 하에 차질 없이 운영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금융·외환시장에 대해 “비상계엄 이전의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있다”라며 “앞으로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등 재정·금융당국이 긴밀하게 공조해 시장 안정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신용등급을 내리지 말아 달라는 애타는 절규이자 간절한 호소인 셈이다. 현재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S&P는 AA, 무디스는 Aa2로 세 번째 높은 등급이고, 피치는 AA-로 네 번째 높은 수준으로 모두 ‘안정적(Stable)’으로 평가하고 있다.

국가신용등급(國家信用等級 │ Sovereign credit ratings)은 한 나라가 채무를 이행할 능력이나 의사가 얼마나 있는지를 등급으로 표시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 신용 등급은 국제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차입 금리나 투자 여건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한 국가의 경제적 안정성과 신뢰도를 평가하는 지표인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면 나라 경제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당장 국채 발행 금리가 오르고 정부와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한다. 해외 자본 이탈로 환율이 급등하고 물가가 오르는 등 경제 전반의 연쇄 충격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한번 내려간 신용등급은 다시 올리기는 매우 어렵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S&P 기준으로 한국 국가신용등급은 삽시간에 10계단 추락했는데, 이후 비교적 빠른 속도로 외환위기를 극복했지만, 신용등급은 18년이 지난 2015년에야 비로소 원래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었음은 뼈아픈 과거사가 아닐 수 없다. 신인도를 되찾는 게 그만큼 어렵다. 비즈니스 세계도 다르지 않다. 아니, 더 냉혹하다는 게 시장의 논리다. 수출 협상과 외화벌이, 정말 고되고 힘들다는 것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3대 신용평가사 인사들은 이번 면담에서 현 상황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신속하고 투명한 소통을 높게 평가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나, 이것이 장기화될 경우 외국인 투자 또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8년 전인 2017년만 해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프로세스가 비교적 질서있게 진행된 탓에 경제와 정치가 분리되면서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으로 유지됐지만, 현 상황은 정치 혼란 심화로 정치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으로 풀이된다. 정치적 혼란은 국가신용등급 강등의 ‘트리거(Trigger │ 방아쇠)’가 되는 경향이 있다. 정책 리더십 공백 등으로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증폭되기 때문이다. 무디스의 경우 지난해 12월 의회 분열에 따른 정치적 혼란을 이유로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세 번째로 높은 Aa2에서 Aa3으로 한 계단 강등했다. 국내 정치 리스크 해소가 대외신인도 유지의 관건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3대 신용평가사의 평가처럼 한국 경제는 아직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대외 신인도’를 훼손할 영향은 제한적인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국가부도 위험을 반영하는 CDS(신용부도스와프 │ Credit Default Swap) 프리미엄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크게 뛰지 않은 것도 그 근거로 볼 수 있다. 5년물 CDS 프리미엄은 비상계엄 직전 34bp(1bp=0.01%포인트)대에서 지난해 12월 31일 37bp대로 3bp의 소폭 상승에 그쳤다. 지난해 4월 연고점(40.28bp)도 넘어서지 않았다. 대외 신인도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인 CDS 프리미엄이 높을수록 채권을 발행한 국가의 신용위험이 크다는 것을 뜻하는데, 8년 전 국정농단·탄핵 정국 혼란 때보다도 변동성이 크지 않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1월 8일 발표한 ‘1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생산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경기 개선이 지연되는 가운데,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경제 심리 위축으로 경기 하방 위험이 증대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KDI는 정국 불안 시작 시점으로 대조 분석한 CDS 프리미엄 변동성에 따르면 그 폭은 2016년 10~12월엔 14bp였지만, 지난해 12월엔 4bp에 그쳤다. 하지만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국내 정치 상황으로 경제 심리도 악화했다”라며 “최근 정국 불안에도 환율 및 주가 등 금융시장 지표의 동요는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으나 가계와 기업의 심리지수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라고 분석한 것엔 주목해야 한다. 지난 1월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업 심리지수(CBSI) 전망치는 전 산업이 82.4, 제조업이 85.2, 비제조업이 80.3으로 전월 대비 각 7.3포인트, 3.7포인트, 10포인트씩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88.4로 집계되어 같은 해 11월 대비 12.3포인트나 떨어졌다.

국가신용등급 하락이라는 파국을 피하려면 불안한 정국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지어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수밖에 다른 대안은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경제 시스템 전반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실증으로 보여줘야만 한다. 투자하기 불안한 나라라는 인식이 한번 박히면 쉽게 되돌릴 수 없다는 철칙을 명심해야만 한다. 신용평가사들은 이날 첫 실무협의를 연 여(與)·야(野)·정(政) ‘국정협의회’의 구체적인 역할과 논의 대상 등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기획재정부는 밝혔다. 신용평가사들이 최근의 정치적 혼란이 정책 결정과 실행 능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는지를 눈여겨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신용평가사들은 “주요 법안이나 정책 등 경제 현안이 국정협의회를 통해 원활히 추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고 기획재정부는 전했다. 이렇듯 전 세계의 이목이 한국 정부와 정치권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전 세계가 두 눈 부릅뜨고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음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