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고물가에 21년 만의 최악 소비, 내수 진작에 국가역량 총 집중을

2025-01-14     우리방송뉴스
▲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수출·환율·물가 등 각종 경제 지표에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 경제의 한 축인 내수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 지난 1월 1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작년 1∼11월 소매판매액 지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2.1% 줄었다. ‘카드 대란’으로 소비 절벽이 나타난 2003년(-3.1%) 이후 21년 만에 최대 폭의 감소다. 또 2023년 1.6% 줄어든 데 이은 것으로 소비 부진이 2년 동안 장기화 추세에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소비 절벽은 내구재(-2.8%)·비내구재(-1.3%)·준내구재(-3.7%) 등 상품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상품군에서 예외 없이 전방위적으로 감소했다.

이런 소비 부진은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없던 일로 고물가·고금리 장기화, 실질소득 감소, 긴축 재정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극심한 내수 한파에 수출 증가세 둔화가 글로벌 투자은행(IB)이 내놓는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과 맞물리면서 저성장 고착화로 이어지지나 않을는지 걱정이 크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올 성장률 전망치를 한국은행(작년 11월 28일 발표)의 1.9%보다 0.1%포인트 낮은 1.8%로 제시한 바 있다. 성장률 1%대는 우리의 잠재성장률 2%를 밑도는 수치다. 성장률 통계를 집계한 1954년 이후 성장률이 2%를 밑돈 것은 1956년(0.6%), 1980년(-1.6%),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 코로나 19가 한창인 2020년(-0.7%), 지난해(1.4%) 등 여섯 번뿐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물론 해외 IB도 한국 경제의 전례 없는 저성장 장기화 가능성을 경고하는 것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연이은 탄핵정국이 이어지면서 한국 경제는 한편으로는 원화값 하락과 고물가,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심리 위축과 내수 침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얼어붙은 소비심리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지난해 10월 이후 연이은 기준금리 인하로 내수 회복의 불씨를 살려보려 했지만, 불법 비상계엄 쇼크에 따른 불확실성이 찬물을 끼얹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24일 발표한 ‘2024년 12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경제 상황에 대한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CCSI │ Composite Consumer Sentiment Index)는 12월 중 88.4로 전월 100.7 대비 12.3포인트 하락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엔 3개월에 걸쳐 9.4포인트 하락했다. 그만큼 이번 사태에 따른 심리적 충격파가 크다는 방증(傍證)이 아닐 수 없다. 3개월 연속 상승률이 1%대로 모처럼 안정세를 찾아가던 물가 역시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하는 식품을 중심으로 들썩이면서 소비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정치적 리스크가 환율을 흔들고, 떨어진 원화 가치는 다시 물가를 자극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라는 대재앙이 현실로 닥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관세 폭탄’을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2기 행정부 출범이 닷새 앞으로 임박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2024년 수출은 6838억 달러로 전년 대비 8.2% 늘었다. 2022년 6836억 달러를 2년 만에 경신하면서 역대 최대실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지난해 역대 최고치를 달성한 수출은 막연한 낙관론을 갖기엔 고환율·고관세 등 대외 변수가 많다. 소비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최근 제시한 ‘경제정책 방향’에서 올해 민간 소비는 1.8%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지난해 하반기 전망치 2.3%보다 0.5%포인트 낮아졌다. 재정의 67%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는 재탕 수준의 내수 진작책으로는 약발이 먹힐 리는 만무하다. 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은 계엄 쇼크 이후 경제 여건이 반영되지 않아 재정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설 연휴 임시공휴일 확대지정은 소비 증가라는 순기능 외에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매출·생산 감소 등 부작용도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올해도 정국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주식 등 자산가격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소비 위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차츰 안정되고 있던 물가가 최근의 고환율 여파로 다시 상승세를 보일 수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올해 수출 전망도 어두운 상황에서 내수 부진까지 심화하면 자영업자·소상공인 등을 비롯해 국민 고통은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 건설 경기도 싸늘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건설투자는 마이너스(-)가 될 것이 유력하다. 올해 초 시공능력 58위 신동아건설이 만기가 돌아온 어음을 막아내지 못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빚을 갚지 못해 법원에 회생 또는 파산을 신청한 기업도 지난해 1~11월 2729곳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고용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기는 마찬가지다. 지난달 실업급여 수급자는 53만1000명으로 12월 기준으로 2020년 코로나 19 때 59만9851명 이후 가장 많았다. 특히 정부가 예산 67% 상반기 조기 집행, 설 연휴 임시공휴일 지정 등 나름의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가라앉고 있는 내수를 떠받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야와 정부가 참여하고 있는 국정협의회에서 조기 추가경정예산 등 좀 더 적극적인 내수 진작 방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추경 합의는 빠를수록 좋다”라며 “추경을 늦게 할수록 내년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서두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여야와 정부는 당리당략을 떠나 추경 편성의 최적 시기와 규모, 중점 사업 등에 관해 하루빨리 의견을 모아 실행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추경 편성·금리 인하 등 가용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야만 한다. 여야는 머리를 맞대고 현금 살포·지역 화폐 발행 등 포퓰리즘식 항목부터 걷어내야 한다. 정부가 내수 부양을 위해 내놓은 신용카드 추가소득공제, 소상공인 점포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인상 등 27개 항목은 모두 입법이 뒷받침해야만 한다. '반도체 특별법', '국가기간전력망 확충법' 등 법안처리도 시급하다. 조만간 출범하는 여·야·정이 함께 참여하는 ‘국정협의회’는 탄핵과 수사는 사법 당국에 맡기고 경제살리기에 초당적으로 협력해야만 한다. 환율 방어와 내수 살리기는 둘 다 중요한 가치임에는 분명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반대 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와도 같은 형국이다. 욕심만 내다 둘 다 놓치는 치둔(癡鈍)의 우(愚)를 경계해야만 한다. 이보다 더 시급한 현안이 무엇인지 경중과 완급 그리고 선후를 따지고 국내 금리 정책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쪽을 택해야 한다. 상황이 복잡할수록 상황에 압도되지 않는 정책 결정자의 흔들림 없는 의연한 소신과 의지가 중요하다.

원화 가치 하락은 곧바로 국내 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요네즈를 비롯한 샐러드드레싱 가격은 이번 주 평균 20% 이상 오를 예정이고, 제과업체들은 초콜릿 등 수입 원재료 원가 상승을 반영해 10% 가까이 값을 인상했다. 물가 당국의 감시가 약해진 틈을 타 기업들이 가격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고환율과 국제유가 상승이 겹쳐 휘발유값도 13주 연속 상승세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가 진행되던 2017년 초 식품류 가격이 평년 상승 폭의 갑절인 7.5% 올랐던 것과 같은 현상이 재연될 우려가 적지 않다. 고물가는 가뜩이나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더 위축시킬 것이다. 금융시장에서도 현재 환율 흐름은 우리만의 문제라기보다 세계적인 강달러 여파가 크다. 시장에 이미 금리 인하가 예견된 만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더라도 환율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시각이 많다. 오히려 한국은행이 경기 침체를 이대로 방치(放置)하거나 방기(放棄)하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이 약해져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때나 봤던 1500원대 환율이 현실화하면 불확실성 심화와 리더십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 경제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 초대형 복합위기)’이 몰아닥치며 나락의 한가운데로 빠져들게 된다. 서민경제는 더욱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은 한층 더 커진다. 정부와 정치권은 추가경정예산 조기 편성 실효적 대책을 하루빨리 수립해 국가역량을 총 집중해 내수 진작에 나서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