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부담에 기준금리 동결, 최악 경기·고용 한파 탈출에 총력전 화급

2025-01-17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1월 16일 새해 첫 통화정책 방향 회의를 열고 정치적 불확실성과 환율 변동성을 이유로 기준금리를 종전과 같은 3.00%로 동결키로 의결해 2회 연속 금리 인하 후 숨 고르기에 나섰다. 물가상승률 안정세와 가계부채 둔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정치적 리스크 확대로 성장의 하방 위험이 커지고 환율 변동성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향후 국내 정치 상황과 주요국 경제정책의 변화에 따라 경제전망 및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대내외 여건 변화를 좀 더 점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 경제는 지난해 12월 중 수출 증가율이 다소 높아졌으나 소비 회복세가 약화하고 건설투자 부진이 이어졌고, 고용은 취업자 수 증가 규모가 줄어드는 등 둔화 흐름 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침체한 경기를 살리려면 당연히 금리 인하가 필요하지만, 기준금리를 종전과 같은 3.00%로 동결한 것은 경기 침체보다 환율 불안을 더 우려한 조치로 보인다. 비상계엄·탄핵정국에 대통령 체포까지 겹쳐 불확실성 심화로 경기 위축 우려가 더욱 커진 마당에서도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카드를 선 듯 못 꺼내 든 것은 자칫 환율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경기 상황만 보면 금리를 내리는 게 당연하다”라면서도 “정치적 변화가 환율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우려를 했다. 고공행진 중인 원·달러 환율이 우리나라 경제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에 견줘도, 미국 기준금리와의 격차로 봐도 훨씬 높은 수준이라는 게 이 총재의 진단이다. 이 총재의 우려대로 우리 경기가 침체에 더해 환율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까지 덮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대재앙(大災殃)이 현실로 들이닥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는 고환율 속에서 기준금리를 내리면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더 벌어져 원화 약세를 부추길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 급격한 환율 상승은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치고 수입 물가를 자극하여, 연쇄적으로 소비자 물가까지 밀어 올린다. 한은은 환율 1470원대 고착 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예상치(1.9%)를 넘겨 2.05%에 달할 것으로 봤다. 여기에 유가 상승세도 심상치 않다. 특히 지난해 12월 수입 물가는 전월보다 2.4% 올랐고, 1년 전보다는 7.0%나 뛰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31일 발표한 ‘12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4.91(2020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1.9% 상승했다. 최근 물가 상승률은 2024년 9월 1.6%, 10월 1.3%, 11월 1.5%, 12월 1.9%까지 4개월간 1%대 기록을 이어오고 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대로 반등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관측까지 나온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과자, 음료, 치킨, 생필품, 화장품 등 가격 인상이 도미노처럼 번졌다. 카카오나 팜유, 로부스타 커피 등 원재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품목의 인상 폭이 컸다. 고환율에 유가마저 꿈틀댈 조짐이다.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에 소비심리가 위축돼 가뜩이나 더뎌진 민생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우려된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설 임시공휴일 지정이 반갑지만은 않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작금의 우리 경제 상황은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벼랑 끝에 서 있다. 그야말로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다. 따라서 통화·재정정책 간 공조가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기이다. 금리 기반의 통화정책만으로는 경제 전반에 온기를 퍼뜨리기가 녹록지 않다. 재정정책이 동반돼야 소비심리를 되살려 내수 부진부터 털어낼 수 있다. 정부가 예산의 조기 집행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예상치 못한 정치적 리스크 확대로 성장 전망과 외환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현 금리 수준을 유지하며 대내외 여건 변화를 좀 더 점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에서다. 수출이 버팀목 역할을 해왔지만, 관세를 앞세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과 중국의 제조업 굴기로 수출 경쟁력도 경고음이 울린 지 오래다. 통계청이 지난 1월 15일 발표한 ‘2024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5세이상 취업자 수는 2804만1000명으로 전년 동월 2809만3000명 대비 5만2000명(-0.2%)이 감소하였고, 15세 이상 고용률은 61.4%로 전년 동월 61.7% 대비 0.3%포인트 하락하였다. 지난해 소매판매액지수는 2003년 ‘카드대란’ 후 2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렇듯 일자리가 줄고 가계부채는 늘고 소비는 줄면서 자영업자는 폐업에 내몰리고, 취약계층은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11월 연속 금리를 내렸던 한은은 이번에는 숨을 고르고 내달 추가 인하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는데, 재정정책과의 협조에 실기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정치권도 힘을 보태야만 한다. 무엇보다 ‘리더십 부재’에서 불거진 불확실성을 하루빨리 해소해야 비로소 환율 고삐를 죌 수 있다. 소비심리와 기업 활동 위축은 중장기 성장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 펀더멘털(Fundamental) 약화는 원화값 추가 하락을 부를 수도 있다. 정부는 예산 67% 상반기 조기 집행과 설 연휴 임시공휴일 지정 등으로 내수 살리기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경기 회복의 마중물로 삼을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금리 인하가 더해져야만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한은이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점인데,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경기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보여줘야만 한다. 정부는 일단 ‘발등의 불’이 된 환율부터 잡고 경기 부양을 위한 후속 조치들을 취해 가겠다는 방향인데, 정치·경제 불안 요소를 제거해 금리 인하 여건을 조성할 책무가 있음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국회는 계류 중인 조세특례제한법, 반도체 특별법, 전력법 등 민생·경제 관련 법안 통과에도 속도를 내 재정·통화정책을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후 격화될 관세전쟁에서 수출 전선을 지킬 우리 기업도 최소한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탄핵정국과 미국의 관세 인상 등 대내외 악재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소비와 설비 투자 흐름도 철저히 분석해 서둘러 실효적 대책을 강구하여 조속히 실행으로 옮겨야만 한다. 최악의 경기 침체와 고용 한파로부터 탈출에 총력전을 펼칠 것이 무엇보다 화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