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격랑에 '시계 제로' 한국 경제, 정책역량 총동원 경제 안정에 최선을
급작스러운 초유의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발한 이후 거듭된 탄핵 정국으로 이어진 전대미문의 정치 격랑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의 한국 경제가 대외신인도는 낙하하고 환율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증시는 바닥을 치며 경제 전반에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다. 내수 부진과 수출 둔화에 소비심리마저 꽁꽁 얼어붙으면서 경제지표에 온통 빨간불이 켜지고 있고 언제 끝날지 모를 정치적 혼돈과 불안감이 경제위기를 부추기고, 그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과 서민들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12월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85원을 돌파했다. 1,480원대 중반 환율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15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고환율이 장기화하면 원자재와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가 치명상을 입게 된다. 기업은 달러화로 결제하는 원자재 수입과 해외투자 비용 증가로 경영이 악화하고 가계는 물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그로 인한 소비 위축과 내수 침체는 다시 기업 실적 하락으로 이어진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초에 원화의 실질 가치가 10% 떨어지면 대기업 영업이익이 0.29%포인트 하락한다는 분석을 냈다. 이런 와중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폭탄’ 등 악재들이 켜켜이 쌓여 내년 1분기에 우리 경제가 역성장할 수 있다는 경고마저 나오고 있다. 외환 당국은 우리 경제의 최대 리스크가 된 환율을 방어하는 데 최우선을 두고 정책역량을 총동원해 경제안정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트럼프 쇼크에 따른 ‘강(强)달러’ 현상과 정치 불안으로 인해 결코 쉽지만은 않겠지만 환율 1,500원 저지선을 지켜내지 못하면 경제까지 격랑에 휘말릴 수밖에 없음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코스피(KOSPI)도 정치 불안과 원화값 급락이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장중 2,4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지난 12월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2월 27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4.9포인트(1.02%) 떨어진 2404.77을 기록했다. 같은 날 코스닥(KOSDAQ) 지수도 9.67포인트(1.43%) 하락한 665.97에 마감됐다. 종가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은 약 1,997조 원, 코스닥은 334조 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인 12월 28일과 비교하면 각각 159조 원, 95조 원이나 줄었다. 올 한해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이탈한 시가총액이 254조 원에 달하는 셈이다.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기업·가계의 체감경기도 차갑게 얼어붙었다. 올해 들어 미국 증시가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나스닥(NASDAQ) 지수 상승 폭이 33.37%, S&P500지수는 26.58%에 달한 데 반해 올해 첫 거래일인 지난 1월 2일 866.57이었던 코스닥 지수는 지난 12월 27일 665.97로 23.15%나 밀렸고,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2655.28에서 2404.77로 9.43%나 깎였다.
한국은행이 지난 12월 24일 발표한 ‘2024년 12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2월 중 소비자심리지수(CCS │ Composite Consumer Sentiment Index)는 88.4로, 전달 100.7보다 12.3포인트 급락했다. 팬데믹 시기인 2020년 3월(-18.3포인트) 이후 최대 하락 폭이다. 가뜩이나 경제 한파에 시달리던 자영업자들은 한계상황으로 내몰려 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소비자들이 경제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100을 기준으로 이를 초과하면 장기평균보다 낙관적임을, 미달하면 비관적임을 의미한다. 한국은행이 지난 12월 27일 발표한 ‘2024년 12월 기업경기조사 결과 및 경제심리지수(ESI)’에 따르면 12월 중 전산업 기업심리지수(CBSI │ Composite Business Sentiment Index)는 87.0으로 전월에 비해 4.5포인트 하락하였으며, 다음 달 전망 CBSI도 82.4로 전월에 비해 7.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12월 24일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취약 자영업자(저소득이거나 저신용인 다중채무자)의 대출 연체율은 11.55%로 치솟았다. 지난 12월 25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노란우산 폐업 공제금’이 지난달까지 역대 최대인 1조 3,019억 원 지급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지급액인 1조 1,820억 원보다 10.1% 증가했다. 노란우산 폐업 공제금은 소기업·소상공인이 사업을 접는 경우 이들의 생활 보장을 돕는 제도다. 퇴직금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얼어붙은 소비에 자영업자·소상공인은 급속히 폐업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해외 시선은 더 불안하고 차갑다. AP통신은 “고위급 외교를 중단시키고 금융시장을 뒤흔들 것”이라며 경제적 파장을 경고했고, 블룸버그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 정책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에 추가적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경제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 중이며 ‘펀더멘털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이 견고하다는 대외적 신뢰를 얻는 것이 화급하다. 내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제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현실로 닥칠 ‘트럼피즘’은 한국에 고금리·고환율 쇼크를 던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금융시장이 요동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기업에 돌아가기 마련이다. 원화 약세로 원재료 수입 부담이 커진 제조·식품 업계는 제품 가격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물가 불안은 내수 침체와 기업 실적 부진으로 이어진다.
한편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가 역대 최대 수준인 50조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문제는 회사채 시장이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빠졌다는 점이다. 회사채 만기가 몰려 차환 발행에 차질을 빚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채권시장안정펀드 등 채권·단기자금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가용 재원은 현재 27조 원 정도 남아 있다고 한다. 공사채 발행 시기와 물량을 조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당장 유동성 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작다고 하지만 원화값 약세와 외화 유출이 지속되면 대외신인도 하락 가능성마저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외교안보·경제 분야의 리더십은 당연히 약해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럴수록 차분하게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국회와 민·관이 ‘원팀(One Team)’으로 하나가 되어 한결같은 메시지를 전달해 정치적 혼란이 외교 안보와 무역 정책 등에 전이되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줘야만 한다. 여·야 정치권은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헌법과 민주주의 정신으로 돌아가 정국을 안정시키고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게 지혜를 모아야만 한다. 정부는 금융회사의 외환 수급을 면밀하고 정교하게 시장을 모니터링하여 외환 변동성에 즉각적 대응을 하면서 주요국과의 ‘통화스와프(Currency swap)’ 확대 등 환율 방어의 둑을 더 높고 견고하게 쌓아야 할 것이다. 결국 탄핵 경제충격을 최소화하고 트럼프 리스크 대비에 국가 역량을 총 집주(集注)해 총력 선제 대응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