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정국 금융 불안에 유동성 확대, 서민물가·집값 관리 강화해야

2024-12-26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이 지난 12월 23일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 회의)’에서 “3000억원 규모의 2차 ‘밸류업(Value-up │ 기업 가치 제고)’ 펀드 조성약정 체결이 완료됐으며 신속히 집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 한국 증시의 고질적 저평가)’ 해소를 위한 핵심 대책이다. 경제팀이 국내외 회의적 시선을 무릅쓰고 밸류업에 매달리는 것은 한국 증시 저평가 때문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한국은행은 환매조건부채권(RP │ Repurchase Agreement) 비정례 매입 추가, 외국환 선물환 포지션 확대, 원화용도 외화대출 완화 등을 시행하기로 했다. 모두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이후 국내 기업 자금난 완화와 불안한 원화 가치를 단기 안정시키기 위해 취한 조치이지만, 이는 시중에 돈이 더 풀리는 효과도 있다. 특히 한은의 RP 매입은 금융기관의 유가증권을 사들여 현금을 공급하는 것이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10일간에 걸쳐 20조원 가까운 단기유동성을 공급한 한은이 RP 추가 매입으로 10조원가량의 현금을 더 풀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은행은 소상공인에게 3년간 2조1000억원 규모의 대출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이는 고물가·고금리에 소비심리가 위축된 데다 탄핵 정국으로 정치적 혼란까지 더해지며 소비자들의 지갑이 굳게 닫혀버린 급격한 경기 냉각과 장기 불황을 멈추기 위해 그동안 고수해 온 대출 규제 강화 등 유동성 축소 정책의 방향이 전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내년 예산의 75%를 상반기에 신속 집행하고, 하반기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재정 건전성 강조 기조도 적극 재정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사상 최장 내수 부진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주요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서 수출 둔화 우려가 커지는 불투명한 무역 환경을 고려하면 이런 정책 전환은 불가피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물가 상승 위험성도 높아진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소비자물가가 추가로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수입재화 가격 전반이 오르는 것이 주요인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원·달러 환율변동이 실물경제 및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2018년)’이란 보고서를 통해 “환율이 전년 동월보다 10%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0.3% 오른다”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 12월 24일 원·달러 환율은 전일 주간거래 종가보다 4.4원 오른 1456.4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13일 1483.5원 이후 최고치다. 무려 15년 9개월 만에 처음 1450원을 넘어선 19일 이후 4거래일 연속 고공비행 중이다. 이날 환율은 한때 1457.4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연일 울리는 고환율 경보에도 한은은 “국내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물경제를 고려하면 현재의 환율 수준은 우리 경제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와 금융권의 공통적인 전망이다. 고환율은 기업들에게는 원자재 가격 상승, 해외 투자비 증가 등의 리스크를, 서민들에게는 물가 상승의 부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12월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전월 100.7보다 12.3포인트나 하락했다. 지난달 1포인트 하락에 이어 2개월 연속 소비자심리가 위축했는데 문제는 하락 폭이다. 12월 하락 폭은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팬데믹 때인 2020년 3월(-18.3포인트) 이후 최대 낙폭이다. 지수 자체도 2022년 11월(86.6) 이후 2년 1개월 만에 최저치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탄핵 정국까지 이어지면서 소비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은 것으로 분석된다.

원·달러 환율이 12월 들어 상승률이 8%대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물가 상승은 필연으로 보인다. 이는 서민과 취약계층에 더 큰 충격을 미친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나 곡물 등의 가격 상승 폭이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한은은 코로나19 사태 이후(2020년 1월~2023년 9월) 서민이 주로 구매하는 저가 상품은 16.4%나 가격이 상승한 데 반해, 최고가 상품은 5.6% 오른 데 그쳤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또 겨우 안정세에 접어든 부동산 시장을 자극해 한계에 이르는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 위험도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월 19일 발표한 ‘3분기 가계신용(잠정)’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13조8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18조원(1.0%) 늘어났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 등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인 가계대출에 결제 전 카드사용 금액인 판매신용을 더한 ‘포괄적 가계부채’를 뜻한다. 사채를 제외한 가계의 모든 빚이다. 1,800조 원대에 진입한 지 13개 분기 만에 1900조원을 돌파하며 2002년 4분기 관련 통계 공표 이래 최대 규모로 커졌다.

이미 서민경제는 한계상황임을 보여주는 지표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 자료를 보면 지난 11월까지 자영업자의 채무조정 신청은 2만6267건으로 지난해 전체 규모 2만5024건을 넘어섰다. 지난 11월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사건 역시 1745건으로 역대 최다였던 지난해 전체 건수 1657건보다 많았다. 개인회생 신청 건수도 11월까지 11만9508건으로 역대 최다 기록인 지난해 전체 건수 12만1017건에 육박한 상황이다. 그만큼 서민경제가 팍팍하고 힘들다는 방증이다. 지난 12월 25일 금융투자업계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성훈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잔액은 9505만원으로 집계됐다.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잔액은 2021년 1분기 말 9054만원으로 처음 9000만원을 넘은 뒤 3년 6개월 만에 500만원가량 늘어났다. 이 기간 기준금리는 연 0.5%에서 3.5%로 가파르게 올랐는데, 가계대출 증가세를 꺾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2분기 말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대출잔액이 9332만원을 기록한 뒤 5분기 연속 늘어나는 등 최근 들어 증가세가 두드러진 모습이다. 전체 가계대출 차주 수는 3분기 말 1974만명이었다. 지난해 3분기 말 1983만명에서 4분기 1979만명, 올해 1분기 1973만명, 2분기 1972만명 등으로 점차 감소하다가 4분기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저소득층의 부채 의존도가 커지면 소비 제약 우려가 크다. 고령층 위주로 부채 축소가 지연돼 은퇴 등으로 소득이 감소하면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또한 내 집 마련에 나서는 MZ세대들이 ‘학품아(학교 품은 아파트)’ 단지를 선호하고 있다. 학교와 인접한 단지는 자녀의 안전하고 편리한 통학 환경이 갖춰져 있으며, 쾌적한 주거 여건까지 기대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년 민간 아파트 분양 전망이 2000년 이후에 최저치인 15만(미확정 물량 포함 시 16만·부동산R114 집계) 가구를 밑돌 것으로 전망되는 배경에는 전반적 경제 상황에 더해 공사비 상승, 정책 이행력 문제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의 경우 이른바 분양 광풍 등으로 이월물량이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나름 선방은 했지만, 사업성을 악화시키는 복합적 이유 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내년 상황은 올해와 크게 달라질 것이란 의미다. 무엇보다도 경기 추락을 막으려 내놓은 유동성 확대 정책의 성공 여부는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달려 있다. 반도체를 비롯한 주력 수출 업종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약화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1~2년 이내에 극복되기는 어려워 보이고, 내수 측면에서도 시장금리 하락이 부동산 경기를 진작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금융 자금이 정상 사업장으로 선순환될 수 있도록 부동산 PF 연착륙 대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한편 건설업계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게 뒷받침해야만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부동산 호황기에 대출로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주택을 매수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족(族)’은 아예 빚더미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등 부동산 경매시장이 심상치 않다. 은행권에 주택을 담보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해 법원 경매로 넘어가는 임의경매 물건이 쏟아지고 있어서다. 임의경매는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채무자가 빌린 돈과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는 경우 채권자가 채무자 부동산을 경매에 넘기는 절차다. 지난 12월 16일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부동산(토지·건물·집합건물) 임의경매 개시결정등기 신청 건수는 12만9703건으로 집계됐다. 12월 신청 건을 제외하고도 이미 2013년 14만8701건 이후 무려 11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부동산 투기 억제책 강화와 함께 생필품 물가 집중 관리, 취약계층 대상 식료품과 생필품 바우처와 난방비 지원 확대 등 서민 안정 대책을 서둘러 시행해야 할 이유이다. 특히 겨울철에 취약한 고령층, 아동, 노숙인을 대상으로 안전 확인과 건강관리, 식사 제공 등 돌봄을 강화래야 한다. 촘촘한 위기 가구 발굴과 더불어 보다 두터운 민생 지원으로 그 누구도 소외를 받는 사례가 없이 국민 모두가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