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치닫는 만신창이 한국경제, ‘불확실성’ 제거에 총력 경주를

2024-12-14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저출산·고령화·혁신 부족 등의 복합 위기에 의한 구조적 장기침체 경고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발(發) 고관세 태풍경보에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할 12·3 비상계엄 사태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한국경제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계엄·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치 불안이 경제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내수 침체 장기화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중국 경제 둔화라는 외부 악재가 겹쳐 고용과 성장률 지표가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닫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2월 13일 공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2월호’에 따르면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가계·기업 경제 심리 위축 등으로 우리 경제의 ‘하방(下方) 위험’ 증가가 우려된다”라고 밝혔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첫 경기 진단으로, 지난달 ‘완만한 경기 회복세’라는 진단은 물론 직전 6개월간 언급해왔던 ‘경기 회복 흐름’이라는 표현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로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소상공인들의 매출이 급격히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도 있어 700만 명의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이미 계엄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12월 10일부터 사흘간 음식·숙박업, 도소매업 등에 종사하는 전국 소상공인 1,63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8.4%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특히 매출이 50% 이상 감소했다는 소상공인이 36.0%로 가장 많았고 ‘30∼50% 감소’ 25.5%, ‘10~30% 감소’ 21.7%, ‘10% 미만 감소’ 5.2%로 조사됐다.

한편 가뜩이나 각종 악재에 시달리고 있던 한국경제에 한밤중 황당하고 어이없는 비상계엄령 선포는 한국경제에 또 하나의 충격파를 던지며 내수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한국신용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 12월 2일부터 9일까지 전국 소상공인 외식업 사업장 신용카드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0% 줄었다. 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송년회 등 각종 모임을 자제하고 관광객 감소, 소비심리 위축으로 예약 취소가 잇따르며 연말 특수도 사라졌다. 코로나19와 고금리에 그렇지 않아도 어렵던 자영업자들은 비상계엄 사태 한파까지 겹치면서 벼랑 끝에 내몰렸다. 기획재정부는 “건설업·제조업 취업자 수가 감소하고 청년·소상공인 등 고용 취약계층의 어려움도 지속되고 있다”라며 “미국 신정부 출범, 정치 등 비경제적 요인에 따른 불확실성도 확대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더욱이 대내 ‘불확실성’을 자초한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까지 경제 리스크를 키우고 있는 가운데 정치 혼란의 후폭풍은 수출을 주도하는 제조업에도 밀려들고 있다.

기업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대외신인도 하락에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중반까지 치솟으며 외화 빚을 안고 있는 업체들은 밤잠도 못 이룰 지경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외화 빚은 총 1,761억 달러도 넘는데 환율이 오르면 이자와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넘나들면서 지난달 수입 물가가 두 달 연속 상승했다. 수입 물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생산자물가에 영향을 미쳐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월 1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11월 수출입물가지수 및 무역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원화 기준 수입물가지수는 139.03(2020년=100)으로 전월(137.55) 대비 1.48(1.1%) 올랐다. 10월(+2.1%)에 이어 두 달 연속 상승세다. 국제유가는 떨어졌지만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수입 물가도 상승 압력을 받았다. 원·달러 평균 환율은 지난 10월 1,361원에서 지난달 1393.38원으로 32.38원(2.3.79%) 올랐다. 환율 효과를 제외한 계약통화 기준 수입 물가는 전월 대비 0.9% 하락했는데 환율 영향으로 상승 전환한 것이다. 지난달 수출물가지수도 130.59로 전월 대비 1.6% 상승했다. 수출 물가 상승 역시 원·달러 환율이 오른 영향이 컸다. 환율 효과를 뺀 계약통화 기준으로는 0.5% 하락했다.

더구나 환율 급등이 기업 투자 위축과 성장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도 커지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실질 환율이 1% 상승하면 설비투자는 0.9%가량 줄고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0.16%가량 낮아질 것으로 추산했다. 고환율이 계속되면 내년 성장률이 1% 중후반대로 내려앉을 수 있는 것이다. 급격한 외화 유출로 자칫 외환보유액이 심리적 저항선인 4,000억 달러 선이 무너지는 경우 국가 신용에 타격을 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외환보유고는 강달러 기조가 계속되며 최근 3년간 내리 줄어들었다. 지난달 말 기준 4,153억 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정부가 현재 환율 방어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외환보유액은 ‘4,000억 달러선’을 유지하며 가용할 수 있는 범위는 약 154억 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과거 사례와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위태(危殆危殆)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환율이 1,430원을 뛰어넘었던 2022년 9월 말 외환보유고는 전월 대비 196억 6,000만 달러가 감소했다. 외환보유고가 4,000억 달러를 밑돈 것은 약 6년 반 전인 2018년 5월이 마지막이었다. 채권금리도 7년 전엔 기준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10년물 국채가 40bp 이상 급등했었다. 이번에도 지난달 말 한국은행의 깜짝 기준금리 인하 후 완연한 하락추세를 보였던 채권금리가 사태 이후 소폭의 반등세를 보이는 추세다.

은행도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악화할 수 있어 위기이긴 마찬가지 상황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2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긴급 현안 질의에서 “환율 (급등)은 기본적으로는 원화 약세가 아닌, 강달러 (현상 때문)”이라며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등 은행 건전성 지표들은 안정적인 수준”이라며 “관계 기관과 함께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고, 필요하다면 필요 조치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환율은 수입 가격을 올려 물가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우려는 여전히 크다. 증시 역시 곡소리가 높다. 이날 최 부총리는 국내 증시 상황에 대해선 “(비상계엄 사태 후) 큰 변동을 보였는데, 정부가 시장 안정 조치를 즉시 투입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 그래도 폭락은 피하고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주가 하락 폭이 커지면서 대기업의 사업구조 재편까지 무산되는 실정이다. 이젠 대만 시가총액에도 1조 달러 차로 뒤처질 정도의 위기 상황에 이르렀다. 최근 4년 새 미국·일본·대만 시총 상위 10대 기업들 시총이 53~107% 급증할 때 한국은 12.7% 쪼그라들었고, 영업이익 역시 116~123% 급증하는 사이에 한국만 유일하게 20% 감소했다. 게다가 이것은 지난 11월 말 기준 수치임을 감안(勘案)한다면,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는 그 격차가 훨씬 더 크게 벌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전에도 우리 경제는 계속 떨어지는 잠재성장률,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는 내수, 둔화하는 수출 등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정부가 지난 12월 13일 최 부총리가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무디스·피치 등 3대 글로벌 신용평가사들과 긴급 화상회의를 갖고 안정적인 신용등급을 유지한다는 다짐을 받았으나 신용평가사들은 ‘불확실성’ 관리를 주문했다.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은 현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사가 AA, 무디스사는 Aa2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계엄령 선포 이후 금융시장에서 환율, 주식 등 일부 지표의 변동성이 확대됐으나, 금융시장은 관리가 가능한 범위에 있는 것으로 판단이 된다”라면서도 “계엄령 선포 이후 여전히 정국 전개 방향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만큼 경제적 영향을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벼랑 끝에 내몰린 만신창이(滿身瘡痍)인 우리 경제는 한 걸음만 삐끗해도 치명상을 입을 만큼 취약하기 그지없다. 한 국가의 경제적 신뢰도를 보여 주는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외국인 자금 추가 이탈,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 상승 등을 불러 경제에 더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은 고도의 통치 행위”라며 당당히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선언한 만큼 지난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었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사이 경제는 망가지고 민생은 무너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선 초당적으로 힘을 모아야만 한다. 서둘러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을 정리하고 일상적인 상황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권의 합의와 협치가 필요하다. 이미 야당에서 지난 12월 10일 ‘여·야·정 비상경제 점검회의’ 구성을 제안한 데 이어 기획재정부가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여당도 서둘러 합류, 경제 살리기에 동참하는 게 화급하다. 무엇보다도 정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금융·실물경제 위기와 기업의 리스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할 우려가 큼을 각별 유념하고 명심하여 국가진운(國家進運)의 명운(命運)이 달린 ‘불확실성’ 제거에 총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아무리 나라가 혼란스럽고 정국이 시끄럽더라도 ‘누군가는 소를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자문해 볼 일이자 “소는 누가,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실행으로 답해야만 한다. 건설업·제조업 취업자 수가 감소하고 청년·소상공인 등 고용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지속하고 있음도 당연히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