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소비·투자 동반 하락 ‘트리플 감소’, 특단의 ‘성장 총력전’ 펼쳐야
나라 안팎의 악재가 겹치면서 한국 경제가 급속히 얼어붙고 곳곳에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내수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제47대 대통령 당선인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이 가시화되면서 나라 밖 경제 환경도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닫고 있다. 특히 내수 부문의 ‘아픈 손가락’ 소매판매와 건설업 분야에 ‘혹한기’가 더욱 장기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경제에 몰아닥친 한파는 각종 지표로도 충분하게 확인이 된다. 지난달 실물경제의 3대 축인 산업 생산, 소비, 투자가 동반 하락하는 ‘트리플감소(Triple minus)’ 현상이 나타났다. 트리플 마이너스는 지난 5월 이후 5개월 만이다.
실물경제의 3대 축인 생산(전산업 0.3%↓·소비(소매판매 0.4%↓)·투자(설비투자 5.8%↓)가 동시에 ‘트리플 감소’하는 삼중고(三重苦)를 겪으며 내수 침체가 고착화(固着化)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발(發) 관세전쟁 공포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의 버팀목이 돼 온 수출마저도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차갑게 식어 버린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선 정부 지출을 확대하는 적극적 재정정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세수는 쪼그라들어 나라 곳간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56조 원, 올해 23조 원, 내년에도 세수가 10조 원 빈다. 그런데도 국세감면액은 매년 늘고 있다. 2016년 37조 4,000억 원이었던 국세감면액은 내년 78조 원까지 늘어난다. 쓸 돈은 느는데 들어오는 세금도 줄고 깎아 주어 나라 곳간이 고갈되어 바닥난 상태다. 그야말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다.
통계청이 지난 11월 29일 발표한 ‘2024년 10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10월 생산은 전(全) 산업 생산지수(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가 113.0으로 전달보다 ‘0.3% 감소’했다. 파업 등의 여파로 자동차 생산이 6.3% 줄어들고 건설 생산(-4.0%)은 6개월째 위축 국면에 갇혔다. 소비는 소매판매가 0.4% 감소해 전달(-0.5%)에 이어 2개월 연속 줄어들었다. 투자는 설비투자가 5.8% 급락해 올 1월(-9.0%) 이후 최대 감소 폭을 보였다. 산업 활동 3대 지표가 일제히 하락하면서 경제성장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경기는 동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전 월 대비 보합세를 보였지만,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전 월 대비 0.1포인트 하락했다. 이런 추세대로 가면 한국은행이 전망한 올해 2.2% 성장률 달성도 위태로워진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성장 하방 압력이 증폭된다. 자칫 수년간 1%대의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생산과 소비가 두 달 연속 동반 하락한 것은 코로나 초기(2020년 2~3월) 이후 4년 7개월 만이다. 지난 10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로는 0.8% 감소했는데 이 같은 감소세는 지난 3월부터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소매판매 부진이 이 정도로 장기화한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2008년 9월~2009년 4월) 이후 무려 15년 6개월 만이다. 내수 부진에 건설업 침체까지 겹쳐 경기는 점점 가라앉고 있다. 건설 공사 실적이 지난 5월부터 6개월째 감소세를 보이는 건 1997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 있는 현상이다. 건설업 생산이 6개월째 하락추세를 보이는 것도 이 통계를 작성한 2000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11월 28일 한국은행이 15년 9개월 만에 ‘동결’일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을 깨고 이례적으로 2회 연속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한 것도 그만큼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지난 10월 11일 기준금리를 3.5%에서 3.25%로 0.25%포인트 낮춘 데 이어 ‘스몰컷(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을 전격 단행해 3.25%에서 3.00%로 0.25%포인트 낮춘 것은 경기가 일시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라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성장 터널로 들어서고 있다는 의미다. 금리를 조금 낮추고 정부가 재정을 더 푼다고 당장 내수가 살아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건설 경기가 활성화되기도 어렵다. 그야말로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이다.
이렇듯 실물경제에 차가운 냉기가 감도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의 경기 판단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경기가 급격하게 꺾이고 있는데도 정부 경제팀의 주축인 기획재정부는 “‘완만한 경기 회복’이라는 큰 흐름에서의 판단은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5개월 전의 ‘트리플 감소’ 때도 “경기 회복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라면서 지표 부진을 일시적 조정으로 치부했다. 경제팀이 산업 현장의 경고음을 무시한 사이 내수는 얼어붙고 수출 증가율은 눈에 띄게 둔화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월 28일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어둡고 암울하다. 한국은행은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4%, 2.1%에서 2.2%, 1.9%로 0.2%포인트씩 각각 낮췄다. 2026년에도 1.8%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과 내후년 모두 잠재성장률인 2.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성장을 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한국은행의 내년 전망치(1.9%)는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각각 제시한 2.0%보다 낮은 수준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한국 경제 전망에 대한 눈높이를 속속 낮추고 있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최근 내년 성장률은 2.2%에서 1.8%로 낮췄고 바클레이즈, 씨티, JP 모건, HSBC, 노무라도 1.7~1.9%로 조정했다.
‘트럼프 리스크’와 같은 대외 변수가 미국·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은 우리 경제의 앞길을 암울하고 어둡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불확실성만 탓하며 안일한 ‘복지부동’으로 시간을 허비한 경제팀의 책임을 간과하기 어렵다. 고령화로 인구 구조가 바뀌면서 자영업 부진, 부동산 침체, 고용시장 이중화 등 사회 각 분야가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다. 생산성을 높여줄 혁신과 신산업은 정치가 만든 규제에 묶여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경제팀은 이제라도 엄중한 위기의식을 갖고 정책 기조와 전략을 재정립해 내수와 수출을 포함한 경제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한다. 성장 동력이 더 꺾이기 전에 정부와 한국은행 등 경제팀은 저성장 터널 탈출을 위해 지혜를 모으고 총력전을 펼쳐야만 한다. 물론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경제 살리기 정책을 입법으로 뒷받침하는 여야 정치권의 협조와 기업들의 혁신과 투자, 노사 협력은 당연히 필수다. 경제팀은 비상한 각오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특단의 ‘성장 총력전’을 펼쳐야만 한다. 경기 침체는 취약계층에 훨씬 더 가혹함도 각별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취약계층에 핀셋 지원을 강화하되 무분별한 퍼주기 씀씀이도 자제해야 한다. 정부는 막연한 낙관론을 접고 내수진작에 총력전을 펼쳐야만 한다. 경제에 관한 한 지금은 민(民)·관(官)·정(政)이 원팀으로 총력 대응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서야만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