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쇼크’ 암운 짙어진 한국경제, 경기 부양에 총력 경주해야
한국은행이 내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1.9%로 전망하며,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했다. 내후년 성장률도 1.8%로 내다봐, 자칫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이 고착화(固着化)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경기 침체가 심화하고,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제47대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불확실성이 강화되자 내수를 살리기 위한 특단 조처로 풀이돼 한국은행뿐만 아니라 정부도 재정 기조를 전환해 경기 부양에 총력 경주(傾注)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으로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1월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 연 3.25%에서 연 3.00%로 0.2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지난 10월 11일 금리를 기존 3.5%에서 3.25%로 0.25%포인트 내려 3년 2개월 만에 ‘피벗(Pivot │ 통화정책 기조전환)’에 나선 지 한 달 만에 전격 ‘백투백(Back to back │ 연속)’ 인하를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단행했다. 내년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시대를 앞두고 수출기업들이 실적 악화뿐만 아니라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금리를 낮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이번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금융시장에서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1,400원대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내려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확대되면 환율이 더 오를 위험이 큰 데다,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 불안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2개월 연속 인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 번도 없었던 경기 대응책인 데다, 지난달 금융통화위원 6명 중 5명이 향후 3개월간 금리동결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와 의견들에도 불구하고 금통위가 금리 인하를 전격적으로 단행한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 체질이 급속히 허약해지고 향후 경제 전망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금리 인하 배경에 대해 “성장의 하방 압력이 증대돼,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하여 경기의 하방 리스크를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경기가 빠르게 가라앉을 위험이 커, 금리를 낮춤으로써 민간 소비, 투자 등 내수를 활성화해야 경기 하강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이날 한국은행이 밝힌 경제 전망은 어둡고 암울하다. 한국은행은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4%, 2.1%에서 2.2%, 1.9%로 0.2%포인트씩 각각 낮췄다. 2026년에도 1.8%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과 내후년 모두 잠재성장률인 2.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성장을 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한국은행의 내년 전망치(1.9%)는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각각 제시한 2.0%보다 낮은 수준이다. 또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잠재성장률(2.0%)을 밑돈 것은 통계를 집계한 1954년 이후 총 6번으로 1956년(0.6%), 1980년(-1.6%), 1998년(-5.1%·외환위기), 2009년(0.8%·금융위기), 2020년(-0.7%·코로나19), 지난해(1.4%)뿐이다. 나아가 2026년 성장률은 1.8%로 더 낮아질 것으로 추정, 우리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한국은행이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한 결정적 요인은 수출 증가세 둔화다. 올해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지난 2분기보다 0.1% 성장하는 데 그쳤다. 다행히 2분기 역성장(-0.2%) 쇼크에서 한 분기 만에 벗어났지만, 수출은 2분기보다 오히려 뒷걸음치면서 사실상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특히 그동안 경기를 떠받쳐온 수출이 0.4% 감소해 충격을 주었다. 한국은행은 올해 수출 증가율을 지난 8월 전망치보다 0.6%포인트 낮춘 6.3%로 예상했다. 내년에도 당초 전망보다 1.4%포인트 내려 1.5%에 그칠 것으로 관측했다. 중국 등과 경쟁이 심해지고, 내년 1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한국경제의 주축인 수출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일시적인 요인보다 (중국 등) 경쟁국과의 수출 경쟁 심화 등 구조적인 요인이 크다고 판단된다”라고 말하며, “주력 업종의 경쟁 심화, 보호무역주의로 당초 예상보다 수출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점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11월 25일(현지 시각)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을 통해 마약 밀반입과 불법 이민자 유입을 이유로 대통령취임일인 내년 1월 20일 첫 행정명령으로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하고, 미국으로 수입되는 중국산 제품에는 기존 관세에 10%의 세율을 추가로 매기겠다고 엄포를 한 것처럼 내년부터 관세전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우리 수출 전선에 더 짙은 먹구름이 끼게 된 것이다.
한국은행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경기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선 만큼 이제 정부의 재정정책도 발을 맞춰 공조에 나서야 한다. 그동안 고수해왔던 긴축재정 기조를 과감히 버리고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침으로써 자칫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질 가능성만은 결단코 막아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기준금리가 추가로 낮아지면서 달러와 비교해 원화 가치가 더 떨어져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대 환율이 굳어질 가능성도 크다. 관건은 환율 부담을 지면서까지 단행한 기준금리 인하로 경기 하방 압력을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 크다. 성장률 하락의 주요인으로 지목되는 수출 등 통상 이슈는 금리로 통제하기 어려운 대외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또 금리 인하가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데 6개월 이상 시차가 존재한다는 점에서도 다소 주춤해진 가계부채만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 이유다. 이창용 총재는 “수출 증가율이 떨어지는 건 구조개혁을 통해 대응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금리가 성장률을 받쳐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라면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추면 성장률을 0.07%포인트 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금리 인하로 원화 약세가 지속하게 되면 수출이 줄어드는 것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는 있겠지만 내수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문제는 수출 외에도 양극화, 소비둔화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통계청이 11월 28일 발표한 ‘2024년 3/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3분기 가계 소득(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25만 5,000원으로 전 년 동 분기 503만 3,000원 대비 4.4%(실질소득 2.3% 증가) 늘어났지만,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90만 7,000원으로 전 년 동 분기 280만 8,000원 대비 3.5% 증가(실질소비지출 1.4% 증가)에 그쳤다. 가처분소득에서 주거비, 식료품비 등에 쓴 소비지출 비중은 69.4%로 2022년 4분기 69.1% 이후 7개 분기 만에 60%대에 재진입했다. 경기 불안에 국민들이 버는 돈보다 덜 썼다는 의미로 내수 부진이 길어지면서 소비심리 회복은 더디다. 경기 침체에 따른 불안감이 커지면서 가계가 선뜻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다. 건설, 도소매업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소득 격차는 더 확대됐다. 소득 하위 20% 대비 상위 20%가 얼마나 더 버는지를 나타내는 5분위 배율은 3분기에 5.69배를 기록해 지난해 3분기 5.55배보다 더 악화(惡化)됐다. 게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확전 추세다. 기준금리 인하로 격차가 한국(연 3.00%)과 미국(4.50∼4.75%) 간 상단기준 1.75%포인트로 벌어져 외국 자금이 탈출할 우려도 있다. 수입 물가를 자극해 다시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릴지도 모른다. 국내 기업들의 1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97.3으로 기준치(100)를 2022년 4월부터 33개월 연속 밑돌고 있다. 1,913조 8,000억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와 올 4분기 들어 다소 진정된 수도권 집값을 다시 자극할지도 지켜볼 부분이다.
이렇듯 대(大)혼돈의 경제 국면에서 정부의 총력 대응은 이제 머뭇거릴 여유가 없는 요청이다. 온통 침체 먹구름이다 보니 가계와 자영업자들은 지금 한숨과 곡소리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일자리 ‘일자리 미스매치(Mismatch │ 엇박자)’로 양질의 청년 일자리는 씨가 마르고 무기력하게 ‘그냥 쉬는’ 청년(15~29세)이 41만 8,000명에 이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의 층위가 명확하게 나뉘어 시장 내 ‘이동 사다리’가 사라진 지도 오래됐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1월 28일 발표한 ‘2024년 10월 사업체 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사업체 종사자 수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지난 10월 마지막 영업일 현재, 종사자 1인 이상 사업체의 종사자는 2,017만 3,000명으로 전 년 동월 2,008만 1,000명 대비 9만 2,000명(0.5%↑) 증가에 그쳐 43개월 만에 최저 증가치를 기록했다. 일자리는 질도 떨어지고 양도 부족한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이젠 경기 회복과 민생 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적극 재정이 불가피해진 상황임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가 최근 적극 재정으로 기조를 바꾼 것도 이런 흐름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경기 침체는 취약계층에 훨씬 더 가혹함도 각별 유념해야 한다. 취약계층에 핀셋 지원을 강화하되 무분별한 퍼주기 씀씀이도 자제해야 한다. 정부는 막연한 낙관론을 접고 내수진작에 총력전을 펼쳐야만 한다. 경제에 관한 한 지금은 민(民)·관(官)·정(政)이 원팀으로 총력 대응에 더 공격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