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發 ‘신3高’ 덮친 ‘퍼펙트스톰’ 위기, 불확실성 타개에 총력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2기 정부가 아직 출범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그 충격이 한국 경제를 뒤흔들며 우리 경제의 허약한 체질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한국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척도인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1400원 선을 뚫고 올라가자 외환 당국이 “적극적 시장안정조치를 적기에 신속히 시행해야 한다”라며 7개월 만에 구두개입에 나섰는데도,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한국 기업 실력을 보여주는 증시도 ‘트럼프 포비아(Phobia)’에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모든 분야에서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넘어 미국 유일주의(America Only) 정책 기조를 내세울 것이라 예상하는 가운데 미국경제 정책 불확실성 위기에 ‘패닉 셀(Panic Sell │ 공황 매도)’이 일어나면서 한 달 전 2600선이던 코스피(KOSPI) 지수가 도널드 트럼프 당선 후 ‘심리적 마지노선’인 2500선이 붕괴하더니 이젠 2,400마저 위태롭다. 지난 11월 14일 15시 30분 코스피 지수는 1.78(+0.07%) 상승한 2418.86으로 장을 마감했고, 코스닥(KOSDAQ) 지수는 8.09(-1.17%) 하락한 681.56으로 장을 마감했다.
미국 ‘트럼프 2기’의 높은 파고가 한국에 밀려오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이후 이어진 인플레이션 충격이 가시나 싶더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주의, 재정확대 정책으로 촉발될 고환율·고물가·고금리의 ‘신3고(新3高)’가 다시 덮칠 기세다. 특히 트럼프 당선 이후 경기 부양에 대한 기대감으로 미국은 물론 일본 대만 등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고, 심지어 무역 분쟁 최대 피해국으로 지목된 중국 증시마저 올랐는데 유독 한국만 폭락했다. 지난 1주일간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 수익률은 세계 최하위를 기록했다. 문제는 외국인 투자자 뿐만 아니라 개인·기관 투자자 등 국내 증시를 지탱하고 있는 투자 주체들이 한꺼번에 국장에 대한 관심을 접고 이탈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이다. 지난 11월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 주가도 전일보다 1.38% 하락해 4만9900원에 장을 마감했다. 5거래일 연속으로 13.2% 떨어진 가격이다. 52주 신저가 역시 다시 경신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 11월 11일 ‘2025년 경제 및 금융 전망 세미나’에서 올해 우리 경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2%로 전망하며 지난 5월 내놓은 성장률 전망치 2.5%보다 0.3%포인트 낮춘 데 이어 내년 GDP 성장률은 올해보다 0.2%포인트 낮은 2.0%로 예상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하루 뒤인 지난 11월 12일 발표한 ‘2024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내수 회복 지연을 이유로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2.5%에서 2.2%로 0.3%포인트 낮춘 데 이어 지난 8월에 2.1%로 제시했던 내년 GDP 성장률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수출 둔화 우려를 반영해 2.0%로 0.1%포인트 낮췄다.
이런 와중에 통계청이 지난 11월 13일 발표한 ’2024년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15세 이상 취업자 수는 2884만7000명으로 1년 전보다 8만3000명(0.3%) 느는 데 그치며 4개월 만에 증가 폭이 10만명을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총생산(GDP)을 구성하는 4대 요소인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순 수출이 일제히 위축 신호를 보내고 있는 가운데 고용마저 흔들리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은 우리 경제에 좋은 신호가 아니란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종별로는 자영업자가 많은 도매 및 소매업(-14만8000명, -4.5%)과 최근 위기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는 건설업(-9만3000명, -4.3%)의 ‘고용 한파’가 눈에 띈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젖줄인 제조업(-3만3000명, -0.7%) 분야 취업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연령대별로 60세 이상 고령층(25만7000명 증가)이 고용시장을 견인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15~29세의 청년층(-18만2000명)과 우리 경제의 허리인 40대(-7만2000명)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우려를 더 하고 있다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 11월 13일 발표에 따르면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인 비금융업 법인 814개사의 경영 성과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내수기업 매출액은 코로나 사태 후 4년 만에 처음 감소했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 이들 기업의 전체 매출액은 전 년 동기 대비 6.7% 증가했다. 다만 이런 증가세는 수출기업(194개사)의 매출액이 13.6% 증가한 데 따른 것으로, 나머지 내수기업(620개사)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1.9% 줄었다. 한국 경제에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 총체적 초대형 복합위기)’이 닥칠 것만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환율은 경제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의 바로미터(Barometer)이고, 주식 시장은 미래를 선반영해 움직인다. 우리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증표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내년 1월 20일 본격 가동을 하게 되면 세계 경제는 고율 관세로 인한 고물가, 또 그에 따른 고금리 등의 충격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한국은 수출·수입 등 무역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대외 충격에 극히 취약하다. 이를 최소화하려면 특정 지역과 업종에 편중된 수출의 다변화와 내수 확대 등 중장기 경제 체질 개선을 꾸준히 진행해야만 한다. 향후 전 세계 물류가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로벌 산업구조 재편에 우리 기업들이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위기는 더욱 곤혹스럽다. 인공지능(AI) 산업은 미국이, 전기차·배터리는 중국이 앞서가는 가운데 메모리반도체 등 한국이 선두인 몇 안 되는 부문에서마저 경쟁국의 추격으로 수출시장이 축소되고 있다. 하지만 “비상한 각오”만 외쳐왔을 뿐 구체적 실행은 흐지부지하면서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특히 내수는 장기 침체에 빠져 있다. 대표적 내수 업종인 도소매 취업자가 지난달 3년 3개월 만에 최대 감소를 기록했고, 소매 판매는 2년 반째 줄어들면서 가장 긴 하락 추세(趨勢)를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지금까지의 자유무역주의가 퇴조하고 각국이 문을 걸어 잠근다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한국은 보호무역주의 정책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트럼프 스톰’이 다가오고 있는데 이를 막아줄 방파제는 아예 보이지조차 않는 상황이다. 작금의 우리 경제는 ‘트럼프 트레이드(Trump Trade │ 트럼프 수혜자산 투자)’ 충격에 국내 금융시장이 대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통령 임기 반환점을 맞아 ‘역대 최고 수출’이나 ‘물가 조기 안정’ 같은 보도자료를 내놓으며, “상황판단도 제대로 못 한다”라는 비아냥 섞인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급기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다시 “비상한 각오”를 언급했다. 하지만 각오로 풀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지금은 행동으로 나서야만 할 때이며, 최우선으로 야당에 협조를 요청하는 노력부터 보여야만 한다. 당연히 야당도 정부를 도와 당면한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야만 할 것이다.
결국은 정부가 작금의 경제위기 상황을 돌파할 능력을 지녔는지에 대한 더 큰 의문으로 비화하고 있어 보이는 형국이다. 부자 감세로 세수 기반이 무너지면서 국가 재정이 흔들려 있고, 정부가 올해 29조6000억원에 이르는 ‘세수 펑크’를 메우려 외국환평형기금‧주택도시기금 등 최대 16조원의 기금을 끌어다 쓰고 있는 극한 상황이다. 위기는 눈앞에 있고 전방위로 번져가고 있는데 정부는 눈을 감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더는 말만 앞선 건전재정과 자유시장이라는 이념적 정책 운용만으로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반도체를 핵심 부품으로 하는 전방산업(Forward Industry)의 탈중국화를 서두르고 전기차·배터리 분야의 경쟁력을 확보해나가야 한다. 국채 발행으로 재원을 마련해 적극 내수 활성화에 써야만 한다. 증시 역시 공매도 금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같은 대증요법만으로는 살아나지 않는다. 고려아연 유상증자, LG엔솔·카카오페이 식의 인적 분할 후 쪼개기 상장처럼 주주가치 훼손이 없도록 제도화해야만 한다. 불신만 쌓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성문화하고, 상장회사의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며, 이사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되도록 비율을 높이고, 자산 총액이 2조원 이상인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상법' 개정도 서둘러야 할 사안이다. 결론은 도널드 트럼프 發 ‘신3高’에 덮친 ‘퍼펙트스톰’ 위기로 인한 불확실성 타개에 총력을 경주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