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침체·수출 둔화·금융 불안·성장 하락, 비상한 선제 대응을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 11월 11일 ‘2025년 경제 및 금융 전망 세미나’에서 올해 우리 경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2%로 전망하며 지난 5월 내놓은 성장률 전망치 2.5%보다 0.3%포인트 낮춘 데 이어 내년 GDP 성장률은 올해보다 0.2%포인트 낮은 2.0%로 예상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하루 뒤인 지난 11월 12일 발표한 ‘2024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내수 회복 지연을 이유로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2.5%에서 2.2%로 0.3%포인트 낮춘 데 이어 지난 8월에 2.1%로 제시했던 내년 GDP 성장률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수출 둔화 우려를 반영해 2.0%로 0.1%포인트 낮췄다.
그야말로 곳곳에 적색 경고등이 켜졌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가운데 한국경제의 앞길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아 보인다. 내수, 수출, 투자 등 어느 것 하나도 기대에 미치는 지표가 없어서다. 민간소비 증가율이 지난해 1.8%에서 올해 1.3%에 그쳤다. 내년에는 1.8%로 개선된다고 하나 여전히 미미한 상승이다. 총 고정투자는 1.4%에서 –0.2%로 1.6%포인트 고꾸라질 것으로 예측됐다. 수출은 물량 기준으로 증가율이 지난해 3.6%에서 올해 7%로 올라가겠지만, 반기별로 보면 상반기 9.1%에서 하반기 5.1%로 4%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내년에는 2.1%로 급락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렇듯 올해 성장률 둔화는 내수 침체 탓이 컸다. 더욱 심각한 것은 건설 부문이다. 건설투자는 부동산 시장 약세와 수주 감소의 영향을 받아 올해 -1.8%에서 내년에는 –0.7%로 1.1%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보이나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갈 것이란 예상이다.
게다가 ‘트럼프 트레이드(Trump Trade │ 트럼프 수혜자산 투자)’ 충격에 국내 금융시장이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11월 12일 코스피는 사흘 사이 무려 80포인트 이상 떨어지면서 2,480선으로 추락했다. 코스닥지수도 3% 가까이 급락했다. 원·달러환율은 그제 2년 만에 달러당 1,400원대가 붕괴했다.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넘어선 건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2022년 코로나 19 충격 세 차례뿐이었다. 이번 금융 쇼크를 예사롭게 넘길 일이 결코 아니라는 경고다. 우리와는 달리 미국 증시는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며, 이른바 ‘불장(Bull Market │ 상승장)’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증시는 ‘트럼프 랠리’가 상승 관성을 지속하며 동반 상승세로 출발했다. 다우 산업 지수는 지난 11일 기준 4만 4293.13(전일 대비 304.14↑), 나스닥은 1만 9298.76(〃 11.98↑), S&P500은 6001.35(〃 5.81↑)에 각각 장 마감했다. 3대 지수 모두 사상 최고치다.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암호화폐 대장주 비트코인이 8만 9,000달러를 돌파하는 등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개당 가격이 최근 일주일 새 25% 이상 치솟는 등 그야말로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글로벌 자금이 ‘가상자산 대통령’이라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을 따라 미국으로 몰려든 탓이다. 국내에서도 자본이탈이 가속화되면서 환율과 증시불안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가뜩이나 허약한 증시 체력에다 도널드 트럼프 2기 때는 더 독해질 보호무역주의가 한국경제에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불안이 더해지면서 투매 양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이런데도 최근 기획재정부는 “물가 안정, 고용 확대, 수출 활성화를 통해 글로벌 복합 위기의 충격을 최소화했다”라고 자화자찬하고 나섰다. 물론 대통령 임기 반환점을 맞아 국정 홍보 차원에서 긍정적 측면을 부각한 측면이 있다 해도 “가계부채, 국가 부채를 연착륙시켰으며 민간 중심 경제 운용으로 경제 활력을 증진했다”라는 의도적 자체 평가를 한다는 것은 당장 내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제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현실로 닥칠 ‘트럼피즘’이 한국에 고금리·고환율 쇼크를 불러일으킬 위험성과 ‘트럼프노믹스’가 한국의 재정·금융정책까지 제약할 위기를 너무도 안일하게 상황을 인식하고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심히 걱정스럽다. 우리 경제가 수출·내수 동반 하락에다 원화 약세라는 ‘삼중고(三重苦)’에 직면해 있는데도 정부에서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작금의 경제위기를 벗어날 근본 해법은 규제를 풀고 혁신 동력을 살리는 것이 첩경이지만 정치권의 불협에 막혀 불가능한 상황이다. 당장 내년에 성장을 끌어올릴 현실적 방안을 찾아 실행으로 옮겨야만 한다. KDI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환율 등을 고려해 적극적인 금리 인하에 신중론으로 망설이고 있다. 정부, 한국은행, KDI는 엇박자를 줄여 국민 불안을 불식시키고 진솔하게 경제 현실을 진단하고 해법을 마련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무엇보다 2년 연속 이어진 세수 결손으로 재정지출을 통한 내수 부양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 │ MAGA)’란 구호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의 보호무역 장벽은 더 높아져 우리 경제의 성장 엔진인 수출은 타격을 피할 수 없는 형국이다. 지금까지의 자유무역주의가 퇴조하고 각국이 문을 걸어 잠근다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한국은 보호무역주의 정책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 대한 관세 인상을 효율적으로 막아내는 한편,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한 종합 대책을 서둘러 세워야만 한다. 미국 투자전문가 나심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가 그의 저서 ‘블랙스완(Black Swan │ 위험 가득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에서 역설한 검은 백조를 찾는 절박한 심정으로 대내외 불확실성을 타개하기 위한 범정부적인 종합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경제에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이 몰려들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유연한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쉽게 간과해 버릴 수 있는 ‘회색 코뿔소(Gray Rhino)’와 같은 위험요인들은 확실하게 선제적으로 제거해 나가야만 한다. 눈에 뻔히 보이는 ‘회색 코뿔소’라는 위기 징후를 놓쳐 대재앙을 초래하는 치둔(癡鈍)의 우(愚)를 범해선 결단코 안 된다. 경쟁과 효율이란 키워드를 놓치지 말고 국가 간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업과 정부, 정치권 모두 총력전을 펼쳐나가야만 한다. 좀비기업 정리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 구조개혁 역시 당면한 과제로 절실하기는 마찬가지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에 맞서 경제를 살리고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모두 절박한 심정으로 위기 징후를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하면서 ‘경제 안전벨트’를 단단히 조이고 성장 동력을 재점화하기 위해 경제위기 극복 전략을 정교하고 치밀하게 마련해 발 빠르게 비상한 선제 대응을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