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보조금 폐지·환율관찰국 재지정, 거세지는 미국 ‘트럼피즘’ 압박

2024-11-16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미국발(發) 경제·통상 충격에 한국 경제가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정권인수팀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 Inflation Reduction Act)'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고, 미국 재무부는 한국을 1년 만에 다시 환율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한국의 대(對)미국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흑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데 국내 전기차·배터리 업계엔 초비상이 걸렸고, 우리 정부는 대미국 무역흑자와 환율 관리에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아직 출범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트럼피즘(Trumpism │ 트럼프주의)’ 압박이 한국 경제를 뒤흔들며 우리 경제의 허약한 체질의 아킬레스건(Achilles 腱)을 아프게 짓누르고 있다.

무역적자를 미국경제의 적(敵)으로 보는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기간 내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넘어 미국 유일주의(America Only) 정책 기조를 내세우며 보편관세, 반도체 보조금 폐지 등을 부르짖었는데 이러한 ‘트럼프 리스크’가 과장이나 허풍이 아니라 실제의 태풍으로 들이닥치며 한국을 겨냥한 통상압박과 공세가 더욱 거세지는 게 아닌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렇듯 지금까지의 자유무역주의가 종언을 선언하고 각국이 통상의 문을 걸어 잠근다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한국은 보호무역주의 정책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트럼프 스톰’이 다가오고 있는데 이를 막아줄 방파제는 아예 보이지조차 않는 상황이다. 작금의 우리 경제는 ‘트럼프 트레이드(Trump Trade │ 트럼프 수혜자산 투자)’ 충격과 ‘트럼프 포비아(Phobia)’에 국내 금융시장이 대혼돈에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1월 14일(현지 시각)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측이 광범위한 세제 개혁 법안의 일환으로 세액공제를 폐기할 계획”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정권 인수위원회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근거해 배터리, 핵심광물 등에 대한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고 미국에서 제조하면 전기차 구매 시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50만원) 규모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던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대해 우리 정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안”이라고 밝혔지만,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기간 보조금 폐지를 공언해온 만큼 현실화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전기차·배터리 시장의 수요가 위축될 수 있고, 보조금을 받기 위해 대미 투자를 늘려 온 현대차나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3사는 이 약속을 믿고 미국에 공장을 지었는데 보조금을 없애겠다고 하니 한국 기업들은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도널드 트럼프가 공언한 대로 보조금 폐지를 반도체로 확대하고 10∼20%의 보편관세까지 물릴 경우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로서는 큰 재앙이 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반도체와 자동차·배터리산업이 전체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20%, 16%에 달하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 재무부가 1년 반 만에 다시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 것도 그 파장이 만만치 않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11월 14일(현지 시각) 발표한 ‘2024년 하반기 환율보고서’에서 중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 독일과 함께 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은 2019년 상반기를 제외하고 2016년 4월 이후 7년간 미국의 환율 관찰대상국에 포함됐다가 지난해 11월과 올해 6월 관찰대상국에서 빠졌는데 이번에 재차 포함된 것이다. 미국은 자국과 교역 규모가 큰 상위 20개국 거시정책과 환율정책을 평가해 3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요건 중 2개를 충족하거나 대미 무역흑자 규모·비중이 과다한 경우엔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다. 지정 요건은 ▲ 대미무역(상품+서비스) 흑자 150억 달러 이상 ▲ 경상흑자 GDP 대비 3% 이상 ▲ 달러 순매수 규모가 GDP 대비 2% 이상으로 12개월 중 8개월 이상 개입 등 3가지다.

문제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서는 불안요인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조치는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의 환율과 경제 정책을 꼼꼼히 들여다보겠다는 뜻인데, 대미국 무역흑자와 경상수지 흑자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미국 무역흑자는 2022년 280억 달러에서 지난해 444억 달러로 164억 달러나 늘었고 올해는 5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연간 경상수지 흑자도 6월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3.7%에 달한다. 당장 직접적 조치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무역적자에 민감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이 조치를 빌미 삼아 한국을 미국 보호무역주의의 희생양으로 삼지 말란 법은 없다. 따라서 내년 1월 20일 취임한 이후 통상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은 매우 커졌다. 미국의 공식 감시 대상이 되면서 환율 안정을 위해 시장에 개입하는 우리 외환 당국 운신의 폭도 당연히 좁아지게 됐다.

한국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척도인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1400원 선을 뚫고 오르락내리락하고 있고 한국 기업 실력을 보여주는 증시도 ‘트럼프 포비아(Phobia)’에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다. 문제는 과도한 원화 약세 흐름이 이어지게 되는 경우 외환 당국이 시장개입에 나서야만 하는데 자칫 ‘환율 조작’으로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사방 각처로부터 전방위적으로 악재가 꼬리를 무는데도 정부의 위기감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1월 15일 내놓은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0월호에서 물가 안정세가 확대되는 가운데 완만한 경기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작금의 경제 현실은 전혀 딴판인데도 호평과 자화자찬 일색이다. 내수 침체는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닫고 있다.

실제로 3/4분기 민간소비(GDP 속보치)는 전기대비 0.5% 증가에 그쳤다. 특히 지난 9월에는 소매 판매가 내구재는 6.3% 증가했지만, 준내구재(-3.2%)와 비내구재(-2.5%)가 감소하며 전 월 대비 0.4% 감소했다. 이렇듯 소매 판매는 역대 최장인 10분기째 쪼그라들고 도소매 취업자도 지난달 3년 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수출에서는 증가세가 둔화하며 이상 조짐이 나타나고 내년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10월 수출도 전년 동월 대비 4.6% 증가한 575억2000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일 평균 기준으로는 0.2% 감소한 26억 1,000만 달러에 그쳤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올해 우리 경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2%로 전망하며 지난 5월 내놓은 성장률 전망치 2.5%보다 0.3%포인트 낮췄고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2.5%에서 2.2%로 0.3%포인트 낮췄다. 팽팽한 긴장감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공세가 거세질수록 미국의 의도를 철저히 파악해 한미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는 특단의 방안을 찾아내야만 한다.

지금은 민·관·정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역량과 지혜를 모아 총력 대응해야 할 때다. 우선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2기에 더욱 거세질 보호무역주의 압박에 대비해 기업피해와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정책역량을 총 집주(集注)해야만 한다. 미국의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기술력과 제품경쟁력을 키우고 수출품목과 지역도 다변화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고 연구개발(R&D)과 투자에 대한 금융·세제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재정과 통화 등 거시정책 기조는 경제 활력을 불어넣는 방향으로 획기적으로 전환하고 주식과 외환 등 금융 불안을 막을 수 있는 시나리오별 대응책도 유연하게 선제적으로 강구해 실행으로 옮겨야만 할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관심을 집중하는 조선, 방산 분야를 협력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등 새로운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현대자동차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외국인 ‘호세 무뇨스’를 최고경영자(CEO)를 기용하는 등 기업들은 이미 선제적으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도 역시 엄중한 위기의식을 갖고 민간과 힘을 합쳐 선제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