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급 과잉·미국 관세 폭탄, 급변하는 통상환경 선제 대응을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공급 과잉으로 세계 경제를 몸살로 앓게 하고, 미국은 반도체 보조금 대신 관세 폭탄으로 겁박하고 있다.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제품, 바이오, 철강 등 산업 전반에서 중국산 제품이 각국 시장을 장악하고 저가 공세로 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린다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기 부진과 밀어내기식 수출 여파로 공급 과잉 현상이 지속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 게다가 눈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할 때에는 모든 국가에 일괄 관세 부과 방안을 실행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렇듯 통상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정부의 선제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올해 3분기 주요 상장기업들의 실적을 보면, 중국 상품의 글로벌 공급 과잉이 수익성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영향을 받는 업종은 철강·석유화학·디스플레이 등 전통 제조업과 반도체·전기차·배터리·태양광 등 첨단산업을 가리지 않는다. 포스코홀딩스는 중국 철강 수요 부진 지속과 가격 하락 영향으로 중국 법인 중심으로 수익성이 악화하여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740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8.3% 떨어졌으며, 엘지화학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4984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2.1% 감소했다. 이처럼 전통 산업 대표기업들의 실적이 악화한 데는 상당 부분 중국 요인이 차지한다. 중국 내 수요가 부진한 데다, 중국 기업들이 돌파구로 국외에 저가 공세를 펴면서 공급 과잉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탓이다. 삼성전자도 중국 후발주자들이 메모리 반도체를 저가로 판매하면서 압박을 받고 있다.
중국발 공급 과잉은 이전과 양상이 다르다. 중국이 대규모 설비투자를 해도 고성장기에는 자국 내에서 상당 부분 물량을 소화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부동산 침체 등의 여파로 수요가 따라가지 못한다. 게다가 과거에는 업종별로 공급 과잉 시기가 달랐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업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빚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사실상 기준금리로 통하는 대출우대금리(LPR)을 25bp 인하하고, 경기 부양을 위해 중앙정부가 적게는 4조 위안(약 765조원)에서 많게는 12조 위안(약 2317조원)을 투입해야 한다며 재정 투입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지만, 어느 정도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중국인민은행(PBOC)은 지난 10월 21일(현지 시각)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5년물 LPR을 연 3.85%에서 3.6%로, 일반 대출 금리의 산정 기준이 되는 1년물 LPR을 연 3.35%에서 3.1%로 낮췄고, 경기 침체의 수렁에 빠진 중국은 최근 경기부양책을 꺼내 놓은 데 이어 대형 국영 은행들에게도 최대 1조 위안(약 189조3300억원)을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한 데 이어 지방정부는 올해 3조8000억 위안(약 720조원)의 특별채를 새로 발행했고 전국적으로 장비·소비재 갱신 및 교체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국채 3,000억 위안(약 57조원)을 풀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반도체·전기차 등 첨단산업과 관련해 중국산 제품에 관세 인상 등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다.
주요국이 다른 나라 경제를 희생시키면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1930년대 대공황을 초래한 ‘너 죽고 나 살자’식의 이른바 ‘근린궁핍화 정책(Beggar my neighbor policy)’을 부분적으로 펴는 등 통상 패러다임(Paradigm)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는데, 우리 정부의 대응은 잘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철강 등 잉여 생산 물량을 한국으로 밀어내고 있고, 미국은 관세를 올릴 태세인데 우리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렇게 ‘차별적 디커플링(Decoupling │ 탈동조화)’ 현상 뒤에는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 반도체와 자동차에 편중된 산업구조, 기업 지배구조 문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도 각별 유념해야 한다.
중국 전기차 기업 ‘BYD(비야디)’의 올해 3분기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24% 늘어난 282억 달러(약 39조원)를 기록하면서 테슬라(Tesla)의 올 3분기 매출 252억 달러보다 30억 달러 높은데, 이는 분기 기준 처음으로 미국 테슬라를 제쳤다. 지난 10월 29일(현지 시각) 블룸버그(Bloomberg)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13개 핵심 기술 중 전기차·리튬 배터리, 무인 항공기, 태양광 패널, 그래핀, 고속철 등 5개 부문에서 글로벌 선두로 중국 제조업 굴기가 어디까지 갈지 사실 두렵기만 하다. 우리나라로선 거침없는 중국 위세가 한국 산업에 더 큰 풍랑으로 다가오기 전에 종합적인 대안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 한국은 미국과의 경제적 밀접성을 통해 무역을 중심으로 성장했지만 동시에 미국의 정책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낸 사례가 많았는데도 눈에 띄는 대응책은 없어 보인다. 기업들은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등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정부는 변화된 통상상황에 유연하게 선제 대응할 수 있도록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을 아우르는 특별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