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자 이중부담 갑질 중도상환수수료, ‘인하’ 아닌 ‘폐지’ 마땅
금융당국이 은행의 가계대출 중도상환수수료를 내년부터 절반 수준으로 낮아진다. 또 반쪽짜리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도 협의를 진행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중도상환수수료율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시중은행들과 함께 시뮬레이션 작업을 진행 중이며, 내년부터 시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도상환수수료는 고객이 대출금을 약정 만기 이전에 상환할 경우 은행이 대출 취급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일부를 보전하기 위해 대출금에 대해 물리는 수수료로 ‘계약 위반’에 따른 위약금 성격을 갖고 있다.
중도상환수수료는 현행법상 원칙적으로 부과가 금지되지만, 소비자가 대출일로부터 3년 안에 상환하면 예외적으로 부과할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이 몇억 원대인 점을 고려하면 중도상환수수료도 몇백만 원 규모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약 1.2~1.4%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으며 신용 대출은 0.6~0.8% 수준이다. 그런데 이 수수료율이 내년부터는 각각 0.6~0.7%, 0.4%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31일 발표한 5대 금융그룹의 올해 3분기 경영실적을 보면, 9월까지 이들 5대 은행의 이자 이익만도 총 31조 4,387억 원으로 집계돼 지난해 30조 9,368억 원보다 5,019억 원이나 늘었다. 그런데 중도상환수수료로만 이들 은행이 매년 3,000억 원 이상 이익을 얻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중도상환수수료는 대출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설계돼 있다.
금리 변동위험 부담을 대출자가 지는 ‘변동 금리 대출’의 경우 0.7~1.2%의 중도상환수수료를 받고 있고, 금리 변동위험 부담을 은행이 지는 ‘고정 금리 대출’의 경우 0.8~1.4%의 중도상환수수료를 받고 있어, 변동 금리와 고정 금리 간 중도상환수수료율 차이가 거의 없다. 대출 갈아타기를 막기 위해 은행들이 수수료율을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한다는 담합 의혹도 없지 않다. 은행들은 수수료율을 산정하는 근거와 기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대출은 대부분 ‘변동 금리 대출’이라 금리 변동위험 부담을 대출자들이 고스란히 진다. 대출 후 시장금리가 올라 부담이 커지거나 더 낮은 금리로 갈아탈 기회가 있다면, 대출금을 미리 갚거나 대출을 옮기는 것이 소비자에게 당연히 유리하다. 중도상환수수료는 이를 막으려는 은행을 위한 무기로 악용되고 있다. 그야말로 대출자의 이중부담이자 은행의 갑질이 아닐 수 없다. 미국, 프랑스, 뉴질랜드 등에선 ‘고정 금리 대출’에만 중도상환수수료를 받는다. 우리나라도 ‘변동 금리 대출’엔 중도상환수수료를 없애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게 옳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중도상환수수료 개편을 공식화하고 올해 3월부터 본격 준비를 시작했다. 금융권에서 구체적인 산정기준을 두지 않고 중도상환수수료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된다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11일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1,135조 7,000억 원으로 8월 말보다 5조 7,000억 원 늘었다. 이렇듯 과도한 가계 부채는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 중 하나다. 대출 억제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마당에 빚을 미리 갚는 고객에게 오히려 벌금을 물리는 제도를 유지하는 게 과연 옳은지 곱씹어볼 일이다.
은행들은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3.5%에서 3.25%로 0.25%포인트 전격적으로 낮추면서 3년 2개월 만의 금리 ‘피벗(Pivot │ 통화정책 기조전환)’이 시작되었는데도 여전히 높은 대출금리를 유지하며 이자 장사에만 몰두하고 있다. 중도상환수수료 폐지는 은행 간 대출금리 인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대출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란 평가다. 더불어 대출 갈아타기나 조기 상환을 원하는 대출자들이 상당히 많은 만큼 수수료 부담 완화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은행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운영되는 패악적(悖惡的) 중도상환수수료는 인하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아예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