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디딤돌대출’ 정책, 서민 불안 가중·정부 신뢰 추락
정부가 지난 10월 2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던 서민들의 주택 마련 대출인 ‘디딤돌대출’ 기습적 한도 축소 정책이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며 현장 혼란이 거세지자 서둘러 유예했다. 애당초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민생정책에 최소한의 대비할 시간은 주어야 함에도 준비할 겨를조차 주지 않아 반발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정책 시행 전 예상되는 부작용을 미리미리 검토하는 행정의 기본조차 망각한 즉흥적인 정책들이 왜 이리 빈번한지 안타까울 뿐이다.
국토교통부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지난 10월 11일 시중은행들에 ‘디딤돌대출’에 적용되는 담보인정비율(LTV) 한도를 최대 80%에서 70%로 낮추는 등 대출한도를 대폭 줄이라는 내용의‘디딤돌대출’ 취급 제한을 요청한 바 있다. 이에 KB국민 등 디딤돌대출을 취급하는 시중은행들이 지난 10월 14일부터 해당 대출 규제에 들어갔고, 졸지에 자금줄이 막힌 대상자들은 구멍 난 자금 마련에 고금리 대출까지 무릅써야 할 처지가 됐다. 무엇보다도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저금리 정책금융상품인 ‘디딤돌대출’ 제한을 두고 열흘여 간 ‘축소’→‘유예’→‘축소’로 두 번이나 방침을 바꾸는 갈지(之)자 행보의 가계 대출 정책이 혼선을 빚고 있어서다.
‘디딤돌대출’은 주택도시기금을 재원으로 부부합산 연 소득 6,000만 원(신혼부부 8,500만 원) 이하인 무주택 서민이 5억 원(신혼부부 6억 원) 이하의 집을 살 때 저금리로 최대 2억 5,000만 원까지 빌려주는 대표적 서민대출 정책금융 상품이다. 연 소득 8,500만 원 이하 신혼부부가 6억 원 이하 집을 살 땐 4억 원까지 대출해 준다. 대출금리는 시중은행 금리보다 낮은 연 2.35~3.3%다. 한마디로 서민 주택 구입 자금지원 프로그램인 셈이다. 그런데 LTV가 줄고, 준공 전 신축아파트 대출 금지, 소액임차보증금도 빼도록 하면서 대출한도가 25% 내외로 급감하게 되자 수요자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당초 정부는 디딤돌대출·생애 첫 주택자금 대출은 규제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반발이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월 21일부터 시행 예정이던 디딤돌대출 한도 축소를 잠정 유예한다고 지난 10월 18일 밝혔다. “10일 후 대출 축소”라더니, 시행 3일 남겨놓고 전격 유예하면서 정책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맞춤형 개선 방안’과 ‘현재 대출 신청분에 대해선 제외’하고 ‘적정한 유예기간 부여’ 등의 조건을 달았지만, 축소 조치를 유보하겠다는 방침을 닷새 만에 뒤집은 것이다. 시장과 소비자들에 엇갈린 신호와 정책을 내던져놓고 혼란에 빠뜨린 것이 이번뿐만이 아니다. 금융당국은 7월 시행하려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를 불과 엿새 앞두고 두 달 연기하는 바람에 7, 8월 가계 대출 폭증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지난 7월 초 금융당국은 은행들을 불러놓고 “가계 대출을 무리하게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압박했다. 주요 9개 은행은 7월부터 9월 23일까지 총 21번의 대출 규정을 변경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상적인 경로라면 애초부터 반발과 부작용을 점검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서 정책을 수립했어야만 했다. 국정은 동네 구멍가게가 결단코 아니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서민 정책대출 축소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만 한다. 국토교통부는 “현장에서 혼란이 심하다 보니 일단 유예한 것”이라며 “추후 대책은 논의 중”이라 했는데, 이는 국정의 신뢰 보호 차원에서도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검토했어야만 했다.
문제는 오락가락 갈팡질팡 일관성이 결여한 금융 정책 탓에 과열된 대출수요가 가라앉지 않은 작금의 상황에서 비싼 이자로 돈을 빌려준 데다 대출 규제 강화로 자격·신용 요건이 한층 좋은 차주들과 거래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자연스레 조성돼 은행으로서는 ‘이자 장사’에 절호의 기회일 수밖에 없다.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이 한국은행의 ‘피벗(Pivot │ 통화정책 기조전환)’을 반영해 수신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우선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이 지난 10월 23일 수신 금리를 내리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적립식 예금 상품인 ‘우리 퍼스트 정기적금’(12개월) 적용 이율을 연 2.2%에서 2.0%로 0.2%포인트 인하한다고 밝혔고, 농협은행도 이날부터 거치식 예금 금리를 0.25~0.40%포인트, 적립식 예금 금리는 0.25~0.55%포인트, 청약예금과 재형저축 금리는 0.25%포인트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곧 다른 시중은행들도 따라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 정책으로 대출금리는 그대로 이거나 오르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예금 금리와 차이는 더 벌어지는 추세다. 예금금리와 달리 대출금리는 상승세다. 통상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시장금리가 연동하는 추이를 나타내지만,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높이고 우대금리는 낮추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올리고 있어서다. 정부의 설익고 어설픈 정책이 은행의 배만 불리고 소비자들만 ‘봉’으로 만든다는 비판의 소리가 드세질 수밖에 없는 모양새가 아닐 수 없다. 부동산 금융 정책이 조변석개하면 집값 안정과 가계부채 관리 등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음을 물론 관련 부처들이 긴밀히 협의하면서 정교하게 대책을 추진해야만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시장 혼선을 막으면서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시킬 수 있음을 각별 유념하고 부처 간 높은 칸막이를 낮춰 긴밀한 공조와 탄탄한 협조로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강화해야만 서민 불안을 해소하고 정부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 따라서 서민경제의 안정과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희망을 꺾지 않도록 주택 공급을 강화하고 금융 정책을 더 안정적이고 정교하게 시행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