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기에도 은행은 ‘어닝 서프라이즈’, 금융소비자만 고통 부담
5대 금융지주의 경영지표가 크게 개선되면서 올해 3분기에도 ‘역대급’호실적을 냈다. 지난 10월 31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금융그룹이 발표한 3분기 경영실적을 보면, 올해 9월까지 이들 5대 은행의 이자 이익을 합산한 결과 총 31조 4,387억 원으로 집계돼 지난해 30조 9,368억 원보다 5,019억 원이나 늘었다. 국민은행이 7조 6,48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조 3,319억 원 대비 4.3% 증가했고, 신한은행은 6조 6,045억 원으로 지난해 6조 2,563억 원 대비 5.6% 증가했다. 우리은행도 올해 3분기까지 이자 이익이 5조 6,324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0.3%, NH농협은행은 5조 7,706억 원으로 0.07% 각각 증가했다. 다만 하나은행은 5조 7,826억 원으로 3.05% 감소했다.
올해 3분기 이자 이익만 보면 국민은행 2조 5,158억 원, 신한은행 2조 2,247억 원, 하나은행 1조 9,002억 원, 우리은행 1조 8,808억 원, NH농협은행 1조 8,560억 원으로 이들 5대 은행 합산액은 무려 10조 3,775억 원을 기록했다. 은행의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금융그룹들은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5대 금융그룹의 지난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16조 5,805억 원이다. 지난해 15조 6,559억 원 대비 5.9% 증가한 규모다. 기존 최대치였던 2022년 3분기 15조 8,261억 원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금리 인하기에는 대출금리가 예금금리보다 빨리 내려 수익성이 나빠진다는 통념을 깬 것이다.
지난 7월부터 급격히 불어난 가계대출로 대출 규모 자체가 커졌고, 이를 잡기 위한 대출금리 인상 기조로 이자 이익이 큰 폭으로 증가한 탓이다. 하지만 ‘이자 장사’ 논란에 빠진 금융권과 ‘가계 빚 잡기’에 나선 금융당국 사이에서, 결국 가장 큰 피해는 대출 이자를 감당해야만 하는 국민에게 특히 금융소비자들에게만 돌아가고 있다. 기준금리가 내리면 은행권의 이자 이익도 둔화가 되어야 하지만,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기조에 맞춰, 가산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수차례 대출금리를 높여왔다. 5대 은행의 이자 이익이 증가한 가장 큰 이유다.
코로나19로 유발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8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서 시작된 긴축 기조에서 지난 10월 11일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3.5%에서 3.25%로 0.25%포인트 전격적으로 낮추면서 3년 2개월 만의 금리 ‘피벗(Pivot │ 통화정책 기조전환)’이 시작되었지만 지난 6월부터 캐나다·영국 등이 금리를 낮추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도 지난 9월 18일(현지 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 연 5.25%~5.50%에서 0.5%포인트 낮춰 4.75%~5.00%로 ‘빅컷(Big cut │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하)’을 전격 단행하면서 금리 인하 기대감이 시장에 미리 반영돼 시장금리가 내려간 상황에서도 은행권의 이자 이익은 고공행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어닝 서프라이즈( (Earnings Surprise │ 깜짝 실적)’를 마냥 반기기만은 어렵다. 이들 수익의 대부분은 은행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에서 나왔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기조에 맞춰 지난 7월부터 대출금리를 연달아 올렸다. 7, 8월에만 가산금리를 20차례 이상 인상했다. 반면 예금금리는 기준금리 인하 전부터 시장 전망을 반영해 떨어뜨렸다. 이번엔 가계대출 관리와 기준금리 인하라는 다른 명분으로 이자 장사를 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금리 인하기에도 서민,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가중되고, 예금자 이자 수입은 줄고 있다. 이는 내수 회복을 지연시키는 악(惡)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역대급의 많은 이익을 얻다 보니 혁신은 안중에 없다. 오히려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낸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14개 은행은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희망퇴직자들에게 6조 5,422억 원을 지급했다. 1만 6,236명의 퇴직자에게 1인당 평균 4억 원씩이나 준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다소 역설적이게도 금융당국은 은행의 이자 장사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월 29일 ‘제9회 금융의날’ 기념식에서 “최근 은행 이자 수익 증가에 대한 비판은 궁극적으로 금융이 과연 충분히 혁신적인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과거의 관행이나 제도가 만드는 울타리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든 금융인들은 돌아봐야 한다”라며 “금융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라고 강조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10월 11일 금융상황 점검 회의에서 지나친 예대금리차 확대를 경계했다. 이 원장은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반영될 수 있도록 예대금리 추이를 면밀히 모니터링을 해달라”라고 당부했다.
은행권은 김병환 금융위원장의 “금융이 충분한 혁신이 없다”라는 비판적 일갈(一喝)을 무겁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모든 부담과 위험은 소비자에게 떠넘긴 채 성과급·퇴직금 잔치를 벌이는 것은 매우 자해적(自害的)이 아닐 수 없다. 가계와 소상공인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금리 인하 혜택을 돌리는 동시에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수익을 확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미국이나 영국 등 주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 대부분의 은행은 영업 이익의 90% 정도를 이자 이익에만 의존하고 있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이러한 이자 장사 비판을 의식한 듯 3분기 경영실적 발표 이후 잇따라 가계대출 중도상환 수수료 면제를 발표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대출 만기일 전에 대출금을 상환할 경우 고객이 부담하는 해약금을 11월 한 달간 한시적으로 전액 면제해주기로 했다.
은행 관계자는 “고금리·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차주의 대출 상환 부담을 낮추고, 금융비용 부담 완화를 통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취지”라고 밝혔지만 사회적 비판에 대한 미봉책이란 지적에는 무색해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또 다른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 산업은 각종 인허가가 필요한 산업이기 때문에 당국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라며 말을 아꼈다. 이는 말을 아꼈다기보다는 아예 할 말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금융소비자’라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이 ‘예대마진’으로 돈을 많이 벌면 국내총생산(GDP)과 경제성장률 등이 올라 일자리도 늘어나는 등 좋은 점도 없지 않겠지만, 작금에 봉착한 문제는 대출 이자를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결국은 이자를 감당해야만 하는 국민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된다는 우(愚)를 인식·통찰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