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극찬한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의 위기

2024-10-22     류효나 기자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노벨상(Nobel Prize)은 1895년 11월 25일 자로 작성된 스웨덴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의 유언에 따라 제정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공학자이자 사업가인 그는 유산의 94%(약 440만 달러)를 기부로 상금 재원이 만들어져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이 낀 ‘노벨 주간’에 스웨덴 스톡홀름(생리의학ㆍ물리ㆍ화학ㆍ문학ㆍ경제상)과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상)에서 시상한다. 수상자는 금메달과 상금 11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4억 3,000만 원)를 받는다.

공교롭게도 올해 수상하는 노벨문학상과 노벨경제학상의 키워드는 ‘국가실패’라는 유사점을 갖는다. 노벨문학상은 5·18 광주의 ‘국가폭력’을 다뤘고, 노벨경제학상은 ‘국가실패’ 사례를 다뤄서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한국에 가져온 한강 작가의 2014년 집필한 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인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다뤘다. 국가의 정치적 군사력에 의한 무자비한 폭력이 시민들을 무참히 살상하고 권력을 찬탈하는 데 동원되었다. 1980년 5월 광주는 국가에 의한 폭력이자 국가에 의한 인간 파괴의 참담한 현장이었다. 이러한 국가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트라우마를 용기 있게 직시한 문학의 진정한 힘과 높은 가치가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마침내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거머쥐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한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다론 아제모을루(Daron Acemoglu)·사이먼 존슨(Simon Johnson) 교수와 시카고대(University of Chicago)의 제임스 로빈슨(James Robinson) 교수가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게 됐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이 교수들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로 “국가 간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이 우리 시대 중요한 과제이며, 수상자들은 이를 위해서 사회 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입증했다”라고 밝혔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수상자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국가 간 경제력 비교 연구는 교육수준, 효율성, 장비 투자 등을 주요 변수로 여겼지만, 그 밑바탕의 제도적 요인이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민주주의가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더 평등주의적으로 변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인물들이다.

 아제모을루 교수와 로빈슨 교수는 2012년 공저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란 저서를 통해 국가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지리·역사·인종 조건이 아닌 ‘제도(Institution)’라고 강조하고 부국과 빈국의 차이를 정치 및 경제 제도에서 찾아냈다. 특히 한국을 북한과 대비해 극찬하면서 “한국을 보라. 경제 번영은 포용적 제도가 결정한다”라고 강조했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지난 10월 14일 기자회견에서도 “중국 같은 권위주의 체제 국가는 장기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뤄내기 매우 힘들다”라고 했다. 이 두 교수의 또 다른 저서  ‘좁은 회랑(The Narrow Corridor)’에서는 국가 권력과 시민사회가 힘의 균형을 이뤘는지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고 주장하며, 국가가 번영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힘의 균형을 이루는 공간인 '좁은 회랑'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가를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괴물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묘사하고 이런 괴물을 시민사회가 견제하며 균형을 이뤄야만 포용적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존슨 교수와의 공저 ‘권력과 진보’에서는 기술 발전의 혜택이 일부 계층에만 돌아간 점을 지적했다. 시장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늘 공동체에 최적의 결과를 보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듯 세 교수의 연구와 저작을 따라가 보면, 시민사회가 정부를 얼마나 적절하게 통제하고 둘 사이 균형을 이루느냐가 번영의 중요 열쇠라고 강조한다. 한 국가의 정치·경제 체제가 그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결정한다는 주장이다. 즉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s)를 가진 나라는 성장하고 착취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s)를 가진 나라는 쇠퇴한다는 것이 주요 핵심 내용이다. 다시 말해 착취적 제도는 경제 발전을 억압하지만, 포용적 제도는 경제 번영을 이끈다는 논리다. 포용적 제도는 구성원들이 지속적인 기술 혁신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제도를 말한다. 우선은 사적 소유의 권리가 보장되고 지식재산권을 보호해야 한다. 나의 성공은 나의 소유여야 하고 모두에게 기회가 균등해야만 한다. 포용적 제도에는 보편적 민주주의, 강력한 재산권 보호, 효율적인 시장경제와 함께 사전 불평등 예방 등이 중요한 기둥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위해 ‘공정’과 ‘자유’가 기준이 돼야 하고, 적절한 규제도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세계는 포용적 제도가 위축될 수 있는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했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산업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는 최저 수준이며 독재 군부 통치나 정권에 대한 이전보다 더 기꺼이 지지하고 있다”라며 “이는 모두를 위한 목소리와 번영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여전히 독재보다 더 나은 성과를 기록했다”라며 “광범위한 유권자들이 소통하고 소셜미디어로 사라져가는 정치적 담론을 회복하고, 상대방에 대한 악마화를 지양한다면 여전히 많은 잠재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존슨 교수 역시 그동안 어렵게 구축한 포용적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그는 “강력한 제도를 구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데는 금방일 수 있다”라며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의회를 공격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들 교수 역시 최근 한국이 고령화와 함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우려한다. 과도한 포퓰리즘, 과격한 노조, 극단적 정치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2022년 국제 포럼인 문화미래리포트(MFR) ‘대한민국 리빌딩’의 주제 발표자로 참여해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라면서 “정치적 양극화는 타협과 소통이 어려워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특히 아제모을루 교수는 지난 6월 쓴 칼럼에서 “전 세계적으로 포용적 체제가 위협받고 있으며 권위주의의 도전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무엇보다도 이 교수들은 ‘자유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자유 언론이 없는 국가는 착취적 제도가 굳어지면서 기본적인 혁신조차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이는 곧 ‘국가 실패’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20세기 초 미국과 19세기 후반 러시아를 비교하면서 미국의 언론은 ‘강도 귀족’의 횡포를 고발했고, 이에 자극받은 정치인들이 독점을 깨고 포용적 경제 제도를 지켜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 언론은 어떠한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양극화가 가속되면서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극단적 행태가 심각해졌다. 자기편이 아니다 싶으면 언론까지 매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런 행태는 자유 언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진영 논리에 갇혀 특정 진영만을 대변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사회가 민주화와 다원화가 가능했다는 평가지만 최근 들어 더욱 집요해진 권력의 언론 장악 수법과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저널리즘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결국은 자유 언론이 번성해야 국가가 성공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또한, 경제의 체온계라 불리는 증시는 서둘러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를 복원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버리고 미국 증시에 투자하고 있어서다. 삼성증권을 비롯한 국내 9개 증권사의 달러 환전 내역을 조사한 결과, 올해 들어 8월까지 710만 7,948명이 미국 증시에 투자한 ‘주식 이민’인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말 대비 51만 명이나 증가했으며, 2021년 말과 비교하면 무려 122만 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해외 자산을 기초로 하는 상품에 대한 투자 편중 현상이 심화하면서 국내 투자 ETF와의 성장 격차가 눈에 띄게 벌어졌다. 지난 5년간 해외 상장지수펀드(ETF)가 14배 커질 동안 국내 ETF는 2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16년 전과 비교하면, 미국 나스닥이 6배 넘게 뛸 동안 코스피지수(KOSPI)는 박스권(Box pattern)에 갇혀 일정 기간 주가가 상한선과 하한선을 뚫지 못하고 일정한 폭에서 등락만을 거듭하는‘박스피’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올해 들어 미국 나스닥(NASDAQ)은 25% 상승했고 일본 닛케이 평균지수도 19% 상승했는데 반해, 코스피(KOSPI)는 오히려 1.2% 하락했다. 유망 중소·벤처기업의 자금조달 지원을 위해 설립된 코스닥(KOSDAQ) 시장이 우량 기업으로의 성장은커녕 단타 위주의 시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스피 진입을 위한 ‘사다리’로서 역할 역시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혹평이다. 향후 우리 경제는 포용적 제도 속에서 더 많은 혁신 기업들이 쏟아져 나오도록 적극적으로 견인해 나가야만 한다. 그런데 ‘포용’은커녕 외려 ‘양극화’에 ‘저질화’까지 더해가고 있는 현실정치가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암적 요소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정치권은 통렬히 반성하고 서둘러 정치력을 복원하고 미래를 위한 대전환의 시대를 견인할 지혜를 모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