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 자영업자 연체율 최근 2년 새 두 배 급등, 채무 재조정 서둘러야
끝이 보이지 않는 내수 부진과 고금리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빚은 많으나 벌이는 시원찮은 취약 자영업자들이 한계 선상에 내몰리면서 연체율이 최근 2년 새 두 배 이상 가파르게 치솟아 오르고 있다. 이들 자영업자의 부채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정부의 영업제한 조처 등의 영향으로 급증했다. 그동안 정부는 다른 주요국들과 달리 재정 지원 대신 대출 만기 연장 등 금융 지원 중심으로 대응을 해왔다.
세계 각국이 고금리 시대를 맞아 과도한 부채를 털어내는 정공법을 쓰고 있을 때 한국만 ‘나 홀로 부채 역주행’의 길을 걷다가 ‘디레버리징(Deleveraging │ 부채 감축)’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는 “우리가 어느 날 마주친 재난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지난 시간의 보복이다.”라고 말했다. 2년여가 지난 지금 빚더미 속에 허우적거리는 자영업자 속출이라는 재앙 수준의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가계·기업·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동시에 빚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9월 26일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2024년 9월)’에 따르면, 2024년 2/4분기 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잔액은 1,060조1000억원(차주 312만6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43조2000억원 대비 1.6% 증가하며, 대출 증가세 둔화가 지속하고 있다. 자영업자의 개인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은 각각 707조8000억원 및 352조3000억원으로, 개인사업자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증가세가 둔화하였으며 가계대출은 감소세가 확대되었다. 2024년 2/4분기 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56%로, 지난 분기 연체율인 1.52%보다 0.04%포인트 올랐다. 비은행 대출을 중심으로 상승하였으며 취약차주 대출 연체율은 높은 수준을 지속하였다. 대출(2/4분기 말 1.72%)과 개인사업자대출(1.48%) 연체율이 모두 상승하였으며, 금융업권별로는 비은행 대출 연체율(3.30%)이 빠르게 상승한 반면, 은행 대출 연체율(0.41%)은 전기 대비 소폭 하락하였다. 한편 취약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율은 10.15%로, 비취약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0.44%)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특히, ‘취약 자영업자’ 약 41만명의 대출은 2024년 2/4분기에 121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2조8000억원 증가했다. 이들의 대출 연체율은 같은 기간 8.2%에서 10.2%로 높아졌다. 취약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2년 전 4% 안팎에서 10%대로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취약 자영업자는 3곳 이상 금융회사에서 빚을 낸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하위 30%)이거나 저신용(NICE 신용정보 신용점수 기준 664점 이하)인 차주를 말한다. 취약차주 대출 비중도 전년 같은 기간 10.5%에서 11.5%로 높아졌다. 자영업자 중 저소득(132조3000억원)·저신용(42조4000억원) 차주 대출은 1년 전보다 각각 7조1000억원, 10조1000억원씩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저소득(12.0%→12.5%)·저신용(3.1%→4.0%) 차주 대출 비중도 상승했다. 이들의 연체율이 2022년 하반기부터 빠르게 오르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출금리가 오르고, 서비스업 경기가 위축되기 시작한 때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정부의 금융 지원 등으로 근근이 버텨오다가 금리 급등과 내수 부진에 빚조차 갚지 못하는 지경에 빠진 자영업자들이 늘었다는 얘기다.
정부도 지난 7월 3일 희망리턴패키지 확대 개편 등 내용을 포함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을 내놓기는 했지만, 이 대책도 대출 만기 연장 같은 금융 지원 중심이었다. 긴축 재정 기조 탓에 총 지원 규모 25조원 중 재정 지원은 약 1조원에 그쳤다. 자영업자 문제는 역대 정부가 가장 어려워한 영역인 것만은 분명하다. 자영업 공급 과잉이란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자영업 문제는 코로나 기간 중 부채 급증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더해진 만큼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만 한다. 자영업 공급 축소와 고정비용 지원, 소비 촉진책 등 다른 대책도 필요하지만 우선 과다 부채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특히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할 부채를 개인에게 떠넘긴 측면이 강한 만큼 대출 원금 감면 같은 채무 재조정을 적극적으로 서둘러 시행할 필요가 있다.
최근 취약 자영업자 대출이 증가하고 연체율이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금융기관의 양호한 복원력 등을 고려하면 취약 자영업자 부실 증가가 전체 금융 시스템이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한국은행은 진단했다. 다만 회생 가능성이 낮은 일부 취약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새출발기금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채무조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2022년 10월 코로나19 피해로 빚을 갚기 어려워진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무담보 5억원·담보 10억원을 합쳐 총 15억원까지 원금을 최대 80% 감면(취약 계층은 최대 90%)해 주거나 이자를 낮춰 최장 20년 분할상환 대출로 전환해 주는 ‘새출발기금’ 프로그램을 도입했으나, 이를 통한 자영업자 채무조정 실적은 당초 예상보다 저조하다. 출범 당시 30조원이 목표였지만 현재까지 약 3조원에 그친다. 신청액 기준으로는 11조원이다. 신용상 불이익 조항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올해 2월부터 신청 자격 요건이 완화되면서 지원자가 하루에 수백 명 수준으로 늘고 있다. 당초 코로나19로 직접 피해를 본 자영업자만 신청 가능했으나 2월부터 코로나19 기간(2020년 4월~2023년 11월) 중 사업을 한 차주로 대상을 확대했다. ‘새출발기금’의 평균 채무조정 비율은 매입형 기준 70% 수준이다. 원금의 70%까지 감면해 주고 있다는 의미다. 취약 계층의 경우 예외적으로 최대 90%의 감면율이 적용 중인데 자영업자 신규 연체율이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새출발기금’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진 만큼 정부의 추가 출자가 더 두텁게 서둘러 이뤄져야 한다. 기금 출범 당시 정부는 3조6000억원의 출자를 계획했으나 현재까지 1조7100억원에 그쳤다. ‘새출발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 KAMCO CS │ Customer Service)는 자체적으로 1조5000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해 필요 자금을 조달했다. 제도 개선을 통해 채무 재조정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무엇보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한계상황에 몰리고 있다는 점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개인사업자 종합소득세 신고분 1146만4368건 가운데 무려 75.1%인 860만9018건이 월 소득 100만원(연 1200만원) 미만이었다. 이 중 소득이 전혀 없다는 ‘소득 0원’ 신고분도 8.2%인 94만4250건으로, 무려 100만 건에 육박하는 규모로 충격을 줬기 때문이다. 자영업자 4명 중 3명꼴로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버는 것으로 나타나 최저생계비(4인 기준 약 183만원)에도 못 미치는 상태라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저소득 문제는 대출 및 연체율 증가로 이어지며, 가계부채 전체의 질을 떨어뜨리고 이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 창업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라는 창업 카페에는 요즘 사무실이나 가게를 팔겠다는 게시물이 더 많이 올라와 창업 카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고금리 장기화와 내수 부진에 따른 경기 침체로 취약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0.15%로 기록한 가운데 지난해 폐업을 신고한 사업자가 역대 최대인 98만6487명으로 100만명에 육박했다. 재작년 86만7292명보다 13.74%인 11 9195명 늘어나 2006년 통계 집계 후 가장 많았다. 폐업 사유는 절반 가까이가 사업 부진을 꼽았다. 내수 경기 부진을 원인으로 꼽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의 비중이 너무 높은 탓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6∼9% 수준이나 우리는 20%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프니까 사장이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돼서는 안 된다. 산업국가에서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국가경제의 허리요 버팀목”이라며 지원을 강조해 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24일 국무회의에서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누적된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해 국민의 체감경기는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라며 “더욱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국무위원들에게 당부했다. 당연히 최근 수출 경기는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 온기가 내수로 옮겨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실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다음 달 중순께 민생토론회 형식 등을 통해 범부처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0월 정도에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라며 “수츨 등 지표는 좋지만, 민생에 체감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자영업자 등을 어떻게 도울지 고민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번 대책에서 금융 지원과 배달료 경감 등을 통해 자영업자 부담을 덜어주려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정부는 최근 배달앱 수수료를 두고 깊어지는 자영업자와 플랫폼 간 갈등을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번번한 벌이 없이 빚에 쪼들리며 한계 선상에 내몰려 풍전등화(風前燈火)로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취약 자영업자 차주 41만명(전체 자영업자 차주 312만6000명의 13.1%)의 눈물을 서둘러 닦아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