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국가채무비율 조작, 홍남기가 강압적·대응논리까지 지시

국가채무비율 축소·왜곡 의혹, 감사원 감사에서 사실로 밝혀져 전망 전제·방법 제멋대로 변경, 국가채무비율 153→81.1%로 축소 사업의 구체성 미검토·위원회 자료 미제공 등 예타제도 부실운용

2024-06-04     박두식 기자
▲ 홍남기 부총리. /뉴시스

문재인정부 당시 기획재정부가 장기 재정전망(국가채무비율)을 의도적으로 축소·왜곡했다는 의혹이 감사원 감사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홍남기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국민적 비판을 우려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두 자릿수로 낮추도록 구체적인 방법까지 조목조목 지시했고, 나주범 당시 재정혁신국장(현 교육부 차관보)은 홍 전 부총리의 부당한 지시에 단 한 번의 반론을 제기하지 않은 채 실무자들의 수차례 반대에도 그대로 이행했다.  

감사원은 4일 이같은 내용의 ‘재정관리제도 운영실태 감사’ 결과를 공개하고 홍 전 부총리의 비위 내용을 인사혁신처에 통보해 재취업·포상 등을 위한 인사자료로 활용하도록 통보했다고 밝혔다. 나 차관보에게는 주의 요구하도록 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정부는 5년마다 장기 재정전망을 실시해야 한다. 장기 재정전망은 현 제도·정책이 유지될 때 미래의 재정 상태를 진단하는 것이 목적으로, 그 결과를 토대로 지출 구조조정과 연금 개혁 등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정책 방안을 마련하게 돼 전망의 객관성·투명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정부 의지(처방)가 개입되지 않도록 하는 게 원칙이다.

기재부는 지난 2020년 7월7일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최소 111.6%, 최대 168.2%로 산출되는 것을 확인했다. 9일 뒤 시뮬레이션 결과인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153.0%(당초 검토안), 129.6%(신규 검토안)로 구성된 장기 재정전망(안)을 홍 전 부총리에게 보고했다. 신규 검토안은 안일환 당시 기재부 2차관 보고 과정에서 홍 전 부총리에게 여러 안을 보고하도록 함에 따라 추가된 것이었다.

그러나 홍 전 부총리는 보고받는 자리에서 “129%의 국가채무비율은 국민이 불안해한다”면서 국가채무비율 급증에 대한 비판을 우려해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두 자릿수로 낮추도록 지시했다. ‘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에 연동한다’는 핵심 전제도 ‘총지출(의무지출+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의 100%로 연동’하는 것으로 변경하도록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

나 차관보는 특히 전망 전제·방법이 장기재정전망협의회의 심의·조정사항임을 알면서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 해 8월19일 협의회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바꾼 뒤 ‘총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 100%에 연동’하는 부당한 전제를 적용해 산출한 국가채무비율 전망치인 81.1%를 홍 전 부총리에게 보고했다.

나 차관보가 적용한 전제는 미래 정부의 지출을 현재의 문재인정부가 제한한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장기재정전망의 원칙 및 취지에 위배된다. 게다가 저출산·고령화로 의무지출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총지출을 경제성장률에 연동시키면 일정 시점 이후에는 의무지출이 총지출을 초과(재량지출이 음수)하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

나 차관보는 전망 결과 발표 전 국가채무비율 축소를 위한 전제·방법 변경이라는 비판이 예상된다며 ‘총지출 증가율=경제성장률’ 전제가 합리적이라는 대응 논리까지 만들어둔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이 조세재정연구원과 함께 정당한 전제·방법에 따라 장기재정전망을 다시 해 본 결과,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148.2%로 도출됐다.

감사원은 “홍 전 부총리는 외부 비판 등을 우려해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두 자릿수로 축소·왜곡함으로써 장기재정전망의 객관성·투명성 및 정부의 신뢰를 훼손했을 뿐 아니라 장기재정전망의 조기경보 기능을 무력화해 국가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조치가 지연될 우려를 초래했다”고 꼬집었다.

감사원은 또 기재부가 예비타당성(예타)조사 면제 제도를 부실 운용해왔다며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통보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총사업비 500억원(국고 300억원) 이상 신규 사업은 예타 대상이나, 지역 균형발전이나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 국가정책적 추진사업 10호 유형에 대해서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2022년 5년간 예타 면제가 크게 늘어났고 이 중 10호 면제가 급증해 대부분을 차지했다. 2020년 기준 총 면제사업 대비 10호 면제 비중이 83%에 달했다.

2019년 7월부터 신설·운영해온 예타 면제 심의·조정기구인 재정사업평가위원회도 형식적으로 운영했다.  

감사원은 “기재부는 예타조사 면제 제도를 운용하면서 면제 요건인 사업계획의 구체성 여부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거나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 충분한 검토 자료와 시간을 제공하지 않은 채 심의하도록 하는 형식적 운영을 해 국가의 비용 부담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