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주범이 철새라면 '재앙'…"차단방역 무의미"

2014-01-20     연종영 기자

폐사한 야생 오리로부터 조류인플루엔자(AI)가 검출돼 '가설'로만 존재하던 '철새에 의한 감염설'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철새가 AI 확산의 주범이라면 지자체가 벌이는 '차단방역'은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일 오전 브리핑에서 전북 고창의 동림 저수지에서 폐사한 철새(가창오리)에서 조류인플루엔자(H5N8형)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고병원성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진 결과는 오후 늦게 나온다지만 고병원성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현재까진 추정되고 있다.

◇충북도, 예산 풀고 대책본부 지위 격상

전북 고창 농가로부터 10만 마리 규모의 새끼 오리가 유입된 충북엔 초비상이 걸렸다.

도는 이날부터 '충북도 AI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을 농정국장에서 도지사로 높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다.

급하게 예산도 풀었다. 올해 당초예산에 세웠던 가금류 방역예산 16억원을 12개 시·군에 긴급 지원했다.

방역차량과 방역인력을 운용하고 철새도래지와 가금류 사육농장에 대한 차단방역을 강화하는데 쓸 예산이다.

◇고창 종오리 받은 16개 농장 '철통봉쇄'

AI공포가 확산한 후 충북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진천의 오리 가공업체 ㈜주원산오리다.

이 업체는 고창의 종오리 농장에서 지난달 26일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갓 태어난 오리 새끼 9만9000마리를 받았고 이 오리는 다시 진천·음성·청원·충주 등 4개 시·군 16개 농가로 나갔다.

도는 지난 17일 주원산오리에 '도축장 일시정지 명령'을 내렸다.

갓 태어난 오리를 분양받은 16개 농가엔 방역사를 배치해 24시간 예찰활동을 벌이고 있다.

오리 반출과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농장에 투입된 방역사들도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농장주변에서 나올 수 없도록 조처했다. 의심증세를 보이는 오리가 한 마리라도 발견되면 즉시 전체를 살처분한다는 것이 도의 계획이다.

◇"정밀검사 늦어져 더 불안"



도가 16개 오리 농장에서 분변과 혈청을 수거해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정밀검사를 의뢰한 것은 지난 17일이었다.

3일이나 지났지만 정밀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도 재난대책상황실 관계자는 "전북지역에서 올라간 물량(시료)이 워낙 많다보니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아마도 2∼3일 후면 정밀검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방역당국과 농장주들은 검사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철새 도래지를 사수하라"

방역당국이 가장 걱정하는 시나리오는 철새가 조류인플루엔자를 옮기는 주범으로 확인되는 것이다.

현재 지자체가 운영하는 방역체계는 AI발생 농가와 의심농가를 포위한 뒤 살처분과 차단방역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수시로, 먼 거리를, 불규칙하게 이동하는 철새가 AI를 옮기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감염지역이 급속히 확산할 가능성이 높고 방역에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철새의 주 비행경로가 서해안으로 치우쳐 있다고는 하지만 충북도 안전지대는 아니란 것이 도의 판단이다.

충북의 철새도래지는 시·군별로 1∼2개씩 모두 2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말부터 철새 수천마리가 날아드는 미호천, 무심천 상류 등지에서 예찰활동을 했던 도는 철새도래지에 대한 소독과 출입금지 조치를 강화하라고 시·군에 지시했다.

도 관계자는 "다행스럽게도 아직 종오리 반입 농가에서 별다른 이상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하지만 고창의 AI살생 농장에서 생산된 종란으로 부화한 병아리가 도내 농장에 분양됐기 때문에 'AI청정지역'의 지위를 잃을 위험성이 매우 높은 상태"라고 말했다.

충북에선 2003년 발생 한 후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AI가 발생하지 않았다.

충북에는 닭·오리를 키우는 5200여 개 농가와 8개 도축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