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톡]또 하나의 눈? 스마트폰 '몰카'…고시3관왕도 '찰칵-철컹'

2013-11-23     김지원 기자

'스마트폰'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다시 잠들기까지 하루 종일 현대인의 오감을 사로잡는다.

전화 통화를 하는 내내 귀와 입은 쉴새 없이 움직인다. 인터넷 서핑과 채팅, 게임을 즐기는 동안 눈과 손가락은 스마트폰과 한몸이 된다. 달콤한 음악이 귓 속에 은은하게 퍼진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고스란히 저장된다. 이렇게 남겨진 오늘의 추억은 '삭제' 버튼을 누르지 않는 한 영원히 남는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하면 등 뒤의 일도 눈 앞으로 다가온다. 그야말로 '또 하나의 눈'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또 하나의 눈'이 범죄에 악용되는 씁쓸한 일도 종종 벌어진다. 말 그대로 스마트(smart)한 '고시 3관왕'도 그랬다.

사건의 장본인은 경찰대 출신으로 입법·사법·행정고시를 모두 합격해 '고시 3관왕'으로 알려진 오모(31)씨. 그는 국회 입법조사관(5급)이다.

그러던 지난 5월30일 오후 9시31분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한 빌딩 여자화장실에 들어간 그는 옆 칸에 A(19)양이 들어오자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A양이 소변보는 모습을 촬영한 것.

오씨의 엽기적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A양의 신고로 도착한 경찰이 스마트폰을 압수하고 현행범으로 붙잡으려던 순간. 다른 사람이라며 신분을 속였다. 오씨는 또 "스마트폰을 돌려 달라"며 유모 경장의 어깨와 이모 경위의 정강이를 깨물었다.

경찰서로 옮겨진 뒤에도 그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며 유치장 입감을 거부하며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오씨가 경찰 조사를 마친 다음날. '귀신이 곡할 노릇' 같은 일이 벌어졌다. 완벽한 범행의 증거인 오씨 스마트폰의 동영상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이를 두고 비난의 화살은 경찰에게 집중됐다. 증거 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이 '귀신'은 오씨로 밝혀졌다. 또다른 스마트폰을 이용해 경찰에 압수된 스마트폰을 초기화 한 그의 치밀하고 계획적인 작품(?)이었다.

결국 오씨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3단독 송동진 판사는 지난 22일 오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성폭력범죄의 재범예방에 필요한 수강 40시간 등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오씨가 경찰 경력과 변호사 자격까지 갖춘 사람으로서 법령을 준수할 의무가 있으나 계속해서 범행을 부인했다"며 "원격으로 압수된 스마트폰을 초기화하는 등 증거를 인멸하기도 했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오씨가 법정에서 범행을 자백했다"며 "피해자들도 오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의사를 표시한 점을 참작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이날 회색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는 재판이 끝나고 기자들과 만나 "선고 결과에 대해 말씀드릴 것이 없다"며 "항소 등에 대해 변호인과 상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