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총학생회 선거 '몸살'…고소에 투표거부운동까지

2013-11-23     엄정애 기자

대학가가 총학생회 선거를 치르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불법 도청 의혹으로 후보간 고소가 오고가는가 하면 운동권 성향의 후보가 출마하자 투표불참 운동이 벌어지는 학교도 있다.

23일 대학가에 따르면 서울 시내 주요 대학들은 11월 중순부터 12월초까지 총학생회장 선거에 돌입했다.

◇후보끼리 고소에…"운동권이 싫어요" 투표거부까지

건국대학교 46대 총학생회장 선거는 한 쪽 선거운동본부가 상대편의 불법도청 의혹을 제기하며 상대 후보를 경찰에 고소하는 등 선거전이 과열·혼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선거에 출마한 '열혈건대' 선본은 21일 자신들의 정책설명회 내용을 불법 녹음한 혐의로 상대편인 '더 청춘' 선본 측을 서울 광진경찰서에 고소했다.

열혈건대 박솔지 선거운동본부장은 "초대받지 않은 더 청춘쪽 사람들이 지난 18일 정책설명회에 와서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1시간30분 분량을 녹음해갔다"고 주장했다. 반면 더 청춘 측은 정책설명회가 비공개 행사라고 보기 어려운 만큼 문제될 게 없다고 맞서고 있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선거는 운동권 성향 후보들의 경선으로 치러지자 일부 학생이 '투표 불참'을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대 제56대 총학생회 선거는 정주회·조승규 후보의 '내일은 있다!' 선본과 임수빈·김수현 후보의 '100℃' 선본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들 후보는 각각 PD, NL 계열의 후보로 알려졌다. 2000년대 들어서 비운동권 성향의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처럼 운동권 성향의 두 후보가 경선을 하자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총학생회 선거에 불참하자는 의견이 올라오는 상황이다.

20일 '총학 투표 불참만이 정답인 이유'라는 제목으로 익명의 글을 쓴 재학생은 "한대련 계열 '100℃' 선본은 종북"이라며 "사노위 계열인 '내일은 있다!' 선본의 실상도 밝히겠다"고 주장했다. 이 재학생은 서울대 내 사노위 회원 현황 등을 분석한 2012년 초 사노위 내부 문건을 인용해 "투표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이 글은 21일 오후 10시30분 기준 조회수 3090여건, 추천수 100여건을 기록하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학내게시판에서는 "대표라고 뽑은 건데 우리를 계몽대상, 투쟁수단 취급하고 있었다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주장과 "정치 조직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면 크게 문제될 일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덕성여대에서는 학교 당국의 개입 의혹이 제기돼 선거가 파행을 겪고 있다. 학교 측이 학생처 직원을 통해 후보자를 모집하고 세부일정 등을 사전에 알려주는 등 사실상 뒤를 봐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제보 내용 중 일부는 사실인 것으로 파악됐다"며 "조사를 더 진행한 다음 제보자가 동의할 경우 해당 교직원을 고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균관대의 경우 추천인 명부 조작 논란이 일었다. 학교 선관위는 후보 이름이 적히지 않은 추천인 명부가 작성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오자 거론된 선거본부의 추천인 명부를 전량 폐기하고 자격을 박탈했다. 조작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매년 반복되는 무관심, 투표율 미달

대학가 선거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도 반복되고 있다. 입후보한 후보가 없어서 선거가 무산되는가 하면 정해진 투표율을 채우기 위해 투표기간을 연장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경희대 선거관리위원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드는 관심을 되살리기 위해 추천 기준을 '10개 단과대 이상 총 500명 이상 추천'에서 '단과대 제한 없이 총 200명 이상 추천'으로 대폭 낮췄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게다가 표율 또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희대 선관위는 찬반투표로 진행되다 보니 관심이 식어 '재학생 과반 이상 투표'라는 요건을 충족할 수 있을지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외대의 경우 지난 12~13일 후보자 등록을 진행했으나 아무도 입후보하지 않아 선거가 무산됐다. 사전 공지까지 2주 동안 진행됐으나 아무도 등록을 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대도 투표율이 예상보다 낮아 지난 19~22일로 예정됐던 총학생회 선거 기간을 25일 낮 12시까지로 연장했다. 22일은 수시전형이 실시돼 투표가 진행되지 않는다.

최근 계속되는 총학 선거의 낮은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서울대 총운영위원회는 올해 처음으로 '전자투표'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들은 학생들이 전자투표사이트(vote.snu.ac.kr)에 학내 포털 아이디로 접속한 뒤 휴대전화 인증 등을 거쳐 투표할 수 있게 했다.

조봉현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은 "취업하기가 어렵고 하다 보니 출마를 꺼리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총학생회가 학생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수직적 구조가 아닌 수평적 구조로 바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