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 가득 국감장, 어디에 누가 어떻게 앉나?

2013-10-31     이원환 기자

올해 국정감사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국회의원들과 피감기관장들 간 공방이 한층 열기를 더하고 있다. 특히 각종 현안이 다뤄지는 국회 상임위원회에는 시민들의 눈과 귀가 쏠리게 마련이고 국감장을 직접 찾은 이들은 국감장 배치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감사원장 후보자로 내정된 황찬현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한 지난 29일 서울고법 국감에서도 국감장 좌석배열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서울고법이 국감 시작에 앞서 '2013 국정감사장 안내'란 유인물을 제작해 배부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위원자리는 위원장 중심 가나다순이 일반적

국감장 내 공간은 크게 상임위원장석과 위원석, 증인석, 속기사석으로 구분된다.

상임위원장석은 증인석과 마주보는 맞은편에 위치한다. 여야 위원들도 국감장 한가운데 앉은 속기사 2명을 기준으로 지하철의 마주보는 좌석 형태로 자리를 잡는다.

위원들이 앉는 순서에도 일종의 불문율이 있다. 일반적으로 위원장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좌석에 여야 간사가 앉고 그 다음 자리부터 증인석에 가까워지는 좌석까지는 위원 성씨의 가나다순으로 배정된다.

그러나 상임위에 따라 가나다순이 아닌 당선횟수와 교섭단체 결성 여부로 좌석배열을 정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법사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권성동 간사부터 오른쪽으로 이주영·김도읍·김진태·김학용·김회선·노철래·정갑윤 의원 순으로 앉는다. 야당 의원들은 이춘석 간사부터 왼쪽으로 박지원·박범계·서영교·신경민·전해철(이상 민주당)·서기호(정의당) 의원 순으로 앉는다.

여기서 가나다순 좌석 규칙을 깬 의원은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과 민주당 박지원 의원, 정의당 서기호 의원이다.

이 의원과 박 의원은 여야의 최다선 자격으로 간사 옆 자리를 배정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 의원은 교섭단체를 결성하지 못한 정의당 소속인 탓에 야당위원 좌석 중 위원장석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자리 잡게 됐다.

특이한 점은 또 있다.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은 사실 이주영 의원과 같은 4선 의원이다. 따라서 정 의원은 이 의원의 자리나 이 의원 바로 옆자리에 앉아도 되지만 굳이 증인석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자리를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의 경우 증인들과 가까운 곳에서 대화하듯 질의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법사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총선 결과 당선인이 결정되고 처음에 원 구성을 하게 되는데 그 때 상임위 좌석배열도 여야 간사간 협의를 거쳐 정하게 된다"며 "따로 규정이 있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서 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18대 국회 당시에는 지금 이주영 의원 자리에 원내대표들이 앉았다. 김무성 의원과 황우여 의원이 그 자리에 앉아서 박지원 의원을 견제했다"며 좌석배열에 원내전략과 관련된 측면도 있다고 귀띔했다.

◇ 증인석 배열에도 규칙있어…국감장 밖에도 각종 장소 마련

증인석 좌석배열에서도 규칙을 발견할 수 있다. 의전서열이 높은 증인이 가운데 자리에, 상대적으로 서열이 낮은 증인이 외곽 쪽에 앉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고법 국감에서도 서울고법원장, 서울중앙지법원장, 서울가정·행정법원장, 동부지법원장이 책상을 갖춘 가운데 4개 좌석에 앉았다. 이 4개 좌석의 양옆으로 서울남부지법원장, 서울북부지법원장, 서울서부지법원장, 의정부지법원장이 앉았다.

수원지법원장과 인천지법원장, 춘천지법원장은 2번째 줄에서도 가운데 좌석이 아닌 외곽 좌석에 앉아 의전서열이 상대적으로 낮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상임위원과 증인들이 주로 시선을 끌지만 국감장에는 눈에 띄지 않는 조력자들도 상당수 앉아있다. 위원들 뒤에 앉아 있는 탓에 의사중계 화면에 간혹 잡히는 이들은 국회입법조사처 소속 입법조사관이거나 정당 소속 정책연구위원과 전문위원, 상임위 자문관, 의원 보좌관, 시민단체 관련자, 기자 등이다.

이 밖에 위원장석의 뒤쪽에는 상임위 소속 수석전문위원과 전문위원이 앉아있다. 이들은 돌발상황이 발생하거나 의사진행과정에서 법률적인 조언이 필요할 경우 위원장과 여야 간사에게 신속히 조언을 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국감장 밖에는 국감 운영을 위한 각종 장소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 지난 서울고법 국감 당시에도 국감장이 설치된 4층에 답변자료 준비실을 비롯해 국회속기번문실, 법원속기번문실, 기자 및 시민단체 대기실, 각종 휴게실이 설치됐다. 특히 감사위원장과 감사위원 휴게실은 서울고법 청사 20층 라운지에 별도로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오찬장 역시 서울고법 청사 내 2층 식당에 마련됐다. 2층 1식당에는 감사위원, 법사위 전문위원, 법사위 자문관(판검사), 법사위 행정실장, 각급 법원장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2식당에서는 수감기관 수석부장판사를 비롯해 서열이 상대적으로 낮은 인사들이 식사를 했다.

이 같은 엄격한 규칙과 서열이 존재하는 탓에 국감장에서 낭만을 찾기란 어려울 듯하지만 가끔씩은 국감장 자체가 안에 있는 감사위원과 피감기관장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박영선 법사위원장은 서울고법 국감 마무리발언을 통해 국감장 벽에 걸려있던 여초 김응현 선생의 서예작품을 거론, 법원장들에게 운치 있게 조언을 건넸다.

박 위원장은 "내 왼편에 '문 밖은 사시사철 봄처럼 부드러운 바람과 단비가 내린다'는 뜻의 문외사시춘(門外四時春) 화풍감우(和風甘雨)란 글귀가 쓰여 있고 오른편에는 '책상 위에는 삼척의 법이 있어 맵기가 된서리와 같다'는 뜻의 안두삼척법(案頭三尺法) 열일엄상(烈日嚴霜)이란 글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판사들이 평상시에는 항상 온화한 미소를, 그리고 재판을 함에는 추상같은 엄정함을 지녀야 한다는 법관으로서의 자세를 되새기라는 의미에서 대작을 양쪽에 걸어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