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부짖는 동양 투자자]퇴직금-전세자금…그들의 사연

2013-10-10     엄정애 기자

동양그룹 계열사의 기업어음(CP)과 회사채에 투자한 시민들의 사연이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10년간 결혼자금으로 모은 돈을 날리게 된 사람부터, 위암 수술을 하고 보험금으로 받은 돈을 날리게 된 주부 등의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 대부분 원금이 보장이 안 되는 CP에 투자를 했다가 낭패를 봤다. 투자자 본인에게 원칙적인 투자의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구제가 쉽지 않아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동양증권의 전화 권유로 해당 상품에 가입했으며 가입 시 채권의 조기상환청구권·CP의 원리금 상환 가능여부·채권이 예금자보호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 등에 대해서 동양증권 직원으로부터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10일 뉴시스는 피해자들을 만나 사연을 들어봤다.

◇동양직원 "좋은 소식 있을 것" 장문 문자

직장인 황모(46)씨는 동양증권과 7~8년 전부터 거래를 해왔다. 금리가 워낙 높았던 터라 그때부터 CMA에 돈을 넣어뒀다. 3년 전 쯤에는 직원의 권유로 CP에 투자도 시작했다. 시작은 500만원부터였다. 차츰 투자액은 늘어나 7000만원까지 가기도했다.

최근에도 직원은 CP를 권유하면서 아무런 경고를 하지 않았다.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는지, 회사채 등급이 어떻게 되는지 등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정기예금 금리보다 높기 때문에 괜찮다는 말로 현혹했을 뿐이다. 그들은 전화나 문자를 집요하게 보내면서 권유를 반복했다.

황씨는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자 불안한 마음이 들어 직원에게 직접 물었다. 이 직원은 "법정관리는 없을 것이고 아무 이상 없다"며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그 문자는 8월27일 오후 5시27분에 왔다.

동양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황씨는 원금도 회수하지 못하게 생겼다. 기자를 만난 황씨는 "나는 투자도 좀 해보고, 나이도 젊은 편이다"라며 "그런데 다른 피해자 어르신들은 어떻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식음전폐한 개인사업가 안씨, "나는 사기피해자"

개인 사업을 하는 안모(41)씨는 요즘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 5~6년 집 근처에 동양증권이 있었고, 그 때 발을 CMA에 발을 들인 것이 화근이라고 생각한다.

동양증권 직원은 CMA 계좌에 잔고가 얼마 있는지를 확인하고 CP나 회사채를 사라고 권유했다. 안씨는 "직원들은 친숙한 가면을 쓰고 현혹했다"며 "동양 그룹 계열사이니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안씨가 CP에 투자한 돈은 5600만원. 기자와 만난 안씨는 "나는 우리는 사기 피해자다"라며 "투자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동양증권이 망할 것 같으세요? 고객님?"

CMA 계좌에 담겨있는 돈을 보고 이모(38·여)씨에게 동양증권에서 연락이 왔다. CP에 투자하라는 권유 전화였다. 계좌에는 약 3600만원이 있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곧 써야 하는 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전화를 건 직원은 동양은 절대로 안 망한다고 현혹했다. 3개월, 6개월 짜리 단기인데 그 사이에 망하겠냐는 부추김이 있었다.

이 직원은 절대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계열사가 많으니까 절대 안 망한다고. 이씨는 "동양증권이 망할 것 같으세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직원이 자기를 바보 취급하는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추석께 시끌시끌해지자 걱정이 되서 그 직원에게 전화를 해봤다. 이 직원은 "아직 일 일어난 것 아닌데 뭘 벌써 걱정하느냐"고 대꾸했다.

동양증권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전화가 왔다. "일이 이렇게 됐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이 말로 끝이었다. 지점 찾아가서 울면서 소리 질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이씨는 6살 아들과 3살 딸을 데리고 9일 여의도 금감원 앞에서 열린 집회에 나왔다. 아이들은 공원 가는 줄 알고 따라나선 길이다.

이씨는 "증권사 직원이 회사 위기를 모르고 팔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분노를 토해냈다. 이씨는 "나는 쿠폰 모아 절약하며 사는 주부고 알뜰살뜰 살아왔다"며 "투기하려던 게 아니고 은행 이자보다 조금 더 높아서 투자한 것 뿐"이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최모(54)씨, 동양증권 가서 자살소동…지점장은 "우린 미친개"

최씨는 동양증권에 칼 들고 가서 자살 소동까지 벌였다. 피 땀 흘려 모은 돈을 이렇게 날리다니 죽고 싶었다. 자그마치 2억이었다.

2억원은 이사 갈 돈이었다. 최씨는 11월에 이사할 예정이다. 11월에 지금 전셋집이 만기다. 2억원을 올려 달라 해서 이사할 돈 2억원을 마련해 둔 것이었는데 날려버렸다.

동양증권 지점장은 "우리는 미친 개다. 회장 지휘 하에 어쩔 수 없이 미친개처럼 했다. 정말 죄송하다. 회장이 종용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애초에 직원이 전화해서 좋은 상품 나왔다며 자꾸 권했다. 거절을 하니까 딸 또래의 여성 직원이 집까지 찾아왔다. 딸처럼 생각이 된데다가 집까지 찾아오니 결국 싸인을 해줬다.

그러다가 10월1일 오후 5시30분께 '딸 처럼 생각되던' 직원에게 전화를 받았다. "소식 아시죠? 2억원 찾을 수 없는 것 아시죠?"고 말하더라. 이 직원은 "뉴스 못 보셨어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직원은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놀라움에 "니가 책임지라"고 했더니 "책임 못진다"고 한다. 

 
최씨는 앞으로 계획을 묻자 "앞으로?"라고 반문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모르겠다. 포기 상태다. 꿈 같다"고 중얼거렸다. 

◇결혼자금 5000만원 투자 박모(31)씨, "예금이라고 생각했는데"

CMA 통장에 1억원 가까이 넣어놨는데 전화가 왔다. 8월20일이었다. 좋은 상품 있다고, 자리 하나 남았다는 직원의 권유에 결혼 자금이라 걱정된다고 했더니 3개월짜리니까 괜찮다고 설득했다.

박씨는 이자 6.3%에 5000만원을 넣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다녀와서 아르바이트로 사회생활 시작한 뒤 퀵 서비스, 음식점 배달 등을 하면서 모은 결혼자금 5000만원이었다. 이때 채권이나 증권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박씨는 투자라기보다 예금이라고 생각했다.

이 돈을 모두 날릴 처지가 되자 당장 결혼이 막막해졌다. 내년 2월이 결혼이다. 결혼을 위해 빚 져야 하나하는 걱정에 답답하기만 하다. 아직 여자친구에게 말도 못했다.

동양증권에서는 죄송하다는 내용의 전화도 없었다. 담당직원은 "저도 피해자"라고 말했다. 자기 돈도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박 씨는 이 직원이 "동양이 망하면 우리나라 망해요"라고 부추긴 것이 또렷하다.

◇주부A씨 (34), 위암 수술 보험금 1억 날리고…

지난해 8월 위암 수술을 하고 보험금으로 받은 1억1300만원. 주부A씨는 채권이나 증권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직원의 안전하단 말만 믿고 동양화력발전소 회사채에 투자했다.

동양증권이 법정관리 들어간 뒤에 찾아가서 엉엉 울었다. "내 위 값"이라고 울부짖었다. 동양직원들은 말 한 마디도 못하고 미안하다는 표정만 짓고 있었다.

A씨는 다른 것보다 건강걱정이 앞선다. 이 일이 터지고 잘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 위암 재발하면 죽는다. 그러니 5살, 3살배기 아이가 눈에 밟힌다.

남편은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고 있다. 시부모님에게는 말을 못했다. 시부모가 전화를 해서 동양에 넣은 돈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자 "미리 빼서 무사하다"고 거짓말했다.

A씨는 "갑자기 목돈이 생기니까 어떻게 할지 모를 때 이런 사기를 당한 것 같다"고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