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속 두얼굴… 시장 "손님 끊긴게 무더위보다 더 고통" - 마트 "쾌적한 쇼핑"
"날씨가 너무 야속할 뿐이죠. 우리 같은 재래시장 상인들은 이 더위가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에요."
올 여름 무려 49일 동안 이어진 장마가 끝나기 무섭게 연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게다가 시간당 30㎜가 넘는 소나기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찜통'을 방불케 하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체감 온도가 40도를 넘나들던 지난 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시장과 서울 강북구 미아동 숭인시장에는 상인들이 맨몸으로 무더위에 맞서고 있었다.
상인들은 저마다 목에 수건을 걸고 얼굴에 비오듯이 쏟아지는 땀방울을 훔쳐내기 바빴다. 상점 한켠에는 선풍기가 힘차게 돌고 있지만 벌겋게 달아오른 두 뺨을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40대 상인은 연신 부채질을 해보지만 흐르는 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내 부채를 내려 놓았다. 이어 하늘이 무심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 상인들은 손님들과의 흥정조차 지친듯 흔쾌히 가격을 깎아주거나 사과 한두알을 더 담아주는 모습도 보였다.
34년간 복숭아 장사를 해온 이모(57)씨는 "최근 시장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데는 무더위가 한 몫 하고 있다"며 "선풍기를 틀고 싶어도 과일이 마르기 때문에 더위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과일 도매상을 14년 한 김모(62·여)씨는 "한 두 해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상인들은 견딜만 하지만 사람들이 무더위에 과일을 사러 재래시장까지 나오겠느냐"며 "에어컨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그늘이라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과일을 사러나온 시민들도 무더위에 혀를 내둘렀다. 한 50대 여성은 손으로 부채질을 해보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듯 이내 인상이 구겨졌다.
양산을 쓰고 장을 보러 온 주부 하모(37·여)씨는 "과일이 싸고 질도 좋아 시장을 찾았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 후회하고 있다"며 "전통시장을 살린다고 말들이 많은데 더위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스위스에서 온 프레드릭(41)씨는 "스위스 시장은 과일이 비싸고 맛있지만 한국 시장은 맛있는 과일의 값이 싸기까지 하다"며 "한국 시장을 정말 좋아하지만 오늘은 숨이 찰 정도로 덥다"고 말했다.
한편 같은 시각 서울 동대문구와 강북구의 대형마트에는 재래시장과 정반대의 모습이 펼쳐졌다. 땀을 닦기는 커녕 부채질 하는 사람조차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시원한 에어컨 탓인지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의 얼굴에는 한결 여유가 묻어났다.
시민들은 과일의 상태부터 원산지까지 꼼꼼하게 살펴보며 골라 담았다. 온가족이 시식용으로 깎아놓은 과일을 한조각씩 나눠 먹는 모습도 눈에 띄였다.
아이와 함께 온 주부 이모(50·여)씨는 "더운 날씨 탓에 전통시장으로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오히려 집보다 시원한 마트에서 여유있게 돌아다니면 충분히 좋은 품질의 과일을 살 수 있다"고 미소지었다.
직장인 최모(25)씨는 "퇴근길에 잠깐 들러 물건을 사기에는 대형마트가 편리하고 좋다"며 "물건도 다양하고 환불이나 교환 제도도 잘 돼 있어 굳이 시장을 찾아갈 필요를 못느끼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