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기환송 “직권남용 엄격 적용”
“의무없는 일 단정 어려워…심리 더 하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박근혜 정부 시절 특정 문화예술인 등에 대한 지원을 배제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오후 특별기일을 열고 김기춘(81)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상고심 선고에서 각각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지난 2018년 1월 2심 선고가 내려진 뒤 대법원 심리를 거쳐 약 2년여 만에 다시 파기환송심이 진행되는 것이다.
김 전 실장 등은 정부 비판 성향의 문화예술인 및 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소위 ‘블랙리스트’를 만들게 하고, 이를 집행하도록 지시·강요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 전 실장과 함께 조윤선·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및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김소영 전 문체비서관 등이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았다.
대법원은 김 전 실장 등이 문체부 공무원을 통해 예술위·영진위·출판진흥원 소속 공무원에게 특정 인사 지원 배제를 지시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모해서 그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지원 배제와 관련해 공무원들에게 각종 명단을 보내게 하고, 사업 과정에서 수시로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 한 것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서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이 그같은 일을 할 법령상 의무가 있는지를 살펴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일반적인 경우 상대방이 따라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직권을 남용해 행위를 하게 했다면 의무 없는 일에 해당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직권남용 행위의 상대방이 공무원이거나 법령에 따라 일정한 공적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공공기관의 임직원 등일 경우에는 의무 없는 일이 어떤 경우에 해당되는지 관계 법령에 따라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원심이 그같은 부분에 대한 심리가 미진했다고 보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또 대법원은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에 대해 퇴임한 이후에는 직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퇴임 후에 이뤄진 범행에 대해서는 공범으로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봤다.
이같은 판단에 따라 퇴임 이후 행위까지 포함해 함께 판단한 원심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고,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