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비리는 못밝혀낸 '고위층 성접대' 수사

2013-07-18     엄정애 기자

경찰이 '고위층 성접대' 의혹 수사를 마치고 18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모(52)씨에 대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특수강간)과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사기 등 10개 범죄 혐의를 적용했다.

또 김학의(57)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해서는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했다.

이를 두고 경찰 안팎에서는 수사 결과가 기대에 못미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경찰이 지난 3월 20여명 규모의 전담팀을 구성, 4개월간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번 사건이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왔다.

실제로 경찰은 김 전 차관 등 고위 공직자들이 윤씨에게 수사 관련 편의를 제공하거나 정부 발주 공사에서 특혜를 제공한 사실이 있는지에 대해 높은 비중을 두고 수사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검찰에 송치된 고위 공직자는 김 전 차관 1명 뿐이었고, 성접대를 받는 과정에서 여성 2명을 성폭행한 혐의 만이 적용됐다. 성접대의 '대가성'에 대해서는 결국 밝혀내지 못한 셈이다.

경찰은 김 전 차관이 윤씨와 형사 사건과 관련된 대화를 나눴다는 진술을 일부 확보했지만 공소시효(5년)가 지나 뇌물과 관련된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두 사람이 어떤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었고 그 사건이 실제로 존재했다"며 "공소시효가 지나 그 실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 강원도 원주 별장에서 성접대에 동원됐다고 진술한 여성은 5~6명 선이다. 이들은 고위공무원, 기업인, 대학교수 등 10여명이 성접대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 중에는 김 전 차관 외에도 2~3명의 전현직 공직자도 있었지만 윤씨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은 시점이 오래 전이라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가 애초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시작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이 김 전 차관의 불법 행위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접대 동영상에 대한 의혹 만으로 내사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검찰 고위 간부가 연루돼 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성급하게 일을 진행한 것 같다"며 "성 접대 동영상이 당사자들에게 흠집은 낼 수 있지만 비리 행위로 처벌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 김 전 차관의 성폭행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피해 여성들의 진술 뿐이다. 성접대를 받은 10여명 중 김 전 차관에게만 성폭행 혐의가 적용된 것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향후 검찰 수사에서 피해 여성들이 진술을 번복한다면 경찰은 부실수사에 대한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경찰은 성폭행 혐의 적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를 시작할 때는 동영상 때문에 문제를 만들었으니 성접대가 사실이었다는 정도만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하지만 피해 여성들은 아주 강하고 일관되게 피해 사실에 대해 진술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성접대 사실 외에도 윤씨가 저축은행 간부, 대형 건설사 사장, 대형 병원장 등에게 로비를 벌여 사업 관련 특혜를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전직 저축은행 전무 김모(58)씨가 구속됐고 서종욱(64) 전 대우건설 사장과 B병원장 박모(64)씨 등 15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윤씨가 주변 인사들에게 성접대를 제공한 사실과 각종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실을 밝혀낸 것은 이번 수사의 성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간 언론의 관심은 김 전 차관에게 쏠렸다. 경찰도 김 전 차관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가장 많은 공을 들였지만 수사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경찰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